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20세기 폴란드의 유물
2016년 어느 날
바르샤바 폴란드어 수업에서
주어진 단어들 중에서 몇 개를 선택해서
그것이
바르샤바에 많은지 혹은 적은지 말하는
간단한 문법 과제가 있었다.
그 때 내가 선택한 것 중 하나가
"relikt komunizmu(공산주의의 잔재)"
라는 표현이었고,
난
"W Warszawie jest mało reliktów komunizmu
(바르샤바엔 공산주의 잔재가 적다)"
이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 때 나의 논거는
"모스크바나 다른 러시아 도시에 비해 적은 편이다"
였다.
그건 말하기 과제가 아니라 문법 과제라
뭐 논쟁을 하거나 할 꺼리는 아니어서,
각각의 논거에 대해 특별히 반론을 제시하거나
동조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문장만 하나씩 만들고
그냥 그렇게 넘어갔었다.
근데 그날 수업이 끝나고 문득
'아, 내가 잘못 말했네.'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수업때는
러시아 모스크바와 불가리아 소피아가 떠올라서
그렇게 답한 건데,
확실히 체코 프라하보다,
내가 가본 다른 여느 폴란드 도시보다,
그리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보다도
바르샤바에
공산시대의 건축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제2차세계대전 때 폐허가 된 상태에서
전후에 거의 새로 건축된 것이나 다름 없는
바르샤바 건물들은
대부분 공산정권 하에서 지어졌으니,
겉으로 보이는 건축양식이
두드러지게 공산주의를 연상시키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 공산 시대의 건축이기도 한데다가,
그 시대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두드러진 외관의 건물도 바르샤바에는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겉모습으로
가장 공산주의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아마도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과
헌법 광장(Plac Konstitucji)일 것이다.
바르샤바 도심(Śródmieście)에,
하지만 보통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곳보다 좀 더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아마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아래 지도에서 하늘색 M으로 표시된
지하철 2호선 Pl. Politechniki(공과대학)역일 거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큰 블록으로 거의 두 블록은 걸어야 하니,
159, 118, 520, 522 번등의 버스를 타거나
1, 9, 15, 18, 35, 74번 등의 트램을 타고 가는 게
지하철보다는 훨씬 더 쉬운 방법이다.
위 지도에서 보이듯
헌법 광장(Plac Konstytucji)은
동쪽의 우야즈돕스키 공원(Park Ujazdowski),
와지엔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래서 나는 2016년에는
우야즈돕스키 공원 쪽에서
헌법 광장까지 걸어가 봤었다.
우야즈돕스키 공원과
와지엔키 공원 사이에 있는 길 아래로
아래 사진과 같은 널따란 대로가 보이는데,
아마 저기 보이는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면
지하철 2호선
Pl. Politechniki(공과대학 광장)역까지 갈 것 같다.
하지만 계속 내리던 비도 막 멈추었고,
딱히 급한 일도 없고,
좀 걷고 싶기도 하고,
이 쪽 동네가 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해서
난 한 번 천천히 걸어가보기로 했다.
우야즈돕스키 공원에서
헌법 광장 사이에 있는 가장 큰 길의 이름은
Ul. Piękna(피엥크나 길)인데,
"아름다운 길"이라는 의미지만,
뭐 이름처럼 유달리 아름답진 않다.
하지만 18세기부터 있었다는 이 길에는
각국 대사관들도 많이 있고
건물들도 큼직큼직하고,
무언가 좀 특별한 느낌이 있긴 하다.
이 길과 헌법 광장이 만나는 부분에서
언뜻 20-21세기 건물 같지 않은
고풍스러운 건물을 발견하고,
좀 더 자세히 살펴봤더니,
상단의 기둥은 그리스 건축을 연상시키지만,
그 아래 벽면에 새겨진 부조에는
노동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형상이 새겨 있다.
어쩜 당시 이 건물의 건축가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의 신전"을
형상화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자본주의의 상륙을 가장 명료하게 증명하는
패스트푸드점 KFC가
(맥도날드보단 그 상징성이 덜 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노동자들의 부조 밑 1층을 차지하고 있다.
공산시대 지어진 건물답게
육중하고 딱딱하고 어두운 느낌이 있긴 하지만,
뭐 이 정도면
공산주의 건축 치고
덜 투박하고, 꽤 섬세한 것 같다.
