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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9. 2018

시골 개에 대한 고찰

시골 똥개도 사랑스러워요

 나는 우리 뿌꾸 팔불출이라, 조금 친해진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뿌꾸 사진을 들이대곤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우리 뿌꾸예요, 귀엽죠?" 어서 귀엽다고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담긴 나의 물음에, 보통 사람들의 대답은 두 가지로 나뉜다. "네, 귀엽네요" 혹은 "어휴 잘~생겼네" 후자로 말해주시는 분들께는 "뿌꾸, 여잔데..." 하는 나의 작은 항의와 3초간 어색한 침묵이 동반된다, 보통은.

뿌꾸는 산책이 좋개


 귀여움에 대한 이야기 뒤에는 항상 무슨 개냐 혹은 종이 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진돗개인 것 같다고 대답하기는 하는데,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뿌꾸는 소위 말하는 시골 개, 똥개, 누렁이 과다. 개에 대한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뿌꾸가 대충 진돗개처럼 보이기는 한다. 다만 차이라면, 뿌꾸가 얼굴이 좀 더 얄썅하고 몸이랑 다리도 날씬해서, 진돗개보다 인상이 미묘하게 날카롭다는 것 정도. 진돗개인 것 같지만 혼혈(?)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대부분 반려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반려견이 어떤 종이든, 순혈견이든 믹스견이든 아낌없는 사랑을 퍼붓는다. 이 아이의 출신이 어디든, 그저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 우리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반려동물 관련된 TV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고, 강아지 공장이나 분양 샵, 유기견들의 실태에 대한 보도도 많아져 사람들의 반려동물 생명의 중함에 대한 인식도 점점 깊어지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간식 보면 혀가 빼꼼

 아주 어렸을 때는 외할머니 댁에서 누렁이 두 마리를 키웠었다. 어렴풋한 기억에 전형적인 시골 개였던 그 멍멍이들은 어린 내가 할머니 댁에 갔을 때 살갑게 나를 맞이하며 꼬리를 흔들고, 정성스레 나를 핥아주곤 했다. 나보다 덩치가 큰 멍멍이들이었지만, 나를 보살펴주고 놀아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그 멍멍이들이 '개'라는 동물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을 거다. 그때부터 나는 강아지라면 사죽을 못쓰고 좋아하게 되었다.

시골 외할머니댁에 있었던 누렁이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아파트에 살면서 몰티즈를 키웠었다. 이름이 쫑이였던 그 아이는 고집도 세고 조금 제멋대로인 경향이 있었지만,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 밤늦게 하교하는 고등학생이었던 나와는 다소 서먹했을지언정 초등학생이라 집에 자주 있었던 동생과는 아주 살가운 사이였다. 그래도 주말에 TV를 보고 있을 때, 슬쩍 쫑이를 내 옆으로 데려와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 포로로-하고 조그맣게 숨을 내쉬며 잠드는 것을 보는 게 좋았다. 하지만 아직도 쫑이와 더 자주 더 자유롭게 놀아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빚처럼 남아있다.

언니 손잡아줘!!

 그리고, 현재는 부모님 댁 마당의 정복자인 우리 뿌꾸가 있다. 뿌꾸는 믹스견이다. 종종 부모님은 똥개라고 하시는데 시골이 고향이신 부모님 입장에서 '똥개'는 욕도 아닐뿐더러 강아지에 대한 정겹고 애정 어린 표현일 수 있지만, 우리 자매는 단어가 맘에 안 든다며 질색한다. 그래서 아무도 우리 뿌꾸를 똥개로 부르지 않는다. 대신 아무도 '뿌꾸'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도 않는 것 같다. 나는 우리 뿌꾸를 뿌꾸꾸라 부르고, 엄마와 동생은 뿌순이(뿌꾸가 사고를 쳐놓으면 종종 '가시나'로 바뀜), 아빠는 강아지라 부른다. 각자의 애칭이 다 다르기 때문에 아직 청소년기를 보내는 뿌꾸는 혼란의 도가니 일지도 모른다. 하나로 통일해야 훈련이나 대화할 때 뿌꾸도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각자 애정 담긴 단어가 다른걸. 그냥 다들 행복하게 살자.

