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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Dec 31. 2017

로도피 산맥 위 아름다운 중세 성채, "아센 요새"

(Асенова крепост, Asen's Fortress)


내가 소피아에 머무르면서

불가리아어를 배웠던

소피아대학 부속 어학당은

3주 단위로 수업이 구성되어 있었다.


비수기인 겨울에만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그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데,


3주 수업하고,

1주 짧은 방학을 하고,

3주 수업을 하고,

또 방학을 하는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3주짜리 코스에 한 번씩

"엑스쿠르시아(екскурсия)"라는 이름으로

희망자들을 모아

소피아 밖으로 소풍을 간다.


당시 1년 정도 불가리아어 코스에 다니고 있던

영국인 알렉스와 일본인 리사가

매우 일상적인 일인 듯 받아들이는 걸 보면,


그리고 그 다음 3주짜리 코스에서도 또 있었고,


나는 한국에 오느라 못 갔지만,

또 그 다음 3주짜리 코스에선 어디 갈 지

블라디미르 선생님이 예고했던 걸 보면,

아마 매달 정기적으로 가는 것 같다.


알렉스와 리사는

이미 많이 다녀본 건지,

별로 그런 여행에 관심이 없는지,

아님

그날 다른 약속이 있어선지,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난 당시에

소피아 말고

불가리아 다른 지역이 어떤지 알고 싶긴 한데,

불가리아 온 지 2-3주밖에 안되서,

불가리아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불가리아어에도 자신이 없어서,

혼자 여행할 엄두를 차마 못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어딘가로 소피아 밖으로 데려다준다니,

불가리아를 여행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나는 흥쾌히 가겠다고 신청했다.


당시 내가 듣는 불가리아 수업의 수강생은

알렉스, 리사, 나 이렇게 3명이어서,

결국 그렇게 난 "우리반에서 유일한"

소풍 참석 멤버가 되었다.


이제 D-day가 되었고,

그 전날 선생님이 학교로 오라고 말했던 시간인

아침 8시 반에 딱 맞춰 학교에 갔다.


그런데 차도 안 보이고,

소풍가는 듯 보이는 다른 학생들도 없었다.


그래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하며 두리번거리다

결국 사무실에 가서 물어봤더니,


아직 차가 안 왔고,

언제 올 지 모르니 로비에서 기다리란다.


그래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나이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이 오셔서

내 이름을 확인했다.


내가 반가운 표정과 목소리로 맞다고 대답하니,

아직 차가 안 왔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그 때는 모르는 선생님이었는데,

그 분은 나중에 우리반 수업을 하셨던,

모르는 게 없고 설명도 잘 해주시는,

지금도 가끔 불가리아어 여쭤보러 연락드리면

잘 대답해주시는

블라디미르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좀 있다

나이 좀 지긋하신 여자 선생님 두분도 오셨다.


'아 이거 나랑 이 세 선생님만 가는건가'


하는 두려움이 살짝 드는 순간,


바깥 쪽에 아랍 남자애들 3명이

서 있는게 보였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그들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난 선뜻 나가서 인사하지 못하고,

그냥 로비에서 어정쩡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미니버스가 도착했다.


20명 정도 탈 수 있는 크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학생은 4명뿐이었다.


이 "소풍"은

거기서 불가리아어 배우는 외국인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건데,

나까지 합쳐서 겨우 4명이 온 거다.


여기 어학코스가 종류도 많고,

시스템도 괜찮은 듯 한데,

쉬는 시간이나 수업 전 복도에 서 있는

학생들 수는 참 적다 싶더니,

그렇게 보이기만 한 게 아니라,

진짜 학생이 적긴 적나보다.


하긴 우리반도 3명밖에 안 되니까.


그렇게 선생님 3명과 학생 4명이

작은 버스에 올라탔는데,

좀 늦게 키 큰 백인여자 한 명이 더 왔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가 소피아를 벗어나니,

이제 광활한 자연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산이 계속 버스를 따라온다.


