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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17. 2022

나의 바다

 철썩철썩하고 둔탁하게 밀려와 알알이 청량하게 깨지는 물방울들을 본다. 우르르 달려와서 약을 올려놓고는 약삭빠르게 뒤로 물러나고, 다시 기세 좋게 몰려온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습기 잔뜩 먹은 바람이 머리칼을 정신없이 헤집고, 피부 위에는 짙푸른 색의 막이 끈적하게 한 겹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대로 한참을 바라보며 앉아있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나는 삶이 지칠 때면 바다로 간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바다란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어렵지 않게 해운대나 광안리에 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싫을 때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해 단짝과 해운대 바다 앞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곤 했다. 잔뜩 열이 오른 좁은 교실에서 튀어나와 바다가 보이는 백사장 계단 한 구석에 앉아 있으면, 한껏 구겨져 있던 마음이 판판하게 펴지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눈이 트이는 광경을 두고 일정하게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쏴아쏴아하는 파도소리는 복잡한 생각도 걱정도 사라지게 하는, 일종의 신경안정제 같은 역할을 했다. 그땐 집 앞에 바로 바다가 있으면, 두통약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끼고 살았던 주제에 나는 늘 바다가 부족했다.


 그때가 아주 호사스러운 시절이었다는 것을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바다를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열병에 걸린 듯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바다를 보기 위해서 수고로운 이동을 하고 돈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부산 가까이에 살고 계셨고, 나는 방학이면 늘 부모님 댁으로 향했기에 부족한 바다는 그때 채울 수 있었다. ‘바다는 늘 내 주변에 있던 건데 뭐’하며 나는 여름 공기에 들뜬 서울 친구들의 바다 탐닉 행렬에 합류하는 걸 거부했다. 바다는 어디 가지 않으니까.  


 대학생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고교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랍시고 온갖 술을 퍼 마시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음악, 영화, 쇼핑을 즐겼지만 이상하게도 기분 좋게 취한 후에는 늘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다. 예쁘고 비싼 공산품은 대학생인 나를 기쁘게 만들었지만, 그 감각은 항상 오래가지 못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시대에 나도 자기소개서를 그럴싸한 기업체들에 들이밀면서 고군분투했고, 운이 좋게도 가고 싶었던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 사회에서 1인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하고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겁이 많고 철이 없는 어린애 같은 정신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홀로 서울살이, 서울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대학교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함께 했지만, 회사원이 된 후에는 혼자 살면서 회사에서 돈을 받는 만큼의 책임감을 짊어지고 다녔다. 이른 아침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만원 전철을 타는 것도 고역이었다. 어린 시절 TV에서 본, 서울 직장인의 상쾌한 미소가 가득한 생활에서는 회사 업무의 위기는 있었을지 언정,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타야 하는 고된 시련은 없었는데. 지하철 손잡이도 잡지 못하고 사람 무리에 떠밀려 이리저리 휘청거리고 있으면, 거센 파도에 떠밀려 뭍으로 밀려난 해파리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매일 보고 싶었던 건 바다의 파도지, 인간 파도가 아니었다고.


