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은 은혜 갚기의 연속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by 산들

*방영시기 : 시즌 1 2013년, 시즌 2 2020년


*등장인물 : 사카이 마사토, 우에토 아야, 오이카와 미츠히로, 카타오카 아이노스케, 타키토 켄이치, 카가와 테루유키


*산들의 코멘트

2013년 일본 전역은 일요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돌풍에 휩싸였다. 금융이라는 장르에 특화된 작가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드라마는 회가 거듭될수록 인기를 드높여 마지막 회 수도권 시청률이 42%를 넘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일본어 공부하려고 이 드라마를 시작했다가, 사건이 너무도 흥미진진하고 몰입감이 좋았고, 동시에 은행 특유의 어려운 용어와 존경어 표현에 좌절해 일본어 공부고 뭐고 때려치우고 자막을 열심히 보며 빠른 시간 내 완결까지 해치운 드라마다.


'당했다면 당한 만큼 갚아준다. 배로 갚아준다!'라는 주인공 한자와의 대사에서 느낄 수 있듯, 이 드라마는 은행이라는 보수적인 조직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는 한자와가 열심히 발로 뛰며 복수하는, 속 시원한 '직장인 판타지' 드라마다. 분식회계, 배임, 횡령, 꼬리 자르기 등 은행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혹한, 그렇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원작 소설 작가가 실제로 미쓰비시 은행에서 5년가량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인 듯싶다. 드라마는 원작 소설의 내용 일부를 편집해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 두 권 분량의 내용을 총 10회 드라마로 만든 만큼 전개가 빠르고 몰입감이 좋다. 한자와 역할의 주연배우 '사카이 마사토'의 열연 또한 주목할 만하다. 왠지 모르게 웃고 있어도 눈이 우는 것 같은 처연한 인상인데, 아락바락 노력해서 훌륭한 복수를 완성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고구마 10개 먹은 답답한 속에 사이다 100캔을 들이붓는 상쾌함이 느껴진다.


2013년에 워낙 인기 있었던 작품이고 소설도 4권까지 있어, 많은 사람들이 1권 2권 내용의 시즌 1에 이어 시즌 2를 원했으나, 처음에는 사카이 마사토 배우가 한자와 나오키 이미지가 고착될까 봐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어지는 시청자들의 요청에 부응해 촬영에 돌입했고 2020년에 시즌 2를 방영했다. 한결 독하고 스케일 큰 사고를 몰고 와 시즌 2도 대성공했다.


한자와 나오키를 관통하는 소재 중 하나는 '직장 생활은 은혜 갚기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의 배경은 도쿄 제일은행과 산업 중앙은행이 합병해 만들어진 메가뱅크 도쿄 중앙은행으로, 합병 전 출신지에 따른 주요 임원 위주의 '줄타기'와 '라인 밀어주기'가 만연한 가운데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이들의 암투가 볼만하다. 나를 출세길로 이끌어 줄, 대형 안건이 임원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임원들을 사전 포섭해둔다든지, 내가 모시는 임원에게 걸림돌이 되는 인물의 앞길은 짓밟는다든지 온갖 더러운 수를 서슴지 않고 쓴다.


그리고 항상 따라오는 말이 ‘은혜 갚기’다. 상대가 베푼 은혜를 입었다면 지시받은 일이 무엇이든, 그게 부당한 일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하거나 계속 충성을 바치는 은혜 갚기. 보수적인 일본 은행 배경의 드라마라서 그 부분이 아주 과장되어, 은혜를 갚지 못하면 ‘도게자’(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닿도록 조아리는 행동)라도 해서 용서를 빈다. 주인공 한자와도 본인이 도움을 받은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빚을 지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갚아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드라마 내 등장하는 악역들과 다른 점은 사람 소중한 것을 안다는 것, 그리고 미래 가치를 볼 줄 안다는 것.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고 사람을 도구로 보며 필요하면 한 순간에 사람을 내치는 은행 내 리더들과 확연히 다른 가치관으로, 마지막까지 가보면 은행에서 살아남은 것도 자기편을 많이 만든 것도 한자와다. 물론 상사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면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눈을 치켜뜨고 전력으로 덤비기 때문에 적도 많지만, 한자와와 한번 연을 맺은 이들은 한자와의 의리에 탄복해 그의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크든 작든 도움을 받았다면 언젠가 갚는다. 한자와처럼 직장인이라면 이 단순한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두는 게 좋다.



