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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l 15. 2021

이동식 에어컨 설치하기

폭염에 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무척이나 더워진 날씨에 관리비를 아낀다고 버티는 것은 더 이상 사람 할 짓이 아닌 것 같았다. 엊그제부터 우리 집도 에어컨을 개시했고 쾌적한 실내 공간을 누리기 시작했다.


관리비를 아껴야지, 하는 마음에 에어컨 없이 견디는 것은 아빠 아이디어였다. 이 집은 커뮤니티가 잘 돼있는 단지로 유명하다.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어도 관리비가 29만 원이 빠진다. 관리비엔 헬스장 이용권 50회가 포함되어 있다. 끝내주는 커뮤니티 시설을 유지하는 대신 비싼 관리비가 단점이다. 게다가 이 집은 49평이나 되어 에어컨을 좀 튼다 싶으면 눈덩이 같이 관리비가 불어날 터인 즉, 아빠는 이 더위에 에어컨을 틀지 말고 참자고 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남편은 재택근무 중 더위를 피해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아빠와 나 둘이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을 때였다. 침묵이 가득한 집안에서 푹푹 찌는 열기까지 상대하려니 아빠나 나나 목이 자꾸만 탔다. 내가 일어나서 정수기까지 몇 걸음 다녀오면 그다음엔 아빠가 일어나 냉커피를 타오고. 또 조금 이따가 내가 콤부차를 타 먹으면 아빠는 탄산수를 마시며 한낮의 열기를 붕어처럼 계속 물만 마시며 견뎠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고 아빠는 에어컨을 틀었다.


"에이 씨발. 이렇게 아끼면 뭐해. 죽으면 끝인데. 에어컨 켜게 창문 다 닫아"


듣던 중 반가운 소리. 후다닥 창문을 닫았다.


이 집은 처음 분양 당시 에어컨 옵션 선택을 거실과 안방만 해 둔 집이었다. 아빠가 더위에 분통을 터뜨린 이후로 안방을 쓰는 우리는 잘 때도 에어컨을 틀고 잔다. 그런데 아빠방은 에어컨이 없어서 마음에 걸렸다. 처음엔 그런대로 견딜만하다던 아빠는 한번 분통이 터지고 나더니 오늘 아침 꼭두새벽부터 일렉트로 마트에 다녀왔다. 짊어지고 들어온 것은 이동식 에어컨.

우리 집 두 남자 열심히 에어컨 조립 중

우리 집 두 남자 열심히 이동식 에어컨을 조립하는 중이다. 창문 밖으로 빼는 덕트도 어쩜 이렇게 우리 집에 찰떡처럼 잘 맞는지. 한 삼십 분 틀어놓으니 통창이라 찜통 같던 아빠 방도 시원하게 냉기가 들어 잠 자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필요한 곳에 대한 소비는 미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끼면서 붕어처럼 물만 먹고 버티던 며칠 전의 여름 낮보다는 쾌적한 환경에서 한 여름이라도 따뜻한 커피를 먹고 싶다면 먹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아빠가 참고 참다가 결국 에어컨을 틀기까지는 그동안의 참기 습관을 이겨내는 내면의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에어컨 두고 샤워를 몇 번씩 해 가며 찬물로 더위를 버티는 사람이 어딨냐는 내 핀잔이 세상 물정 모르는 것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아빠, 우리가 관리비 몇 푼 못 낼 형편도 아니고 이러고 살진 말자."


내 말에, 아빠는 죽은 엄마가 떠올랐을까. 이동식 에어컨을 사 왔다. 나는 만족한다.

아빠 침실 이동식 에어컨 설치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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