이런 식의 노동자, 농민들의 모습과 생활을
리얼리즘 양식에 기반하여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면서
프롤레타리아 해방이라는 공산주의 이념을
드러내는 공산주의 건축 양식을 흔히
사회주의적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이라 하고,
폴란드어로는
"소츠레알리즘(Socrealizm)"이라고도 한다.
물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20세기 공산정권 치하
문학,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건축 양식에 한정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1945년부터 1989년까지 거의 반세기동안 계속된,
폴란드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공산주의 시대를
21세기 현재의 바르샤바 시내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사회주의 리얼리즘 건축이라 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바르샤바의,
그리고 폴란드의 가장 가까운 과거를 담고 있는
헌법 광장 근처를 둘러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난 처음 들었을 때
헌법 광장(Plac Konstytucji)이란 이름이
정말 희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여기에 헌법재판소가 있나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혹시 그런 게 있다 해도
길 이름에
"법", "도덕", "윤리" 뭐 이런 명사를 붙이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았다.
사람 이름이나 지역 이름,
또는
"자유", "평등", "평화" 같은 가치를 담은 추상명사는 괜찮은데 말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헌법(Konstytucja)"이라는 게
폴란드 사람들에게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단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폴란드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많지 않아,
많은 사람이 처음 듣는 얘기겠지만,
폴란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근대적 의미의 성문 헌법을 제정"한 나라다.
세계 최초로 문서로 체계화된 헌법은
1787년 미국의 헌법이고
폴란드는 1791년 세계에서 두번째이자,
유럽에서는 최초인 성문 헌법을 제정했다.
1791년 5월 3일 만들어져서
폴란드에서는 "5월 3일 헌법(Konstytucja 3 maja)"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헌법에선
일반 시민과 귀족의 차별을 없애고,
농민을 국가가 보호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는데,
뭔가 다른 것을 참고하여 단시일에 만든 게 아니라
폴란드 내부문제를 개혁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몇 십년간 논의되어온 내용을 법제화한 결과였다.
하지만 1795년에 제2차 삼국분할로
120여년간 폴란드라는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사라지게 되는 바람에
유럽 최초의 성문화된 헌법 또한
제대로 그 역할을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비록 결과는 그렇게 되었지만,
그래도 "유럽 최초"라는 타이틀 때문에
"헌법(Konstytucja)"이라는 단어는
폴란드인들에게 또다른 자부심이다.
작년에 이걸 알게 된 나는,
'그래서 바르샤바에 "헌법 광장(Plac Konstytucji)"이라는 이름의 광장이 있나보다'
추측했는데,
찾아보니 또 그건 아니다.
1940년대, 1950년대 바르샤바를 재건할 때
이 지역에 길을 놓고 건물들을 새로 지었는데,
이 광장이 개방된 날이 마침
폴란드 공산정부의 헌법이 새로 만들어진 날이어서
이 광장에 "헌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당시 바르샤바를 재건하면서
MDM, 즉 Marszałkowska Dzielnica Mieszkaniowa
(마르샤우콥스카 거주 지역)이라는 프로젝트로
이 근방의 건물들을 계획적으로
소츠레알리즘 양식에 맞춰 건설했고,
그래서 헌법 광장 근처에는
공산주의 건축이 많이 몰려 있다.
다음에서 갈색으로 표시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의 건물이
그 때 세워진 거다.
헌법 광장은 매우 크고 찻길도 복잡하다.
건물도 높기보다는 길다.
그런 이유로 전체를 사진 하나의 담기 쉽지 않아서
나는 사진을 부분 부분을 나눠 찍었기 때문에,
어떤 폴란드어 뉴스 기사에 첨부된,
전체를 조망하는 사진을 덧붙인다.
여긴 가로등도 유난히 크고 높고,
한쪽 구석에 있는 배구하는 여자의 네온사인도
좀 기괴하고,
전체적으로 건물은 길죽길죽, 큼직큼직하지만
그래서 시원시원하다기 보다는
위압적이고 좀 칙칙한 느낌이다.
2013년에는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 길에서 연극을 하는 걸 봤다.
