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포츠 팬이다. 직접 하는 걸 즐기지는 않지만, 직관이나 중계 보는 걸 좋아한다. 아직도 슬램덩크 만화책을 보면 울고, 2018년에는 인생 버킷리스트였던 엘클라시코를 바르셀로나 캄프누에서 직관했으며, 매년 '내 올해는 기필코 야구 끊는다' 하고서 TV에서 롯데 야구가 나오면 눈을 떼지 못한다. 워낙에 뭔가 하나에 빠져들면 깊게 파고들고, 맘에 들면 오랫동안 계속하는 성향 탓도 있는 듯하다. 그렇게 한 번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과몰입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건 맘처럼 잘되지 않더라.
얼마 전 아라시 오타쿠 선언을 하고, 틈만 나면 아라시가 나오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파고 있다. 싱글, 앨범을 워낙 많이 낸 터라 유튜브로 아라시 음악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흥얼거리면서 일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아라시 곡들 중에서는 가사도 멜로디도 좀 밝고 희망찬 노래를 좋아하는데, 데뷔곡인 ARASHI에서부터 Happiness, 키미노우타(너의 노래), guts, daylight 같은 노래들이 특히 좋다. 2000년대에 나온 오래된 곡들은 확실히 세련되진 않지만, 듣고 있으면 유난히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벅찬달까. 멜로디가 선명한 떼창 부분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날도 일하면서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뭔가 전주부터 유난히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유튜브 알고리즘 만세). 어 이거 뭐지 하고 보니 제목은 여름질풍(나츠하야테). 도입부부터 반짝거리는 느낌이 왔다. 아라시 노래의 후렴구는 거의 떼창인 경우가 많은데, 이 곡의 떼창 후렴구 부분에서는 유난히 스포츠 팬의 뉴런을 건드리는 뭔가가 확 느껴졌달까. 전주 부분부터 쌓아 올려 후렴구에서는 제목처럼 질주하는 느낌.
이거 스포츠 만화에서 많이 느꼈던 분위긴데? 하고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2018 ABC 여름의 고교 야구 응원송/ 열투고시엔(熱鬪甲子園) 테마송'이란다. 아, 멤버 중 니노미가 야구소년이었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찾아보니 아이바가 2018년 대회의 '열전 고교 야구 100회 스페셜 내비게이터'를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츠하야테 무대에서는 엔딩에 아이바가 마운드의 흙을 가슴에 갖다 대는 투수 퍼포먼스를 한다.
세상에, 고시엔 테마송이라니. 고시엔은 '한신 고시엔 구장(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을 뜻함과 동시에 '일본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를 말한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이름, 고시엔. 매년 8월, 야구 소년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꿈의 무대 고시엔. 야구를 좋아하는 일본 고교생이라면 동경의 장소일 고시엔. 그 주제곡이라서 이런 가사,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고 납득이 되었다.
나는 특히 야구나 축구 같은 팀 스포츠 선수들의 열정에 빠져드는 타입이다. 국가는 상관없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대만이든 스페인이든. 젊은 선수들의 끊임없는 단련, 투지, 팀워크. 팀의 승리를 위해 본인을 혹사하면서까지 힘을 내는 에이스, 그런 에이스를 위해 더욱 묵묵히 본인의 역할에 충실한 선수들, 우리 선수들을 가장 빛나게 하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 하지 않는 스태프들, 우리 팀의 기세를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응원단. 땀과 눈물과 혼으로 빚어지는 그 아름다운 광경들. 스포츠를 접하면 항상 나오는 뻔한 클리셰지만, 알면서도 나는 이런 서사에 흥분한다. 그 순수한 스포츠에 대한 열정에 눈물이 난다.
どこからか聞こえてくる 励ましてくれる声
어디선가 들려오는 격려해 주는 목소리
いつか返したいんだ
언젠가 돌려주고 싶어
数え切れない「ありがとう」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마워'
約束果たせたら 君と笑い合いたい
약속을 지키고 나면 너와 마주 보고 웃고 싶어
嵐ー夏疾風
(아라시-여름질풍)
목 빠져라 기다렸던 야구 개막전(개인적으로 야구가 개막해야 진정한 봄이 온다고 생각한다). 유니폼을 차려 입고 위풍당당하게 사직구장에 들어서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와 같은 열정을 가진 팬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응원가를 부르고 있자면, 우리 선수들이 입장하기도 전에 피가 끓는다. 주객이 전도되어, 선수들 경기 내용보다 사직구장에서 하나가 되어 외치고 있는 우리 팬들 때문에 눈물이 날 때도 많다. 롯데 자이언츠는 최근 몇 년간 좋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그래서 너무 힘들지만), 스포츠에 진심으로 임하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결국 나는 늘 감사하게 된다. 몇 년째 기대했다가 실망하지만, 그래도 응원을 멈출 수 없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스포츠 팬인 것을.