라인을 타지 않고도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사내 정치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90년대 생이 입사하는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회사에는 연줄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고, 대놓고 같은 라인의 선배를 지지하고 후배를 끌어주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다. 힘 있는 임원에 줄 잘 선 사람의 승진, 나한테 뇌물 준 하청업체 밀어주기 등 대놓고 음흉한 작당모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해보면 우리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은연중에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협조하고 있다. 업무를 같이 하고 나서 감사 커피라도 한 잔 얻어먹었다면, 하다 못해 도움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일이라도 하나 받았다면 그 사람이 부탁하는 다음 일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울 테니. 이렇듯 원만한 회사 생활을 위해서는 크든 작든 은혜를 입었다면 그를 갚는 것이 기본 규칙이다.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회사 안 거의 대부분의 업무들은 많든 적든 누군가와 협업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앱 서비스 기획 업무를 예로 들어보자. 기획한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디자이너, 퍼블리셔, 개발자와의 협업이 필요하고 해당 서비스가 개인정보보호 등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는 법무팀과 정보보안조직의 확인이 필요하다. 출시 전 앱 기능 테스트를 위해서는 QA 부서, 앱 출시 후 이용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 조직, 앱을 사용한 고객 문의를 접수해 전달해주는 고객상담팀, 외부에 서비스 홍보를 하기 위해 협업하는 홍보팀 등 수없이 많은 조직과 동료들이 업무에 관여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 일도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왕왕 생긴다. 업무 요청을 할 때는 담당자를 잘 확인하고 요청하는 내용과 기한을 명확히 하되, 상대방의 업무 일정 등도 고려해 내 입장만 강요하지 않도록 한다. 명확한 요청사항 정리와 진행 상황에 대한 빠른 공유도 중요하다.


사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단순히 '업무 수행' 관점이 아니라 '협업'의 차원에서 진짜 성공했는지 여부는 그 일이 끝나고 나서 양 쪽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관계를 형성해 다음에도 함께 일할 때 시너지가 날 지 아니면 다신 상종도 안 하려고 할지. 고로, 내가 뭔가를 부탁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이를 당연히 여기지 말고, 업무의 결과가 좋았든 좋지 않았든 감사를 표하는 습관을 가지자.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다 보니, 내 업무를 도와준 사람이 뿌듯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나중에 회사에서 나라는 존재를 평가하는 데 있어 큰 차이를 만든다. 물론, 내가 이렇게까지 도와줬는데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고. 신입사원 때부터 이를 습관처럼 들이고 확실히 감사를 표하면 이것만큼 든든하게 내 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또 없다. 어렵지 않은 일인 듯 하지만, 익숙하지 않으면 안 하는 사람은 계속 안 하더라.


A는 새로 경력 입사한 앱 서비스 기획자다. 기획팀과 개발팀이 한 층을 쓰고 있었는데, 사이는 영 좋지 않은 듯했다. 기획팀에서는 서비스를 기획해서 개발팀에 전달하면 항상 개발 요건이 밀린 게 많아 이번에 반영 못한다는 피드백만 준다고 불만이었고, 개발팀에서는 개발자와 요건에 대한 일정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조건 언제까지 개발해 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짜증이 난다는 입장이었다. 한정된 인력으로 론칭해야 하는 서비스가 많은 경우 어느 회사에서나 자주 발생하는 갈등이었다. 팀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기획과 개발 간 우선순위에 대한 협의가 원만히 되지 않은 상황.
A는 그간 팀에서 해온 방식과 다르게 내 서비스를 담당해줄 개발자를 먼저 찾아가 적극적으로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다. 개발자에게 기획서를 보내면서 자세한 것은 만나서 설명드리겠다고 미팅을 요청했다.
'기획하는 서비스의 목적, 핵심 기능, 타깃, 이용 프로세스 등을 명시한 문서를 기반으로 기획자와 개발자가 직접, 충분히 소통한다.' 어쩌면 기본인 이 원칙이 우리 회사에서는 다른 급한 업무들이 많다는 이유로 착실히 이행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는 개발자를 만나 기획하고자 하는 서비스에 대해 미리 준비한 문서를 기반으로 설명했고, 모호하게 명시된 부분에 대해서 개발자가 질문하고 A가 다시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을 통해 요건을 명확화 했다. A는 오픈 일정을 전달하며, 이는 희망 일정이니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고 실제 반영 가능한 일정을 피드백해달라고 하고 미팅을 종료했다.
A가 원한 서비스는 A가 희망한 일정대로 문제없이 오픈되었다. A는 서비스 오픈 후 앱스토어 등에 올라온 고객들의 피드백들을 정리해 담당 개발자 수신, 개발 팀 유관 담당자들을 참조해 메일을 보내며 바쁜 와중에 꼼꼼히 개발을 진행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이후 A가 기획한 서비스는 개발팀에서 알게 모르게 우선순위가 되었다.


A는 기존에 팀 선배들이 해왔던 '업무 넘기기'식의 업무 형태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협업을 지향하며 개발자와 소통했고 무엇보다 '감사'를 잊지 않았다. 명확한 요청사항 정리 및 문서를 기반으로 한 자세한 설명, 상대방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 일정 협의, 결과 공유 및 감사 표시의 아름다운 프로세스 덕에 A는 기획한 서비스의 성공은 물론이거니와 동료로서의 호감 또한 얻게 되었다. A와 같은 업무 태도라면 앞으로도 개발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개발자들 사이에 제대로 된 기획자라는 입소문이 돌게 되면 회사에서의 입지도 굳어지는 법. 업무 능력은 평범하지만 평판이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주변에 감사할 줄 알고, 특히 한 번 도움받은 내용에 대해서 잊지 않고 도움으로 갚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것이 멀리 보았을 때 상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으로 얻어낸 '라인'보다 나를 더 드높이는 비기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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