(Muzeum Fryderyka Chopina)
쇼팽이 폴란드 사람인 건
폴란드어를 배우기 꽤나 오래 전,
폴란드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제대로 모를 때
알게 되었는데,
이름 때문에 당연히 프랑스인이려니 했던 사람이
폴란드라는 낯선 나라 출신인 게 너무 의외여서,
그걸 알게 된 순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클래식에 문외한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고,
알고보면
그걸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2016년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어 수업을 같이 들었던,
외할아버지가 폴란드인인,
프랑스 국적 미셸 아저씨도
폴란드 오기 전까지는
쇼팽이 폴란드 사람이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 아저씨가 좀 그런쪽에 무심한 것 같긴 하지만,
4분의 1 폴란드인 미셸 아저씨가 몰랐다면,
전혀 폴란드랑 관계 없는 다른 유럽인들은
더 모를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이,
한국인의 경우는 특이나 더 많은 수가
"조국"과 "모국"이 같지만,
사실 쇼팽의 "조국"과 "모국"은 같지 않다.
쇼팽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폴란드로 이주한 프랑스인이었고,
어머니는 폴란드인이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쇼팽의 조국, 즉 "친할아버지의 나라"는 프랑스고,
그의 모국, 즉 "어머니의 나라"는 폴란드였던 거다.
그렇게 따지면,
예전의 나나,
폴란드 오기 전 미셸 아저씨나
뭐 크게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쇼팽처럼 복잡한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그/그녀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는
'그/그녀가 어디서 태어났는가'
혹은
'그/그녀의 부모가 누구인가'
보다
'그/그녀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의
문제일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쇼팽은 폴란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집에서 쓰던
폴란드어로 말하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외국에 있으면서도
당시 3국에 의해 분할 통치되어
독립 국가가 아니었던
폴란드의 독립을 그 누구보다도 바랬고,
프랑스에 있을 때 일어났던,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위한 폴란드인의 봉기를
그 누구보다도 지지했으며,
폴란드의 전통 춤곡인 마주르카(Mazurka)를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고,
폴란드식 클래식 음악인 폴로네즈(Polonaise)도
많이 작곡하며,
자신이 폴란드인임을
음악적으로도 표현했을 뿐 아니라,
사후에
그의 몸은 프랑스에 묻혔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심장만은
바르샤바 성십자성당(Kościół św. Krzyża)에
묻히기도 했다.
그런 "폴란드인" Chopin은
폴란드어식으로 읽으면
"호핀"이 되어야 하지만,
폴란드인도 프랑스어식으로 "쇼팽"으로 읽는다.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외국어의 고유명사는
(어떤 경우는 차용된 보통명사 또한)
가능한한
원어 발음에 가깝게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영어나 러시아어처럼 대체로
자기식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언어들도 있긴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적어도 프랑스어,독일어, 폴란드어에서는
자기 식으로 발음하기보다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려 하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온 그의 성 Chopin은
폴란드어로도 "쇼팽"이 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프랑스식 Frédéric[프레데릭]으로
표기하거나 발음하지 않고,
폴란드식 Fryderyk [프리데릭]으로 읽고 써서,
폴란드어로 그의 이름은
Fryderyk Chopin(프리데릭 쇼팽)이 된다.
프리데릭 쇼팽은
바르샤바 근교에서 태어났고,
프랑스로 가기 전
대부분의 그의 생활은 바르샤바에서 이루어졌다.
바르샤바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퀴리 부인(Marie Skłodowska Curie)도 있지만,
관광객들에게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낭만적인 인물은 쇼팽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과학보다는 예술이
좀 더 대중에 다가가기 쉽다고 생각했는지,
2016년 바르샤바는
"Warszawa Chopina(쇼팽의 바르샤바)"라는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고
바르샤바 홍보를 했다.
이건 그 홈페이지이고,
http://pl.chopin.warsawtour.pl/
이건 그 홈페이지에 나오는 홍보 동영상이다.
그리고 "쇼팽의 바르샤바"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바르샤바에는
오래된 쇼팽 박물관(Muzeum Fryderyka Chopina, Fryderyk Chopin Museum)이 있다.