주로 어딜가나 평야인 유럽에서

이렇게 산이 널따랗게 그리고 줄기차게

펼쳐진 풍경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 산이 하늘과 이루는 그림이 너무 예뻐서

넋을 놓고

바깥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으며 2시간쯤 갔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여긴 휴게소.

기분 탓인지 가로등도 예쁘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가는 길, Bulgaria)


2시간 쯤 가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소피아 남쪽에 자리잡은

아세노브그라드(Асеновград, Asenovgrad)라는

마을이었다.


가는 길에 "플로브디프(Пловдив)"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발견했는데,

지금 보니 불가리아 대도시 중에선

"플로브디프"에서 가장 가깝다.


아마도 외국인은

소피아에서 "아세노브그라드" 가는

투어 프로그램을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인터넷에 불가리아어로

"아세노브그라드"를 검색하니,

"플로브디브"에서 출발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많다.


보통의 여행객은 그 투어 프로그램으로

"아세노브그라드"까지 가는 게 가장 편리할 것 같다.


지도 출처: http://bulgaria.domino.bg/assenovgrad/01-07.htm


"아세노브그라드"에 입성한 버스는

그 마을에서 정차하지 않고

계속해서 언덕을 올라갔고,

로도피(Родопи,Ροδόπη, The Rhodopes)산맥

높이 자리잡은

아센 요새(Асенова крепост, Asen's Fortress)

라는 곳에 다다랐다.


"아센 요새" 자리엔

고대 트라키아인들의 시대부터

즉,

기원전부터 요새가 있던 걸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반 아센 2세(Иван Асен II, Ivan Asen II)라는

불가리아 차르가 13세기에 이곳을 재정비하고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면서

"아센 요새"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센의 도시"라는 의미의

"아세노브그라드"라는 마을 이름도

거기서 나온거다.


"이반 아센 2세"는

제2불가리아 왕국(1185–1396)의 차르로

그의 통치기간에

왕국 혹은 제국은 가장 크게 번성해서,

발칸반도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불가리아어로 царство, 영어로 empire고,

통치자가 '차르'로 불렸으므로,

사실 "제국"이 맞지만,

한국에서는 "제2불가리아 왕국"으로 번역한다)


"아센 요새"와 그 주변엔

아주 가파르고 뾰족뾰족한 바위가 있고

그 아래는 강이 흐른다.


멀리 "아세노브그라드"라는 마을도

한 눈에 들어오고,


반대편을 보면

로도피 산맥의 겹겹이 쌓인 산이 보인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기억하기도 힘든 어려운 이름의

낯선 지역으로 가는 소풍이라

큰 기대 없이 갔는데,

그 풍경이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다.


어쩌면 전혀 기대 없이 가서

더 근사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그냥

멀리 보이는 "아세노프그라드"의 풍경에

그저 감탄했는데,


다른 쪽을 보니

"요새"라는 명칭에 걸맞게

바위에 여러가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바위 길을 따라가면

오래된 교회 하나가 나온다.


그리고 거기에 좀 더 큰 한방이 나온다.


아래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곳이

"아세노브그라드" 마을이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이 쪽이 로도피 산맥의 첩첩산중이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아래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이

같이 간 아랍 학생 중 한 명이다.


그와 나의 동선이 겹쳐서

내 사진 안에 자연스럽게 담겼는데,

그 다음 소풍에서 "또" 만났을 때,

이메일 물어보고 사진을 보내줬더니,

무척 좋아했었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근데 여기 무기가 전시된 건 좋은데,

불가리아어로건 영어로건

설명이 안되어 있어 아쉬웠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이런 단단한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린 나무라니,

그 어떤 무기보다 대단해보였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이제 군사적 쓸모를 모두 잃은 현재,

"아센 요새"의 가장 큰 무기는

다양한 얼굴을 한 "죽이는 풍경"이다.


고개를 좌우로 돌릴 때마다

다른 각도에서 보이는 풍경이 각자 아름답고,

높이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또 각자 아름답다.


