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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02. 2019

우리 집의 집밥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음식들

 부모님 댁에 내려와 있으면서 서울과 확연히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바로 배달 음식을 시켜먹지 않는다는 거다. 서울에서 살 때는 툭하면 저녁에 배달 어플로 주문한 떡볶이나 수제 햄버거, 마라샹궈 등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흔한 중국 음식이나 분식뿐 아니라 그리스 음식, 스페인 음식처럼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간단히 집에서 받아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밥 짓는 수고로움을 돈으로 사는 문명의 편리함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시골에 머무는 지금도 그런 짜고 달고 매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동네는 너무 시골이라 배달 어플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빵과 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서 켠 배달 음식 어플에서 우리 집으로 배달 올 수 있는 음식은 한식, 양식, 중식, 야식, 디저트를 포함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얼마나 망연자실했는지. 아무튼 그때 이후 집에서 착실히 식사를 만들어 먹는다. 

팬에 파, 양파, 소고기를 볶기만 해도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난다

 평소 요리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사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서울의 좁은 부엌에서는 서 있기도 답답하고 치우는 게 귀찮아 음식을 자주 사 먹었었지만 부모님 댁의 주방은 충분히 넓고, 인덕션도 크고 에어프라이어, 오븐, 믹서기 등등 주방 기구들도 많다. 무기가 많으면 전투에 임하는 마음이 한층 든든해지듯, 주방이 빵빵하니 괜히 들어가서 뭔가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 부모님과 함께 2주일에 한번 정도 차 타고 20분쯤 걸리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식재료로 냉장고를 채워 넣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두부조림, 두부를 한번 굽고 조림해봤는데 그냥 바로 하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다

 회사로 출근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청소나 빨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한다. 로봇 청소기를 한번 돌린 후 청소가 덜 된 부분이 있으면 일반 청소기로 다시 정리한 뒤 밀대로 바닥 구석구석을 열심히 닦는다. 빨래는 엄마가 아침에 세탁기를 돌려놓고 나가시기 때문에 나는 빨랫감을 꺼내 마당에 잘 널어놓기만 하면 된다. 서울에서 살 때는 빨랫감이 적었는데, 시골로 내려온 지금은 4인 가족의 빨랫감을 정성스레 너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이 노동들을 매일 해야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몰랐던 집안일의 가치를, 이제 내가 해보면서 다시금 깨닫는 중이다. 그리고 많은 집안일 중에서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요리다. 다른 일들은 루틴이 있지만, 요리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노동인지라 내가 뭘 먹고 싶은지에 따라 재료 준비부터 조리, 차림새가 달라지는 것이 재미있다.


큰 토마토가 없을 때는 방울토마토로도 토마토 계란 볶음을 만들 수 있다

 요즘 부담 없이 자주 해 먹는 요리 중 하나는 토마토 계란 볶음이다. 몸을 생각하면서 자극적인 맛을 피하고 있는 내게 딱인 메뉴다. 살짝 단단한 감이 느껴지는 완숙 토마토로 만드는 게 맛이 좋다. 토마토를 미리 삶아 껍질을 벗겨서 쓰면 더 부드럽다고 하지만 나는 왠지 토마토 껍질의 식감이 느껴지는 게 좋아 그대로 쓴다. 주먹만 한 토마토 두어 개를 준비해 우선 8조각으로 자르고 그걸 한 번 더 잘게 잘라서 준비해준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크게 어슷 썬 대파를 볶아 파 기름을 내준다. 어느 정도 파향이 올라오면 큰 계란 두 개를 잘 풀어서 프라이팬에 붓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듯 저어준다. 계란이 살짝 익어서 덩어리질 때쯤 썰어둔 토마토를 넣고 굴소스를 작은 스푼 하나 정도 분량으로 넣는다. 나는 이 볶음은 물기가 많은 게 더 술술 넘어간다고 생각해서 물도 반 컵 정도 부은 뒤 잘 저어가며 졸인다. 토마토가 충분히 부드러워지면 다 건져내 큰 접시에 담아준다. 간은 굴소스 소량으로만 하기 때문에 짜지 않고, 소화가 잘 되는 건강식이 된다. 가끔은 밥 대신에 토마토 계란 볶음을 먹기도 한다.

