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사이좋게 공존하기
우리 뿌꾸가 들으면 서운할 소리일지 모르지만, 나는 고양이도 좋아한다. 들어 올리면 보드랍고 따끈하고 묘하게 가벼운 몸뚱이 하며, 내 손을 핥을 때 닿는 까칠한 혓바닥이며, “냐~” “먀~”하며 수다쟁이처럼 말을 거는 모습들은 확실히 강아지들과는 다르다. 고양이를 무진장 싫어하는 뿌꾸 때문에, 뿌꾸랑 있을 때면 고양이한테 관심 없는 척하지마는.
나는 대학교 근처 동네에 사는데, 그래서인지 길고양이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인식이 그리 차갑지는 않은 편이다. 대학교에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동아리가 있고, 그 친구들이 대학교 주변 영역에 사는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이며 밥 같은걸 챙겨주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사고칠 일이 그다지 없다. 고양이가 사람들이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뒤지거나, 고양이들끼리의 싸움으로 발생하는 소음 문제도 거의 없다. 대학교에 살지 않는 동네 고양이들도 구청에서 포획해다가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다시 방생했다. 그리고 동네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고양이 밥을 챙겨준다. 슈퍼나 빌라 앞에 놓인 고양이 밥그릇을 보는 일이 흔하다. 나름 평화로운 길고양이 공존 구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사는 빌라에는 작년부터 유독 한 마리의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늘 “냐~냐~”하고 말을 거는 통에 나는 그 친구 이름을 ‘냐냐’라고 붙였고, 냐냐가 애교를 부리면 못 이기는 척 받아주었다. 우리 빌라 앞집 아저씨가 매일 냐냐의 식사를 챙겨주셨기 때문에 배고픔이 뭔지 몰랐을 냐냐는 붙임성 좋게 사람들 앞에서 배를 뒤집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에 비비적거리며 예뻐해 달라고 하곤 했다. 그 때문에 나도 동네 편의점에서 고양이 간식류를 사다가, 일층의 우리 집 우편함에 넣어두고 냐냐를 만날 때마다 조금씩 꺼내 먹였다. 이때만 해도 냐냐가 나를 유독 따르는 것 같아 으쓱했으나, 어느 날 우연히 다른 아저씨에게도 냐냐가 부비적거리고 살갑게 구는 것을 보고 배신감도 느꼈더랬다.
작년 겨울이 지나면서 빌라 주변에 새로운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들었기에 냐냐랑 싸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동네 주변 분들이 고양이가 늘어나면 늘어나는 대로 밥도 더 많이 내놓으셨기 때문에 배부른 고양이들은 다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빌라 앞에는 고양이들이 한 겨울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박스와 밥그릇, 물그릇이 놓이게 되었다. 누군가 이 길고양이들을 더 주체적으로 돌보겠다고 손을 든 것이다. 우리 빌라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 길을 방해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 것 같았다. 박스는 겨울 내내 온전했고, 고양이 밥그릇은 늘 깨끗했다.
어느 날은 퇴근하면서 집에 들어가는데 빌라 주변 고양이 4마리가 다 총출동해 현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싶어 멀찍이 서서 지켜봤더니, 우리 빌라의 캣맘이 고양이 사료를 그릇에 붓고 계셨다. 고양이들은 그 모습이 익숙한 듯 어른스럽게 옆에 앉아 있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캣맘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나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 가방 속에 츄르를 하나 꺼내며 말을 걸었다. 요즘 마른 것 같은 냐냐가 걱정되어서였다.
“저기 저 고양이는 겨울 지나면서 많이 마른 것 같아요.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애였는데.”
냐냐에게 익숙하게 츄르를 먹이는 내 모습에 캣맘은 조금은 안심한 듯한 미소를 지으시며 냐냐가 이가 안 좋아져서 음식을 많이 못 먹고, 그루밍도 잘 못해서 털이 꼬질 해진 거라 했다. 그러면서 약도 챙겨 먹이신다고 했다. 길 위의 작은 생명들을 위해 마음 쓰는 캣맘의 모습은 내게 마더 테레사 못지않게 숭고해 보였다. 이 빌라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 먹인 지 6개월 정도 되었다는 캣맘은 고양이 하나하나의 이름도 알려주셨다.
“이 아픈 얘는 루비고요. 저기 덩치 큰 애는 레오예요. 사자처럼 덩치가 커서 레오라고 불렀어요. 레오 옆에 붙어있는 조그만 애는 아쿠예요. 너무 귀여워서 아쿠 귀여워~ 하다 보니 아쿠가 됐어요. 저기 구석에 겁 많은 애는 꾀꼬리예요. 무서우면 크게 울거든요.”
아, 이 녀석 이름은 루비였구나. 내가 그동안 냐냐~라고 부르는 게 어떻게 들렸을지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마 “야옹~”정도로 들리지 않았을까. 레오와 아쿠는 나도 몇 번 밥을 준 적이 있는데, 레오는 항상 경계하고 아쿠만 밥을 받아먹기에 레오가 아쿠의 엄마인 줄 알았더니 남남이란다. 레오가 작은 아쿠를 받아준 거라고. 힘겨운 길 위에서의 생활이지만 우리 동네 고양이들은 나름의 질서와 더 약한 고양이에 대한 배려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고양이들을 해치기는커녕, 안쓰러워하고 보살펴주려고 하는 사람들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건물 밖을 나서면서 대문에 드러누운 고양이에게 좀 비켜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몸을 구기면서 나와야 했지만, 이런 멋진 공존이라면 나의 작은 불편함쯤이야 얼마든지 오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