그리고 또 그 날따라 날씨도 좋았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Bulgaria)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상상도 못한 너무 멋진 풍경에 완전 반했다.


그 때까지 그 세 명의 아랍남자들과

그 백인여자,

그리고 나는 서로 전혀 말을 섞지 않고 있었는데,

(세 명의 아랍인은 아랍어로 서로 얘기했다)

멋있는 풍경을 눈앞에 두고 감탄하며

"얼음이 깨지고"

마음이 열렸는지

거기서 이제 서로 인사도 하게 되었다.


백인 친구는 미로슬라바라는 슬로바키아인이었고,

불가리아에서 일자리 찾으려고

지금 불가리아어 배우는 거란다.


슬라브어는 서로 매우 비슷해서

대체로 슬라브인들은

다른 슬라브어를 금방 이해하는데,

그렇게 첨부터 잘하니

자만해서 별로 열심히 안해서 그런지,

다들 말도 곧잘 하긴 해도,

대체로 자기가 배우는 슬라브어식이 아니라,

자기 모국어인 다른 슬라브어식으로 말한다.


슬로바키아인 미로슬라바의 불가리아어도

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세명의 아랍인들 중

두 명은 시리아에서, 한 명은 이라크에서 왔단다.


그들과도 통성명을 했는데,

그 다음 소풍에서도 만난 한 명은

그 때 적어 둔 글을 보니 레만이었고,

다른 두 사람은 뭐 알리, 무하메드 같은

흔한 이슬람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생각은 안난다.


어차피 그들도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거다.


"아센 성채"의 하일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성모성당(църква "Света Богородица", Church of the Holy Mother of God)"이다.


11-1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성당은 겉보기에

2층짜리 건물이라는 게 특이하고,


겉모습도 아름다운데,

안에는 14세기에 그려진 벽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고보면 소피아의 "보야나 성당"도 2층이었다.


그게 중세 불가리아식 성당 건축의 특징인가보다.



"성모성당"의 2층은 예배당으로 쓰이는데,

1층은 원래 뭐하는 데였는지 알 수 없고,

무덤으로 사용되지 않았나 추정한다고 한다.


가톨릭 대성당의 지하에 크립트(crypt)

있는 걸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게

이 요새 자체는 오스만제국 군대와의 전투로

거의 다 파괴되었는데도

이 성당은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 오래된 성당을 마을 사람들이

처음처럼 계속 원래 목적으로 사용하며

지금도 여기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입장권 내지 않고

그냥 자유롭게 들어갔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한 구석에 성 게오르기 성인의 성화가 세워져 있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모 성당, Bulgaria)


거길 다 둘러보고 그 담에 우리가 간 곳은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정교회 성당이었는데,

정말정말 작았다.


입구에 들어갈 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고,

또 그 안도 정말 정말 작고 어두웠다.


창문도 없었다.


멀리 "아센 요새"의 꼭대기에서 봤을 때

정말 그 산 속에

어떤 봉우리 위에 딱 그 성당만 있어서

저게 뭘까 궁금해하다가,


거기 간다고 해서

또 "완전"기대를 했건만,


사실 성당 자체는 특별한 게 없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성당에 달린 불가리아 국기가 보여서,

여기가 그리스랑 가까운 곳이라

"불가리아 정교회"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국기를 달았구나 싶고,

그래서 뭔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장소였나보다 상상했는데,


나중에 보니,

소피아 시내에서도

그냥 일반 불가리아 정교회 성당에

불가리아 국기를 내거는 경우가 많다.


즉,

그 성당 위에 달린 국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는거다.


가톨릭과 달리,

동방정교는

대주교구가 되는 국가마다

따로 독립적 위계가 있고,

각각 별개의 동방정교가 발달했으니,

그걸 표시하는 것뿐인거다.


