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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01. 2019

시골 개 뿌꾸의 천적

그 이름도 위풍당당한 시골 길냥이

 뿌꾸는 입이 무거운 강아지다. 웬만해서는 멍 소리를 입에 담지 않는 강아지지만, 가끔 야심한 시각에 엄청 크게 짖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서 누구 수상한 사람이라도 지나가나, 동네 이웃이 강아지 산책이라도 시키나 하고 들여다보면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 뿌꾸가 왜 그럴까 하고 며칠 가만히 지켜보고 나서야 알았다. 원인은 바로 고양이.

산책하는 뿌꾸의 표정은 항상 밝다, 고양이만 안 보이면

 길냥이는 어느 동네에나 있다. 우리 동네도 시골이니만큼 길고양이들이 꽤나 많이 산다. 마을 주민들이 고양이한테 해코지하는 일도 없는 데다, 고양이 사료나 먹을 것을 내놓는 집도 많아서 고양이 입장에서는 살만한 동네 인지도 모른다. 우리 뒷집도 고양이에 호의적이어서, 사료를 자주 챙겨주시는 덕에 고양이들이 자주 방문한다. 그중에서도 노란 코리안 숏헤어 고양이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별로 크지 않아 내가 가까이서 보고 싶어 조심조심 다가가면 귀찮은 듯 나를 쳐다만 볼 뿐 스스로 그루밍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뒷집 텃밭에서 수확한 늙은 호박 옆에 앉아 햇빛을 쬐는 노랑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어쩜 저렇게 팔자가 좋을까 싶기도 했다.

호박을 보호색 삼아 평화롭게 쉬고 있는 고양이 모녀들
새끼 고양이와의 첫 만남,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이 많아 우리집 마당을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 집 터 주변에 원래 살던 고양이도 있는 것 같은데, 뿌꾸가 어릴 때 뿌꾸 밥을 몇 번 빼앗아 먹기도 했다. 그 녀석은 노란 고양이보다 덩치가 크고 하얀 몸에 까만 무늬가 있는 약삭빠르고 능청스러운 고양이다. 날이 좋으면 우리 집 데크 테이블에 드러누워 있었다. 남의 집 마당에서 뭐하는 짓이야 하고 윽박질러도 뭐 어때 하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쭈우욱 기지개를 켰다. 어린 뿌꾸는 지금보다 더 겁쟁이여서 길고양이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가까이 와서 약을 잔뜩 올리고 날쌔게 도망쳐 버리는 거다. 고양이들이 엄마 아빠가 소중히 가꿔둔 잔디밭에 실례를 하고 간 적도 수도 없이 많다.

새끼 고양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우리집 정원에도 자주 놀러온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된 것일까. 뿌꾸는 다른 개들한테는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지만, 고양이는 눈에 띄었다 하면 쫓아가서 짖어대기 바쁘다. 우리 집 주변은 나름 뿌꾸 본인 영역인데 거기다 고양이들이 영역표시를 하고 우리 집 음식물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재활용품 상자에 들어가 있으니 고양이라면 모두 도무지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산책하다 고양이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미친 듯 달려가는 뿌꾸를 통제하느라 리드 줄을 쥔 내 손에는 땀이 베인다. 16 킬로그램 네 발 짐승이 작정하고 뛰쳐나가면 팔이 빠질 것 같고 나도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가 된다. 흥분한 뿌꾸가 앞발을 들고 일어서면 이게 개인지 말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그럴 때면 근엄하게 앉아! 를 몇 번이나 외치면서 뿌꾸를 진정시키고 앉힌 뒤, 간식으로 주의를 분산시켜야 한다. 산책 중 다른 강아지와 마주칠 때는 처음에만 관심을 가지다 곧 다시 뿌꾸 갈 길 가는 경우와 대조적이다. 고양이만 보면 달라지는 뿌꾸 때문에 밤 산책을 갈 때마다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뿌꾸 산책길에 가끔 강아지 친구들이 함께 해주기도 한다

 뒷집 노란 고양이가 얼마 전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늘 여유로워 보이는 노란 어미 고양이를 똑 닮은 조그만 고양이 두 마리가 뒷집 나무를 오르내리고 마당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은 정말로 귀여웠다. 문제는 그 새끼 고양이들이 우리 집 텃밭으로까지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 뿌꾸는 새끼고 어른이고 구분할 것 없이 고양이는 다 너무 싫은가 보다. 새끼 고양이가 텃밭에 그 조그만 발자국 하나라도 남길 새라 사납게 짖어댔다. 새끼 고양이들은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피했지만, 이젠 뿌꾸가 짖기만 할 뿐 쫓아 나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서는 유유히 뿌꾸 약을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펜스 안의 뿌꾸는 '언니 저 고양이들 좀 쫓아줘'하는 눈빛으로 두발로 서서 나한테 매달리지만 사실 나는 길고양이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그럴 때면 뿌꾸의 시선을 애써 피한다. 고양이와도 사이가 좋아지면 좋을 텐데, 뿌꾸는 강아지 친구는 없으니까. 고양이 친구라도 생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을 읽은 듯 뿌꾸는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퓨우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미 고양이의 포스


어미 고양이가 하악 하면서 위협하자 뿌꾸는 황급히 눈길을 피했다

 뿌꾸와 오전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뒷집 마당에서 쉬고 있던 노란 고양이들을 만났다. 어미 고양이는 뿌꾸를 경계했지만 새끼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귀를 쫑긋하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그런지 뿌꾸는 달려들지 않고 고양이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한 1분 정도를 그 상태로 대치했을까 어미 고양이가 불안했던지 우리 보고 저리 가라는 듯이 털을 잔뜩 세우며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뿌꾸가 움찔한 것처럼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을까, 고양이를 바로 보던 시선을 먼저 거두고 딴청을 피우는 뿌꾸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아, 뿌꾸가 이 기싸움에서 졌구나.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가 화를 내고 있으니 덩달아 불안해졌는지 마당의 리어카 위로 피신했다.

뿌꾸를 피해 리어카 위로 도망간 새끼 고양이 두 마리

 역시 개와 고양이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걸까. 우리 뿌꾸가 목소리는 커도 알고 보면 쫄보에 평화주의자라 해코지할 일은 없을 텐데. 하긴, 고양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덩치가 훨씬 큰 뿌꾸가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 같으니 이 둘의 우정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그렇게 평소에 원수라도 만난 듯 고양이만 보면 목줄이 끊어질 듯 달려들었으면서 정작 눈앞에 고양이들이 있으니 내 옆에 붙어 서서 얌전해진 뿌꾸를 보니, 방구석 여포가 따로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래 놓고 또 밤에 펜스 안에 들어가면 우리 집 앞에 고양이 지나간다고 야단스럽게 멍멍 거리겠지. 뿌꾸 딴에는 고양이다! 우리 식구들이 위험해! 하고 경계를 서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 가족 정서에 좋을 것 같다. 아무튼 뿌꾸를 위해 우리 가족은 뿌꾸 보는 앞에서는 고양이에게 잘해주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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