쇼팽 박물관은 바르샤바 내 탐카(Tamka) 거리에
오스트로그스키 성(Zamek Ostrogskich, Ostrogski Castle)이라는
17세기 바로크 양식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쇼팽이 살았거나 했던 건 아니고,
그 옆에 "바르샤바 음악원"이 있고,
또 "프리데릭 쇼팽 협회"라는 단체가
예전에 이 건물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런 맥락으로
여기에 쇼팽 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것 같다.
위 지도에서 하늘색으로 표시된
지하철 2호선 Nowy Świat(신세계) 역에서 내려서
작은 두 블록 정도 걸어 내려가거나,
역시나 작은 하늘색 네모로 표시된 버스정거장
Ordinacka역이나 Nowy Świat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된다.
만약
노비 시비아트(Nowy Świat)길을 걷던 중이었다면
거기서 동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된다.
옆에 바르샤바 음악원과 작은 공원이 있고,
쇼팽이 다녔던
바르샤바 대학(Uniwersytet Warszawski)와
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십자성당(Kościół św. Krzyża)도 멀지 않다.
쇼팽 박물관은
약간 경사가 있는 언덕에 있는 아담한 건물이다.
아마도 이런 경사 때문에
아래 부분을 요새처럼 지어서
"성"이라고 하나보다.
하지만 윗부분의 모양 때문인지
공식 명칭은 "성"이지만
"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건너편에는 외벽이 유리로 된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있는데,
"프리데릭 쇼팽 국립 연구소"(Narodowy Instytut Fryderyka Chopina)라는
글씨가 크게 박혀 있고,
1층에선 쇼팽관련 기념품들과 연주CD를 팔고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이 건물과 쇼팽 박물관 사이에
박물관의 매표소가 있다.
쇼팽 박물관은 1954년에 처음 생겼는데,
2010년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재정비해서
여러 멀티미디어 자료를 보강하고,
최신식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그래서 겉은 매우 클래식한데,
안은 매우 모던하다.
박물관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열며,
월요일은 휴무다.
입장료는
일반 22즈워티(약 6,000원),
할인 13즈워티 (약 3,000원)인데
일요일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그밖의 정보는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최신식인 박물관답게
입장권은 이런 첨단의 카드 형태다.
이건 입장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박물관 안의 멀티미디어를 작동하게 하는
만능키의 역할도 한다.
입장권을 확인받고
직원들이 안내하는 대로 들어가면
관람이 시작되는데,
마치 무슨 우주선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어둡고 좁고 천장이 낮은 공간에 우선 들어간다.
거기에서
쇼팽의 어린 시절과 폴란드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멀티미디어를 감상하고,
그의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는
한 사람당 하나씩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카드를 가져다대면
멀티미디어가 작동된다.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관람객이 많으면 줄을 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영어와 폴란드어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관광안내책자에서는
관람하는데 1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멀티미디어를 하나하나 다 돌려보며 꼼꼼하게 보면
사실 2-3시간은 걸린다.
물론 그냥 "둘러보기"만 한다면
30분도 안 걸릴 수 있다.
멀티미디어 말고 다른 전시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박물관의 지하로 내려가면
천장 높은 방에 커다란 그랜드피아노가 나온다.
그 옆에서는
쇼팽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상영해주기도 하고,
쇼팽의 다양한 초상화를 전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원하는 장르의 쇼팽 음악을
훌륭한 연주로 감상할 수 있는 감상실이 나온다.
폴로네즈, 마주르카, 에튀드 등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것도 한 자리당 한 명씩 앉을 수 있게 되어 있고,
헤드폰을 끼고 앉아서 버튼을 누르면
연주가 시작된다.
나는 여기가 가장 좋았는데,
우선 연주들이 엄선된 것들이라 다들 훌륭하고
쇼팽이라는 작곡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본질에 충실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다른 곳에서 본 작곡가들의 박물관에서는
예전에 그들이 쓰던 물건, 직접 적은 악보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곤 했는데,
그건 사실
그가 작곡가인지, 작가인지, 혹은 정치인인지를
구별해줄 수 없는 전시물이 아니던가?
하지만 여기선
작곡가의 이야기를 관람할 뿐 아니라,
작곡가의 음악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쇼팽의 외국 생활,
특히 프랑스에서 조르쥬 상드와의 연애사에 대한
멀티미디어 전시물이 등장한다.