1인극이었는데,
길거리에서 이런 걸 하는 게 신기하고,
또 배우가 연기도 잘하고,
언뜻 들었는데, 내용도 재밌는 것 같아
나도 폴란드인들처럼
맨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구경을 했다.
짧은 동영상을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이 때는 그 생각까진 못했다.
한 5-10분 정도 후에 연극이 끝났고
좀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에 이런 시간표가 있었는데,
내가 그날 본 그 야외 공연을
OCH Teatr(오흐 극장)이라는 데서도
관람할 수 있음을 알고,
날짜와 시간을 체크해서
나중에 "오흐 극장"을 찾아갔다.
오흐 극장(Och Teatr)은
바르샤바 시내의 남서쪽에 있었는데,
야외공연은 극장 옆 공터에서 진행됐다.
공연 전 사진 찍으며 포커스를 맞추는 소리가
위 사진에 나온 여자분 귀에 좀 거슬렀나보다.
내가 사진 찍고 약간 쑥스럽게 웃었더니,
이분도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아무튼 이분의 생생한 떨떠름한 표정 덕분에
사진이 특별해졌다.
알고보니 연극은 3명의 주인공이 나오는
옴니버스 모노드라마였다.
10대 딸, 그녀의 엄마,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세 사람이 각자의 관점으로
서로 겹치지만,
그러면서도 독립적인 세 가지 이야기를
한명씩 차례차례로 나와
독백으로 말하는 방식이었는데,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다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유머가 가득한 코미디였는데,
결말은 좀 슬펐다.
엄마 역의 배우는
폴란드 TV 방송 토크쇼에도 나오는 유명 배우인데,
아마 할머니 역의 배우도 그럴 것 같다.
2016년에도 혹시 이런 공연 또 안 하나 찾아봤는데,
그 때는 이런 식의 야외 무료 연극은 못 찾았다.
대신 다른 극단의 실내 유료 연극을 찾아서
6-7편 정도를 봤었는데
그것도 다 좋았다.
이제 다시 헌법 광장으로 돌아와서,
헌법 광장과
즈바비치엘 광장(Plac Zbawiciela)을 연결하는
마우샤우콥스카(Marszałkowska) 길에 있는
공산주의 양식의 건물에는
노동자들의 거대한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엄청나게 크기만 해서 섬세함이 없고,
얼굴엔 표정이 하나도 없어 공허하긴 하지만,
그래도 난 어떤 한 시대의 사조를 드러내는
이 조각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거대 부조의 숲 사이를 빠져나와 만나는
즈바비치엘 광장(Plac Zbawiciela),
즉, "구세주 광장" 한 구석에는
이 광장의 이름을 있게 한
"가장 성스러운 구세주 성당(Kościół Najświętszego Zbawiciela, Church of the Holiest Saviour)"이 있다.
높은 첨탑 때문에
언뜻 고딕 양식의 성당 같아 보였는데,
그렇다고 중세시대에 지어진 건 아니고
1901년에 지어진
폴란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라고 한다.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이
바로 폴란드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된 거라고 했는데,
높이 솟은 것 빼고
두 건물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2013년에 갔을 땐 광장 다른 한 쪽에
텡차(Tęcza)라고 불리는
무지개 모양의 형상이 있었는데,
2016년엔 없었다.
해외에서 상 받은 예술 작품을
폴란드 내로 옮겨온 거라고 하는데,
작가의 원래 의도와 달리
무지개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폴란드 극우파에서 이걸 LGBT,
즉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여러번 불을 질렀고,
그래서 결국 철거되었다.
아무튼 이 즈바비치엘 광장에는
카페, 클럽, 그 밖에 젊은 감성이 묻어나는
작으면서 풋풋한 상점들이 있어서
홍대 같은 느낌의 동네다.
여행 안내 책자에 보면,
여기 로터리에 있는
어떤 카페가 괜찮다고 나와 있었는데,
여기 갈 때마다 사람이 많아서
난 그냥 흘끗 보고 지나가기만 했다.
이 즈바비치엘 광장 서쪽으로 가면,
공과대학 광장(Plac Politechniki)이 나온다.
이 광장 한 귀퉁이에는
눈에 띄는
바르샤바 공과대학 본관(Gmach Główny Politechniki Warszawskiej) 건물이 있다.
