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억이 생겨났을 무렵부터 나는 혼자였고, 내게 밥을 주는 사람은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여기저기 구겨진 놋쇠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었고, 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면 ‘쯧’하고 혀를 차며 돌아섰다. 배가 고픈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있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주 어렸을 때, 뛰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묶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땅에 단단히 박힌 쇠말뚝에 연결된 내 몸통 길이 두 배 남짓의 쇠사슬이 내 목줄에 연결되어 있었다. 몇 발짝 걸어보면 이내 목줄이 팽팽해져 숨이 막혔다. 지금쯤은 괜찮겠지? 생각하며 슬며시 움직여도 목을 옥죄는 감각은 여전했다.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해가 새로 몇 번을 다시 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달리는 것은 이제 포기했다.
내게도 집은 있다. 할머니가 준 플라스틱으로 된 박스였다. 할머니 딴에는 신경을 써 주신 거겠지만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싫었다. 집 안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씽씽 돌아가는 자동차 바퀴나 바삐 걷는 사람들의 신발 정도가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 위를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나무의 이파리도 사람들의 표정도 둘셋씩 짝을 지어 다니는 참새도 볼 수 없었다. 흙이 패일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릴 때는 하는 수 없이 집 안에 틀어박혀서 생각했다. 다른 곳에서도 자동차가 저렇게 달리고 있을까.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 집 앞에 앉아 있었다.
눈앞 이차선 도로에는 늘 무언가 지나다녔다. 음악소리가 쿵쿵 울리다가 사라지기도 했고, 뭔가 아주 빠르게 달리기도 했고 때로는 사람들이 나와 소리를 질렀다. 내 앞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왕왕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무시하거나, 깜짝 놀라거나 했다. 딱히 귀여움을 받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나를 들여다 봐주었으면 했다. 목에 묶인 줄이 최대한 늘어나는 데까지 나와서 길가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하지만 특별히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때때로 내게 빈 깡통이나 돌멩이 같은 걸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내 앞으로 깡그랑 소리를 내며 뭔가 떨어질 때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집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사람들이 던지는 게 내 머리통이나 등허리에 맞기도 했다. 그러면 공중에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아프고 쓸쓸했다. 아무도 나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건가 보다. 지나치는 누군가 나에게 ‘어라 누렁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누렁이인 모양이었다.
가끔은 나 같은 개가 지나갔다. 어쩌면 나 같은 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개는 늘 사람과 함께 걷고 있었다. 나란히 걷다가 내가 보이면 사람은 개를 들어서 안고 지나갔다. 그래서 그 개와는 아직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개는 하얗고 털에서 윤이 났고, 겨울에는 요란한 색의 겉옷이나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상했다, 개는 옷을 안 입는데. 우리는 털이 있잖아. 하지만 그 말도 개에게 건네지 못했다. 개와 함께 있는 사람은 늘 나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지나갔으니까.
내 등 뒤에는 자동차를 정비하는 공장이 있었다. 공장은 자동차를 집어삼켰다가 뱉어 냈는데, 내 눈은 늘 그렇게 공장에서 나와 달려 나가는 자동차 뒤꽁무니를 쫓았다. 자동차는 달릴 수 있었다. 나는 못 가는데.
공장에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늘 입에서 연기를 뿜었다.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투박하고 딱딱하고 커다란 아저씨 손은 늘 땀으로 축축했지만 그래도 아저씨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건 늘 기분이 좋았다. 아저씨는 내 밥에 개미나 돌 같은 게 들어가면 건져내 주고, 내 목줄이 묶인 쇠사슬이 꼬여 있을 때는 몇 분이고 그 자리에 털썩 앉아서 미간에 주름을 지은 채 열심히 풀어주기도 했다. 내 밥그릇 옆에 자그마한 플라스틱 그릇을 두고 물을 떠다 주는 것도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저씨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사진출처 : 머니투데이 '1m 목줄'에 묶여…시골개의 하루를 보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21017593615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