그래서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런 감정이 너무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이다. 고교 야구를 본 적은 없지만, 고시엔에 서기까지 이를 악물고 노력했을 소년들. 우리 학교를 위해 목이 쉬어라 응원했을 소녀들. 아직 어리기에 더욱 솔직하게,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올 승리의 함성과 패배의 울음을. 그 젊은 열정의 아름다움을. 이 순간이 곧 사라져 버린다 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은 그 시절을. 너무도 잘 알 것 같기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거다. 어쩌면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고교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섞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라시의 여름질풍. 아라시의 오타쿠가 되어버린 내가, 이 곡 하나로 펼쳐지는 뜨거운 서사에 감동하며.
야구 오타쿠이자 아라시 오타쿠인 나는 이 야구+아라시 조합에 주저앉았다.
2018년 고시엔 우승학교는 야구 명문고인 오사카의 '오사카 토인'.
https://www.youtube.com/watch?v=y9ZfOhEhg2I
https://www.youtube.com/watch?v=exqhp6n0R3Y
(가사는 의역을 많이 함)
眩しすぎる夏の陽差し
너무도 눈부신 여름 햇살
走り出す想いを胸に
달리기 시작하는 마음을 가슴에
一人問いかけてみれば
홀로 물어보면
聞こえる本当の声
들리는 진짜 목소리
きっと辿り着ける
반드시 닿을 수 있어
答えはここにある
답은 여기에 있어
約束の場所へ
약속의 장소에
その日まで涙見せず
그날까지 눈물은 보이지 말고
今 吹き抜ける夏疾風
지금 불어오는 여름 질풍
新たな息吹を告げる風の音
새로운 숨결을 고해 바람의 소리
まばゆい光集めて
눈부신 빛을 모아서
願いを乗せて
소원을 실어 보내
どこまでも続く蒼空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하늘
見上げる夢に手を伸ばして
올려다본 꿈에 손을 뻗어
いつの日にか 届くように
언젠가 닿을 수 있도록
夏疾風
여름 질풍
遠く見える蜃気楼
멀리 보이는 신기루
投げ出しそうな心
내던져 버릴 것만 같은 마음
どこからか聞こえてくる
어디선가 들려오는
励ましてくれる声
격려해 주는 목소리
いつか返したいんだ
언젠가 돌려주고 싶어
数え切れない「ありがとう」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마워'
約束果たせたら
약속을 지키고 나면
君と笑い合いたい
너와 마주 보고 웃고 싶어
さぁ 舞い上がれ夏疾風
자, 날아올라라 여름 질풍
抑えきれずに高鳴る鼓動
걷잡을 수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의 고동
限りある時の中 輝け命
한정된 시간 속에서도 빛나라 생명이여
暮れてゆく茜空
저물어 가는 붉게 물든 하늘
明日へとまた つなぐ希望
내일로 다시 이어지는 희망
どんな未来が 待っていても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一人ひとりの物語
한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泣いたり笑ったり
울거나 웃거나
喜び (苦しみ)
기쁨(슬픔)
分け合い (助け合い)
서로 나누어(서로 도와서)
こみ上げる想いのままに
북받치는 감정을 그대로
さぁいこう
자, 가자
今 吹き抜ける夏疾風
지금 부는 여름 질풍
新たな息吹を告げる風の音
새로운 숨결을 고하는 바람의 소리
まばゆい光集めて
눈부신 빛을 모아
願いを乗せて
소원을 싣고
どこまでも続く蒼空 見上げる夢に手を伸ばして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하늘 올려다본 꿈에 손을 뻗어
いつの日にか 届くように
언젠가 닿을 수 있도록
夏疾風
여름 질풍
吹き抜ける風に (夏疾風)
불어오는 바람에
願いを乗せて (夏疾風)
소원을 싣고
約束の場所へ (夏疾風)
약속의 장소에
いつの日にか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