물 먹다 말고 미소 뿌꾸

 뿌꾸, 뿌꾸꾸, 뿌순이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조그마한 강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뿌꾸 사진을 보여주면 "??" 하는 반응이 나타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생각해보면 15킬로가 넘게 나가는 뿌꾸를 '강아지'라고 부르는 우리 아빠가 제일 대단한 것 같다. 엄마 친구분에게서 얻어온 이 조그마했던 강아지가, 이렇게 덩치도 커지고 내 마음과 지갑 속에서 애정과 현금을 슉슉 뽑아가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꽃같은 뿌꾸꾸

 내가 뿌꾸 팔불출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뿌꾸는 정말 똑똑하고 건강한 것 같다. 왜, 인간이나 동물이나 소위 순혈일수록 유전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하지 않는가? 자연스러운 교배가 아닌, 인간의 삐뚤어진 순혈에 대한 욕망으로 희생되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우리 뿌꾸는 말 그대로 시골 스멜-. 시골 개가 갖추어야 할 잔망스러움과 감당되지 않는 힘, 심각한 발랄함, 압도적인 건강함을 다 겸비했다고 본다.  


 얼마나 영리하냐면(영악하냐면), 본인 마음속에 우리 가족들에 대한 이미지나 역할을 심어놓고 그렇게 더 행동하게끔 유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 있다. 우선 우리 엄마는 뿌꾸에게 맹목적인 사랑과 존경의 존재인 것 같다. 뭘 해도 웬만하면 이쁘다 하시니까 뿌꾸는 엄마한테 한없이 애교를 부린다. 사실 밥은 평소에 아빠가 주시고, 내가 시골에 내려가는 때에는 내가 맡아서 주는데, 뿌꾸의 애교에는 차이가 있으니 개인적으로 좀 억울하다. 뿌꾸가 처음 왔을 때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거나 응가를 하고 있거나 잔디를 물어뜯고 있어도 '아이 이쁘다 이쁘다' 하셔서 엄마 그렇게 뿌꾸 키우면 애 spoiled child로 자라니까 너무 오냐오냐 하지 말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하곤 했다. 이미 돌이키기엔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언니 나 이 집 놀러 가고 싶은데 문 열어 달라고 해봐

 간식 통도 엄마가 여시면 몇 개가 순식간에 뿌꾸 입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간식을 주니까 애가 밥을 안 먹지!' 하고 따지고 들면, 엄마는 나름대로의 변명 사유가 있었다. 출근할 때마다 저렇게 엄마 봐서 좋다고, 안 가면 안 되냐고, 잘 다녀오시라고 꼬리를 흔드는데, 너 같으면 애가 불쌍해서 뭐라도 하나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냐고. 퇴근해서 들어오면 또 어서 오시라고 저렇게 온몸으로 반가움을 주체를 못 하는데 그 모습이 또 너무 이쁘니 뭐라도 더 주고 싶지 않겠냐고. 그 말을 들으면 묘하게 납득이 된다.  


 다음은 아빠. 아빠는 뿌꾸의 훈육을 맡고 계시고, 뿌꾸에게 가장 엄한 존재지만 그와 동시에 뿌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신다. 마당을 다듬거나 할 때 뿌꾸를 돌봐주시기도 하고, 밤마다 산책을 같이 가시니까. 뿌꾸 입장에서는 전략적 제휴를 맺어, 가장 잘 보여야 할 사람이기도 하겠지. 아빠가 간식을 던지면 뿌꾸가 멋지게 점프해서 착! 하고 간식을 낚아채는 훈련을 시켜놓으시고서, 우리 자매가 왔을 때 자랑하듯 보여주시는 모습에 뿌꾸는 내 말은 죽어도 안 듣지만 아빠 말은 잘 듣는구나 하고 묘하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더랬다. 실컷 마당에서 놀고서 내가 '이제 네 집으로 들어가'! 하면 콧방귀만 뀌는 뿌꾸에게 아빠가 '이제 들어가!' 하면 입을 삐죽하면서도 집안으로 들어가는 뿌꾸의 모습을 볼 때 그 상대적 박탈감이란.