여기는 2층이라 전시실에 빛도 많이 들어오고
올라가는 계단에서
창밖 풍경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물 자체가
전시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갑자기 쇼팽의 세계에서 나와
쇼팽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중간
그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건물에 쇼팽이 직접 살았다면
그 순간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지하나 1층의 전시실과는 다른 느낌이다.
비록 이 집에 언젠가
쇼팽의 온기가 머물렀던 건 아니지만,
아쉬운대로 2층엔
쇼팽이 직접 썼던 그랜드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예전에 누군가에게서
일본 사람들이 쇼팽을 아주 좋아해서
이 박물관에 일본인들이 많이 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 두 번 간 나는
갔을 때마다 동양인을 많이 만나지 못했고,
가끔씩 보는 동양인도 거의 한국인들 같았다.
2016년 여름에 갔을 때는
2층에 동양인이 몇 명 있길래,
'이제야 여기서 일본인들을 만나는구나' 했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 중국인들이었다.
그런데 와지엔키 공원에서
일요일마다 하는 쇼팽 콘서트에도
일본 피아니스트가 꽤 여러번 연주하고,
2016년에는 쇼팽 콘서트 와중에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를 찍는
일본인들도 본 적 있고,
언젠가는 폴란드 라디오에서
쇼팽이 좋아 폴란드에 몇 십년 째 살게 되었다는
어떤 일본 여자 피아니스트가
폴란드어로
쇼팽 이야기 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는 걸 보면,
여전히
이 박물관에서 일본인들과 만날 확률은
매우 높아 보인다.
쇼팽 박물관을 나오면
이제 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하나는 북쪽의 탐카(Tamka) 길 쪽으로,
하나는 남쪽의 공원으로 가는거다.
탐카(Tamka) 길로 그대로 내려가서
서쪽으로 가면
고풍스러우면서 번화한 거리인
노비 시비아트(Nowy Świat),
일명 "신세계" 거리로 나가게 되고,
길건너 계속 북쪽으로 걸어가면,
주택가를 지나 바르샤바 대학에 도달한다.
쇼팽 박물관 뒤쪽에는
바르샤바대학 쪽으로 가는 통행로가 설치되어 있다.
통행로 뒤로는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2013년, 2016년에는 사진으로 남겼으니
확실히 이 자리에 있었고,
2008년에는 사진은 안 남겼는데
그 때도 여기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건
그냥 잠시 누가 벽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일종의 탐카(Tamka)길의 상징이자
나름 오래된 역사인 거다.
2013년과 2016년에
벽화 상태에 큰 변화가 없는 걸 보면,
누가 계속 보수하고 관리하고 있나보다.
그림 한 가운데에는 쇼팽이 자리잡고 있고,
주변에 여러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찾아보니 그들은 쇼팽과 관련된 사람들이란다.
근데 정확히 누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탐카(Tamka) 길 건너편 다리 밑 쪽에는
바르샤바 다른 곳에서도 자주 만나는,
2차대전과 관련된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
광고 게시판에는 이런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뭔가 이 동네는 전반적으로
비주류 청년 하위문화가 많이 드러난다.
그 광고 게시판 위쪽 벽에도 역시
또다른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번엔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쇼팽만,
그리고 그의 커다란 머릿속에
쇼팽과 관련된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것도 2013년, 2016년에 계속
똑같이 그려져 있었다.
이 탐카(Tamka)길엔 작은 카페나
그 밖에 소자본으로 운영하는 것 같은
작은 가게들이 많은데,
이 벽화 밑엔
2013년까지 중고 레코드 가게가 있었었다.
레코드판, CD 뿐 아니라
웬갖 낡은 것들을 팔았었는데,
2016년 여름에 가서 보니
그 가게들이 이제 다 문을 닫았다.
이제 이 낡은 건물도 헐리고
이 커다란 쇼팽 벽화도 곧 없어질지 모르겠다.
쇼팽 박물관에서
북쪽 탐카(Tamka) 길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남쪽으로 박물관의 계단을 타고 걸어올라가면
"바르샤바 음악원"과 공원이 나온다.