 잔뜩 지쳤던 그 주에는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부모님 집으로 내려갔다. 해운대 바다가 보고 싶었다. 한 여름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신음하는 해운대 말고, 조금 차분한 얼굴로 숨을 쉬는 해운대. 때는 11월, 이미 쌀쌀한 바람이 부는 시점이었으니 바다를 보며 멍하니 앉아있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다. 고향의 오랜 친구와 함께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너무도 익숙한 거리를 한 달음에 달려가 조우한 눈앞의 바다는, 한동안 높고 뾰족하고 복작복작한 스카이라인만 담고 지냈던 내 좁아진 시야를 탁 트이게 해 주었다. 고층 빌딩 마냥 세로로 높게 고정되어 있던 경직된 내 사고가 가로로 전환되는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귀가 시리도록 사나운 바람이 얼굴을 때려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 몇 없는 백사장에서 멍하니 서 있던 우리는 갈매기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방에서 과자라도 꺼냈다면 해운대 모든 갈매기를 불러들일 수도 있겠다는 공포심이 들었다. 내 한쪽 팔 길이는 될 법한 덩치 좋은 갈매기들의 견제와 함께 얼굴에 사정없이 돌진해 오는 초겨울 바다 바람, 대낮의 햇살을 그대로 반사하는 푸른 물결의 표면과 엷은 삼베 빛깔의 모래 덕에 잔뜩 눈이 부셔서 내가 기대했던 여유로운 바다 산책은 물 건너간 지 오래. ‘어,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과 함께 마주 본 친구의 얼굴도 잔뜩 찡그려 있었고, 힘겹게 눈을 마주친 우리는 배를 잡고 폭소했다. 이게 뭐야, 우리 이러려고 휴가까지 내고 해운대 달려온 거야? 멋진 바다 사진을 건져보겠다며 야심만만하게 시작했던 해운대 산책은 갈매기에 쫓기는 도망자,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다 칼바람에 내 머리칼이 내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코미디 영화 같은 장면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배를 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서울살이 하며 무채색으로 가득 찼던 생활 속에 밝게 빛나는 총천연색이 마음속에서 번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몰골이 하도 우스운 데다 이제 손까지 시려서, 근처 카페라도 가자 하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백사장 모래에 반쯤 파묻힌 500ml 음료 페트병이 눈에 들었다. 하얀 도화지에 조그만 먹물 자국이 남은 느낌이라, 그냥 지나치기에 찝찝해서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비어 있는 걸로 봐서는 누군가 음료수를 먹고 양심 없이 모래사장에 던지고 간 듯싶었다. 내 소중한 부산 바다에 이런 걸 남겨둘 수 없지 하고 페트병을 들고 에코백에 넣었는데, 눈앞에 또 다른 맥주 캔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누가 먹고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주변에 눈을 돌려보니 과자 봉지며, 폭죽 껍질이며 온갖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백사장 위에 남겨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슬며시 열이 받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이 이런 짓을 할리가 없어, 이건 분명 잠깐 놀러 온 사람들이 벌인 만행이다 싶었다. ‘이래서 관광지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외지인은 별로라니까 하는 생각을 누가 봐도 지금은 해운대에서 외지인인 내가 하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바다에 이런 짓을 해놓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친구와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큰 비닐봉지를 하나씩 사 들고 나왔다. 그렇게 나의 해운대 방문은 멋진 바다 구경에서 갑자기 백사장 청소로 그 소명을 바꾸게 된 것이다.


 페트병이나 캔은 발로 밟고 과자 봉지들은 최대한 접어서 부피를 줄였다. 백사장을 헤집은 지 30분도 안 되어 큰 비닐봉지가 쓰레기로 가득 찼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잔뜩 열이 올라서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더 큰 쓰레기를 찾아내는지 친구와 경쟁이 붙어서 생기가 넘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쓰레기를 줍고 바라본 바다는 기분 탓인지 한결 온화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존재함으로써 이렇게나 많은 걸 주고 있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바다에서 빼앗아 가기만 하는 걸까.

 

 춥고 배가 고파서 들어간 카페의 사장님은 우리를 보고선, 쓰레기는 카페에서 분리수거해서 버리겠다고 우리 손에서 바다 악당들의 흔적을 받아 주셨다. 초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집착적으로 백사장 쓰레기 수집을 한 우리는 추위에 코끝이 빨개져 있었고, 나는 콧물까지 주룩 흘리고 있었으니 카페 사장님이 보시기에도 참 불쌍해 보일 법했다. 따뜻한 카페에서 달콤하고 상큼한 유자차를 마시고 있으니 그제야 평화로운 겨울바다가 눈에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 아름다운 건 살짝 떨어져서 관조해야 하나 봐, 하는 넋 나간 소리를 해대며 코를 훌쩍거렸다.‘직장인 여성의 초겨울 바다 나들이 사진’ 같은 멋진 모습을 찍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무기력함이 사라지고 살아갈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기운이 빠지면 바다를 보러 간다. 단조롭게 차올랐다 빠지는 파도를 보며 멍하게 앉아서, 바다가 품은 ‘때로는 평화롭고 때로는 과격하게 바뀌는’ 거대한 에너지를 느낀다. 사람은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게 되어있는 동물이다. 언제까지나 내 소중한 바다를 찾을 수 있도록, 이제는 바다 마을의 외지인으로서 지켜 나갈 것이다. 바다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무섭게 째려보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쓰레기를 주워서 내 가방에 넣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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