흐에엑 언니 저게 뭐야

 문제는 우리 자매다. 우리 자매의 포지셔닝은 대체 뿌꾸에게 뭘까. 일단 집에 가면 반가워는 해준다. 그게 너무 과해서, 앉아서 뿌꾸한테 인사하다가 뿌꾸가 달려들어 뒤로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문제지만. 가끔 그 반가운 버둥거림에 뺨도 맞는다. 입에 폭풍 뽀뽀도 필수다. 이쯤 되면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가끔 집에 놀러 오는 객식구이자 간식 셔틀로 아나 싶기도 하다.

언니 빨리 공 던져줘
빨리 공 달라고!!
아니야... 뿌꾸야 그럴거면 다시 공돌려 줘

 전에 한 번은 집 앞 데크에서 놀다가 페인트 칠해놓은 곳을 뿌꾸가 밟으려고 하길래 안된다고 제지하며 뿌꾸를 들었는데, 마치 내가 자기를 때린 것처럼 "끄이이이이잉 낑낑'하는 소리를 질러 되레 내가 놀란 적도 있다. 그 소리에 동생과 엄마는 왜 가만히 있는 뿌꾸를 괴롭히냐며 나쁜 언니라고 어서 놔주라고 맹 비난을 쏟아냈다. '이 영악한 자식, 너 이러려고 일부러 소리 질렀지!' 하고 있으니 뿌꾸의 한쪽 입꼬리가 씩 올라갔던 것처럼 보였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나는 억울했지만, 서열도 뿌꾸보다 아래로 내려앉은 것 같아 맘 한구석이 착잡했다. 뿌꾸야, 내가 너보다 서른 살은 많다고... 하지만, 보통 둘이 있을 때는 얌전히 옆에 붙어 있어 주는 걸 보면 다정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자 희망사항이다.  


개껌을 주니 말 그대로 잡아먹고 있다

 뿌꾸의 얼굴은 볼 때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르게 생긴 것 같아서 신기하다. 어떨 때는 홀쭉하다가도, 토실토실해 보이기도 하고, 주둥이가 길어서 코봉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특히 여름이 다가올수록 털갈이를 하면서, 얼굴에 원숭이 같은 라인이 생기며 좀 못생겨진다. 그래서 못난아~하고 불렀더니 앞발로 때리며 응징하더라. 분명, 우리가 말하는 걸 알아듣는 게 틀림없다. 표정도 아주 다양한데, 보통은 입을 시원스레 벌린 웃는 상이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눈이 처져서 슬퍼 보인다. 눈동자가 커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뿌꾸 눈 속에 내 모습이 비치는 게 정말 사랑스럽다. 언니인 내가 볼 때, 확실히 우리 뿌꾸는 이쁘다거나 귀엽다는 말보다는 잘생겼다는 어울린다. 허허, 녀석 장군감일세-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특히 산책할 때, 힘이 장사니까. 초여름이 슬슬 다가오면서 또 털이 심각하게 빠지기 시작하는데, 벌써 마당에는 누렁이 털이 둥둥 떠다닌다.

순둥이 뿌꾸꾸

 무릎에 앉히기도, 어딜 함께 다니기도 어렵지만 마당에서 후다닥 뛰어다니는 뿌꾸를 보거나, 데크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몽상하고 있자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다. 바쁜 서울생활 속에서도 떠올리면 마음의 위안을 주는 우리 이쁜 똥개 뿌꾸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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