언뜻 봤을 때는 매우 고전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꼭대기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의 진취적인 조각이 보여서,
그 두 조합이 뭔가 매우 기괴한 느낌이었다.
설마 공산주의 시대에
그들의 타파 대상이었을 구시대,
왕정시대의 양식으로 건물을 지었단 말인가?
하긴, 무엇보다도 왕정시대를 연상시키게 하는
"궁전"이라는 단어가
폴란드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공산주의 시대 건물에 많이 붙긴 한다.
요즘 같으면
"문화 센터(Центр Культуры)"라고 해야 할 건물이
"문화 궁전(Дворец Культуры)"
뭐 이런 식으로 이름 붙었었다.
폴란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산 시대 건물도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이지 않던가?
그런데 좀 전에 찾아보니
이 건물은 1899년에
당시 유럽 대학들을 모델 삼아 지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건축이라 한다.
그러니 공산시대의 건축은 아닌 건데,
아마도 지붕 위의 동상만
공산주의 시대에 덧붙였나 보다.
근데 아무리봐도 그건 잘못된 선택인 것 같다.
난 여기엔 2013년에만 갔었는데,
그 때 안에 들어가보니
여름 방학이라 그런지
학생이나 학교 관계자는 안 보이고,
나처럼 구경 온 것 같은
폴란드 관광객 세네 팀 정도만 보이고,
학교는 여기저기 공사중이라
정리되지 않은 듯 보였다.
내부는 대체로 클래식한 느낌이라
무슨 궁 같기도 했다.
건물 한 가운데는 비어 있고,
둘레에 계단과 복도가 있어서,
그 계단과 복도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오르락내리락,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그건 재미있었고,
하얀 대리석 비슷한 느낌의 계단이나
높은 천장 등이
실제 보면 좀 더 낫기도 한데,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빈 공간이
입체적 광장 같아서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했는데,
사람이 너무 없으니 마치 유령도시 같았고,
가끔씩 누군가를 마주치면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한쪽 벽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5년에 방문해서 한 말이 쓰여 있다.
"연대(Solidarność)"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폴란드의 유산이며, 희생, 인내, 그리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얻은 귀한 재산입니다.
우리는 그 귀한 재산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쪽에는
얀 자모이스키(Jan Zamoyski)라는
16-17세기 폴란드 귀족이 했다는 말이 쓰여 있다.
국가는 항상 (자신의)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그대로 될 것이다.
난 사실 문학이고, 미술이고, 건축이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별로 안 좋아한다.
평등을 담보로 자유를 억압했지만,
상층부에서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권위주의 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 때문에,
결국은 평등하지도 않았던
공산체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뿐 아니라,
국가가 예술과 문학에
어떤 특정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또 그 하나의 방식으로 창작한다는 게
그냥 생각만으로도 너무 답답하다.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뚜렷해서
뭔가 숨은 메시지를 찾아내는 재미나
각자만의 다른 해석의 묘미가 없고,
섬세한 미학적 고려가 없어서 그런지,
매력이 없다.
문학이고 미술, 건축이고
한번 보면 별로 기억에도 안 남고,
두번 이상 안 보게 된다.
하지만
또 바르샤바 헌법 광장(Plac Konstytucji)처럼
그런 걸 도시 어딘가에 모아두면,
마치 "소츠레알리즘" 특별기획전 같아져서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뭔가 특별한 시대를 담게 되고,
다른 것들과 비교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그것들 속에만 있으면
또 그런 투박함이 두드러지는 건축양식에
익숙해지면서
나름대로 매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그냥 네모반듯한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전혀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는
평범한 회색 건물들보다는
그래도 이게 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비록 별로 성공적이진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에 대해 궁리를 했고,
너무 모티브가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창작하려는 추가적 노력을 했고,
또 일관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게 무엇무엇이라고 천명할 수 있는
"양식"은 담고 있는 게,
그래도 "개성"을 담고 있는 게,
그런 거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소츠레알리즘" 양식을 좋아하지 않은 건,
그냥 개인 혹은 다수의 취향 문제인 것이고,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겪었던
중동부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발견되는
그런 양식들이,
그 시대가 과거가 된 시점에서
회상의 매개가 되는 역사적 산물로서,
그리고
그 시대를 반영하는 특정한 문화 양식으로서 갖는
존재의미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