아무튼 그 때는

무언가 숨겨진 사연이 있을거라는 기대에,

내가 거기 관리하시는 분에게,

불가리아어로

"Какво значение има тази църква(이 교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라고 물었는데,


그분이 나한테 막 불가리아어로 설명하시다가

갑자기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당황하면서

우리 인솔자 선생님들에게 가서

나한테 설명해주라며 불가리아어로 말했고,


그 선생님들이 "나중에 설명해주겠다"고 했는데,

결국엔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나중에 돌아나오면서 표지판을 보니,

이름이

성 아타나시 예배당(Параклис "Св. Атанасий Александрийски")이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 아타나시 예배당, Bulgaria)


"성 아타나시 예배당"은 18세기에 세워졌는데,

이후 낡아진 건물은 여러번 복원되고,

프레스코가 덧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의 특이점은

원래 이 예배당이 가지고 있던 성화는

5점 밖에 없었고,

나머지 성화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기증한 것이란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글을 보니,

특히 70대의 이반 니콜라예프라는 분이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들한테 모금을 해서,

예배당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아마 나한테 설명해주려다 막혔던

그 관리인이 그 분이신가보다.


아무튼 그런 그와 여러 사람의 노력 덕분인지

지은지 3세기나 된 이 예배당은

마치 이제 막 지은 것처럼

모든 것이 다 선명했었다.


그런데 건물 자체는

괜히 그런 느낌인지 좀 기운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전문적인 건축가가 지은 게 아니라,

그냥 집을 짓고 그걸 성당으로 삼은 것 같은

소박하고 시골스러운 느낌이었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 아타나시 예배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 아타나시 예배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 아타나시 예배당,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 성 아타나시 예배당, Bulgaria)


그러고보면 이 예배당은

이것의 역사성보다 현재성에 더 방점이 찍힌,

그리고 이 동네 밖 사람들에겐 큰 의미가 없는

그런 장소이고,

아마 선생님들로서도

특별히 설명할 꺼리가 없었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그때는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으로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 알 수 없던

그 성당에서 나와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바치콥스키 수도원(Бачковски манастир, Bachkovo Monastery)"으로 향했다.


"바치콥스키 수도원"은 11세기에 세워졌으며,

유럽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동방정교 수도원 중 하나란다.


그 때가 12시인가 1시쯤 됐나 그랬는데,

이라크 학생이 배고파서 밥 먼저 먹겠다고 했고,

다른 시리아 학생 한 명도 같이 빠졌다.


그래서 선생님 세 명과 미로슬라바, 레만, 나

이렇게 여섯명이 수도원에 들어갔다.


아주 많이 유명한 곳인지,

수도원 입구부터 쭉

토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었는데,

 

관광시즌이 아니라서 그런지,

가게가 많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수도원 안은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시는 듯한

블라디미르 선생님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거기 경비 아저씨가

불가리아 사람이 그러면 어떡하냐고

아주 호되게 호통을 쳤고,


선생님은 아주 머쓱한 표정을 지으시며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 넣으셨다.


근데 인터넷 검색해보니,

관광객 개인이 찍은 듯 보이는

"바치콥스키 수도원"의 사진이 나온다.


아무래도 블라디미르 선생님이

불가리아인이라 역차별(?)을 당했거나,

엄격한 관리자에게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니,

사진은 찍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수도원 안은 뭔가 특별하게 화려한 건 없었고,

언젠가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

그런 수도원의 모습이었다.


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면 사각형의 뜰이 나오는데,

그 뜰을 둘러싼 바깥벽이

2층으로 되어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한쪽 벽에는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그리고 그 수도원의 역사를 그림으로 설명한

커다란 벽화가 기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수도원 한 가운데는 성당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분수같은 게 있었는데,

당시에는 유난히 가물어서 그랬는지,

그냥 겨울이어서 그랬는지,

물 없이 마른 상태였다.


거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수도원 중앙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성당 안에서

난 촛불 두 개를 사서

두 가지 소원을 빌고 초를 꽂았다.