이 길은 오래된 쇼팽 박물관 건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난간엔 이런 고전적인 조각도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이 낡은 현대식 건물은
아마도 "바르샤바 음악원" 같은데,
벽에 그려져 있는 음표가 아니라면
음악원인지 모를 뻔 했다.
사실 음악원이라고
그 벽에 이렇게 음표를 그려넣는 건
너무 일차원적이고 뻔한 느낌이다.
더구나
그렇게 애써 그림까지 그려넣었음도 불구하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다.
17세기에 건설된 몇 백년 된 건물보다
더 낡아보이고 더 후줄근한
이 100년도 안 된 20세기 건물.
이 밋밋하고 개성 없고 수명이 짧은
현대의 건축물들을 생각하면 괜히 좀 우울하다.
그 옆에는
산책하기 보다는
그냥 벤치에 앉아 쉬어야 할 것 같은
아주 작은 공원이 있다.
여기에도 음표 동상이 등장하는 건
좀 상징이 과하다 싶지만,
얼룩덜룩 음표를 그려넣은 그 옆의 벽을 생각하면
뭐 이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이 작은 공원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걸어가면
주택가가 나오고,
그 중간에 심상치 않은 건물이 하나 등장한다.
19세기에 신르네상스양식으로 건축된 이 건물은
콘스탄티 자모이스키 궁 (Pałac Konstantego Zamoyskiego,Konstanty Zamoyski Palace) 인데,
박물관 혹은 중요한 정부건물일 줄 알았더니,
식당과 클럽으로 사용된다.
이런 역사적 건물이
공공재가 아니라 사유재산이라니 좀 신기하고
또 관리가 잘 안 되어 안타깝기도 하다.
멀리선 근사해보이던 건물이
가까이 가서 보면 생각보다 좀 덜 클래식했지만,
그 건물 뒤쪽에 딸린 정원에 앉아 있으면
뭔가 휴양지에 와 있는 것 같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식당의 직원들도 친절해서
마치 나른한 오후에 뒷뜰에 나와 휴식하는
귀족이 된 것 같은 호사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그 사유 궁전에 딸린 정원이 끝나는 곳에서
공공의 공원이 시작되는데,
검색해보니 이름이 Park K. Beyera이다.
바르샤바의 다른 공원들과 마찬가지로
나뭇잎이 무성한 키 큰 나무가 많아서
좋기도 했지만,
공원의 한 쪽에 있는
가운데가 낮고 주변이 높으면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계단으로 연결되는
이 입체적인 구조가
별거 아니면서 또 좋았다.
그런 특이한 구조 때문인지
사실 그렇게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계단 위에 서면 뭔가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 문화 센터(Centrum Kultury Koreańskiej)가 있다.
거리 상으로는 가까운데,
길이 편리하게 한번에 연결되는 건 아니라서
실제로는 그렇게 가깝진 않다.
그리고 사실 외국에서 무언가 "한국"이 들어간
건물을 만난 건 반갑지만,
한국인 여행자가
"한국문화센터"에서 할 일은 딱히 없어서
여기까지 갈 일이 없기는 하다.
그리고 공원과 한국문화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비슬레 기차역(Warszawa Powiśle)이 있다.
내가 바르샤바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는 걸
알게 된 폴란드어 선생 에바(Ewa)가
한번 가보라고 추천한 장소 중 하나가
포비슬레(Powiśle)지역이었다.
포비슬레(Powiśle)는
"비스와(Wisła)강"의 "뒤(po)"에 있는 지역,
즉 비스와 강변 지역을 의미하는데,
당시 에바가
요새 새로운 것이 많이 생기는 젊은 동네라고
한번 가보라고 했었다.
포비슬레 기차역(Warszawa Powiśle)도
그 포비슬레(Powiśle)지역 한 가운데 있는데,
이 대도시 한가운데 있는 작은 기차역은
이용객이 없이 한적해서
마치 도시 한 가운데에서
시골역으로 순간이동한 것 같은,
묘한 낯섬, 설렘과 더불어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줬다.
아래 지도에서
초록색 네모가 "프리데릭 쇼팽 박물관"이고
하늘색은 그 남쪽에서 둘러본 것들이다.