 

고춧가루를 넣은 간장 떡볶이. 언뜻 낙지볶음 같아 보인다

 기름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아한다. 떡볶이는 먹고 싶지만 고추장 떡볶이가 너무 짜고 맵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름 떡볶이를 만들어 본 거였는데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고 맛있었다. 기름 떡볶이는 떡이 얇을수록 양념이 잘 베어 들기 때문에 나는 가래떡을 구한 뒤 그걸 세로로 자르고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크기로 또 잘라준다. 그리고 물에 살짝 데친다. 밀떡으로 하는 게 더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쌀떡으로도 자주 만들었다. 데친 떡에는 간장 한 스푼과 참기름 한 스푼을 넣어 밑간을 해둔다. 나는 떡볶이에 부재료를 듬뿍 넣는 것을 좋아해서 대파, 느타리버섯, 양파, 소고기도 작게 썰어서 함께 준비했다. 느타리버섯은 미리 한번 데쳐 두면 좋다. 양념은 간장 두 스푼, 미림 한 스푼, 매실액 한 스푼, 고춧가루 두 스푼을 잘 섞어 둔다. 재료가 준비되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풍미를 위해 버터도 한 조각 넣는다. 팬이 충분히 뜨거워지면 대파, 양파, 소고기, 느타리버섯을 순서대로 넣어 살짝 익히고 밑간해 둔 떡을 넣고 양념을 부은 뒤 잘 저어준다. 재료가 잘 어우러지면 접시에 예쁘게 담아내고 깨를 뿌린다. 통인시장 원조 기름 떡볶이만큼 임팩트 있는 맛은 아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든든해서 생각날 때마다 자주 해 먹는다.

밀푀유 전골은 언제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주말 저녁 같은 때에는 밀푀유 전골 같은 화려한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밀푀유 전골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비주얼과 맛이 훌륭한 국물요리라서 부모님께 해 드렸을 때 정말 좋아하셨다. 배추, 깻잎, 샤브용 소고기를 준비해 차곡차곡 쌓은 뒤 냄비 크기에 맞게 잘라주고 냄비에 켜켜이 잘 쌓아둔다. 청경채가 좀 들어가도 맛있다. 한가운데는 주로 표고버섯을 4 등분해서 넣어준다. 목이버섯도 있으면 넣는다. 최근에는 밀키트로도 밀푀유 만들기 세트가 잘 나온다. 밀키트로도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재료가 신선해서 만족스러웠다. 육수는 시중에 많이 파는 해물 육수 티백을 이용하는데, 따로 미리 끓여둔다. 재료가 가득 든 냄비에 준비한 육수를 부어서 한소끔 팔팔 끓여주면 채소와 고기의 맛이 육수와 잘 어우러져 한층 진한 국물 맛을 만든다. 채소와 고기를 건져서 연한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속부터 뜨끈해지는 것이 정말 맛있다. 남은 국물에는 칼국수를 끓여 먹으면 훌륭한 마무리가 된다.


에어 프라이어로 만든 감자칩, 굵게 썰린 것들은 잘 안 익는다

 반찬 만들기가 귀찮을 때면 텃밭 가지를 두 개 떼어다가 잘라서 비닐을 씌운 뒤 전자레인지에 3분 정도 돌리고 양념간장을 끼얹어 먹는다. 훌륭한 가지 나물이 된다. 간식이 먹고 싶을 때는 감자를 얇게 채 썰고 올리브유에 적신 뒤 에어 프라이어에 돌려 감자칩을 만들어 먹는다. 시중의 감자칩처럼 바삭하진 않지만 그 일정하지 않은 두께가 오히려 식감을 재미있게 자극한다.

날이 싸늘할 때 생각나는 어묵탕!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하게 먹으면 더 맛있다
반건조 오징어가 있어 무침을 했는데 식감이 딱딱해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막상 시골에 살아보니, 시골의 집밥이라고 해서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집 나무와 밭에서 나는 온갖 재료들로만 밥을 지어먹는 게 아니었다. 물론 우리 텃밭의 대파, 가지, 상추, 쑥갓 같은 채소들이 식탁을 한층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밖에서 사 먹는 밥이 아닌, 내가 직접 만들어 보는 집밥. 오늘 저녁에는 뭘 만들까 매번 메뉴 고민하는 것은 힘들지만, 온 가족이 나눠 먹을 생각을 하면 저절로 정성이 들어간다. 가족이 한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밥하기 귀찮을 때면 밖에서 사들고 온 만두나 김밥을 먹더라도, 그걸 온 가족이 함께 나란히 앉아 먹는 것.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 입과 마음을 함께 채우는 것. 그게 우리 집 시골의 집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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