그렇게 성당 안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여자 선생님중 한 분이

여기가 기적을 이루는 성당으로 유명하다고

마치 천기를 누설하기라도 하는 듯

조심스럽게 속삭이며 귀뜸해주셨다.


그래서 거기를 나와서

기념품 파는 상점에 들어가서

"기적의 성모마리아(чудесна богородица)"

라고 쓰인 성상화를

하나는 나를 위해,

하나는 곧 그리스에서 만나게 될 정교도 ㅎ을 위해,

그리고 또 하나는 나를 마중나와주시기로 한

ㅎ의 그리스인 대부님을 위해,

이렇게 3개를 샀다.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수도원 바깥 출구에는

불가리아 정교회가 종교 예식에 사용하는

고대교회슬라브어

시편 117장 25절에 나오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라는 성경 구절이 큰 글씨로 쓰여있다.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2014년 1월, 바치콥스키 수도원, Bulgaria)


수도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황량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각자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다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그게 아마 2시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랑 같이 계속 있었던 레만은

어느 순간 어딘가로 사라졌고,

식당에는 미로슬라바와 선생님 세 분, 나

이렇게 다섯명이서 갔다.


내가 뭘 먹어야할 지 몰라서

직원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가장 비싼 "어린 소고기" 요리를 추천했고,

그걸 주문해 먹었는데

생각보다 기름기가 많아서

내 입맛에 딱히 맞진 않았다.


나 빼고 다른 사람은 다 생선을 시켜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에서 나오는 민물 생선 하나가 무척 유명해서

거기 가면 다들 그거 먹는단다.


어쩐지 식당에 들어가기 전

다들 그 옆에 연못을 들여다 봤었다.


2014년 겨울엔 눈이 너무 안온다고들 걱정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연못에 물도 별로 없고

물고기도 몇 마리 없긴 했었다.


그래도 정말 왜 선생님들은 그걸 얘기 안해줬을까?


그뿐 아니라

나는 잔뜩 기대했었는데,


선생님들은 아센 요새며,

그 산봉우리 위 작은 예배당이며,

바치콥스키 수도원이며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완전 자유방임주의였다.


러시아 같았으면

몇 년도에 누가 지었고,

무슨 재료를 사용했고,

높이 몇 미터,

넓이 몇 평방미터며,

몇년도엔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여기에 누가 살았으며,

뭐 그런 들어도 전혀 기억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마구 쏟아부었을텐데,


불가리아어 선생님들은 별 설명을 안 해준다.


어쩜 참여한 학생도 별로 없어서

선생님들도 신이 안 났는지,

참가자들이 다들 불가리아어로 설명해도

잘 못 알아듣게 생겨서

일찍이 포기했는지,

아님

그냥 원래 불가리아인들은

여행을 한국인들처럼 그렇게

보고 먹는 거 위주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에 있을 때는

가이드가 줄줄줄 기계처럼 설명해주는,

제대로 다 소화도 못 할

지나치게 구체적인 정보의 만찬이 더부룩하더니,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정보 많은

러시아 여행 가이드에 익숙해졌는지,

아님

내가 워낙 지식욕이 강해서 그런지,


난 그런 불가리아식 혹은 한국식 여행이

좀 심심하고 뭔가 허기졌다.


암튼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이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런데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오는 길도 참 좋다.


해지는 하늘도

멀리보이는 완만한 산세도,

별거 없는 그 밑의 너른 들판도

다 너무 잘 어울려서 근사하다.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2014년 1월, "아센 요새"에서 "소피아"가는 길, Bulgaria)


기대와 달리

설명을 많이 못 들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소풍이 나쁘진 않았다.


그 때의 느낌은 딱 그 정도였는데,

지금 다시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정말 좋다.


아마 나혼자 불가리아에 갔으면,

그런 게 거기 있는지도 몰랐을 그런 절경도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

불가리아의 아름다움도 흠뻑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여행 이후에 비로소 난

불가리아가 아름다운 나라인 걸 느끼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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