남들 다 가는 관광지 말고
뭔가 다른 "바르샤바 안쪽"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을 한번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시간은 30분-1시간 정도 걸릴 거다.
"쇼팽의 도시" 바르샤바에는
이밖에도 쇼팽과 관련된 장소와 행사가 많이 있다.
바르샤바 국제 공항의 이름도
"바르샤바 쇼팽 공항(Warsaw Chopin Airport, Lotnisko Chopina Warszawa)"이고,
(https://www.lotnisko-chopina.pl/en/index.html)
바르샤바 곳곳의 옛날 건물에는
쇼팽이 살고, 공부하고, 연주했던 곳에
그러한 쇼팽과의 연관성을 알리는
명패가 붙어 있으며,
특히 크라코프스키에 프셰드미에스치에(Krakowskie Przedmieście) 길과 그 근처에는
쇼팽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버튼을 누르면 쇼팽 음악이 연주되기도 한다.
(유튜브 쇼팽 벤치 작동 동영상)
또한 다른 포스트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1959년부터 수십년동안
매년 여름 일요일마다
와지엔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에서는
하루에 두번씩
무료 야외 쇼팽 콘서트를 열고 있기도 하다.
내 폴란드 친구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바르샤바 어딘가에서
셔틀버스 같은 걸 타고 가면
근교의 쇼팽 생가도 갈 수 있단다.
내가 워낙 "와지엔키 쇼팽콘서트" 좋다고 하니까,
그 친구가 그런 정보를 준건데,
난 그냥 햇볕 아래서
멋진 쇼팽 피아노곡을 듣는 게 좋았을 뿐이어서,
그리고
어디서 버스를 타는지도 정확하게 모르겠고 해서
"젤라조바 볼라(Żelazowa Wola)"에 있다는 생가는 가보지는 않았다.
지금 검색해보니 이런 쇼팽패스를 끊어 가는 거다.
그 밖에 폴란드 곳곳에서 들리는 멜로디가
쇼팽을 담고 있다.
그 중 지금 내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내가 한국에 와서도 가끔 듣는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 Jedynka[예딘카]에서
매 시간 정각마다 흘러나오는 시그널 음악인데,
그런 식으로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런지
이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그걸
예브게니 키신이 연주하는 영상을 찾았다.
Jedynka의 시그널 버전은
약간 더 템포가 느리고 좀 더 우아한 연주인데,
키신의 연주는 좀 더 빠르지만
군더더기 없고
감정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Heroic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힘이 있고 에너지가 넘친다.
(동영상: 예브게니 키신의 Chopin - Heroic Polonaise Op. 53 - YouTube)
바르샤바 "프리데릭 쇼팽 박물관"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멀티미디어 박물관이긴 하지만,
사실
이 박물관 밖에서도 쇼팽 박물관은 계속된다.
바르샤바엔 그의 박물관 말고도
도시 곳곳에 쇼팽의 흔적이 있어서
"쇼팽의 도시"인 바르샤바라는 도시 전체가
쇼팽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그 바르샤바라는
거대한 쇼팽 박물관 안에서
쇼팽을 좀 더 많이 접하고,
그의 음악을 좀 더 잘 알고,
또 좀 더 좋아하게 됐다.
내 주변에
클래식 좀 듣는 사람들은 쇼팽은 잘 안듣는 것 같다.
아마 다른 유명 작곡가들에 비해
음악이 단순하고 감성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나는,
다른 클래식 음악과 마찬가지로
쇼팽의 음악도 잘 몰라서,
바르샤바에 가기 전에는
그의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바르샤바에 가서 와지엔키 쇼팽콘서트도 자주 가고,
폴란드 곳곳에서 들리는
쇼팽 음악의 조각조각들에 익숙해지면서,
쇼팽이 좋아졌다.
그 멜로디에 익숙해져서,
이제 쇼팽 음악을 들으면,
비록 작품의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어, 이거 쇼팽이다'
분별할 수 있게 된 초심자가 느끼는
일종의 성취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어려서부터 병약하고 신경질적이었다는
천재 작곡가의 음악 속의
섬세하고 여리고,
애잔하면서 또 힘 있는 무언가가
마음 한구석을 자꾸 건드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