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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l 30. 2021

예쁘시잖아요

진심인지 "굳이"  궁금해하는 내가 웃겼던 날

얼마 전 의정부 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내게 등기를 보낸다는 카카오톡 우편 알림 톡을 받았다. 잘못한 게 없는데 법원에서 무슨 일로 내게 등기를 보낼까 하면서도 겁이 났다.


득달같이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뭔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된 것은 아닐까.


"아, 저희 민원실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사건번호는 아시는지요. 성함이랑 생년월일 불러주시겠어요? 사건번호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사건번호는 또 뭐고. 확인해보니 내 집(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세 놓은)의 공탁금이 걸려있고 신분증을 지참해서 법원으로 찾아오라는 얘기였다.  받으러 오라는 얘기였구나.. 이해하고 법원으로 출발!


처음 해보는 것이다 보니 법원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공탁금은 얼마인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바쁜 직원분 붙잡고 많이도 물어봤다. 공탁금 수령 대상자는 아빠와 나, 남편이었는데 남편 것은 본인이 올게 아니라면 인감증명서를 지참해야 한다는 말에 나중을 기약하고 일단 아빠와 내 것만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돈이 생겼으니 무엇을 할까 하다가 결과적으로는 받은 돈으로 재산세 처리를 하고 내 손에 남은 것은 얼마 안 된다.


며칠 뒤 남편과 함께 법원을 다시 찾았다.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는데 절차를 모르니 차라리 직접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아빠와 내 것을 처리할 땐 시간이 꽤나 걸렸는데 남편 것을 할 때는 이미 공탁금 받을 사람은 다 받아갔는지 한산했다. 그때였다.


"어머, Y(나)씨 오셨네요. 아버님 성함은 YH 이시잖아요. 그때 남편 분 것 처리 못해서 그거 하러 오셨어요?"


남편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내 이름을 기억하지.  내 눈도 휘둥그레졌다. 궁금했다. 남편이 직원분께 물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이름을 다 기억하세요. 놀랐어요."


"그때 오셨을 때 예쁘셔서요. 예쁜 사람은 기억이 나요. 피부가 정말 좋으시잖아요. 호호"  직원분의 너스레.


히죽히죽. 혼자 신이 났다. 아니 나를 기억해주는 것도 신기한데 기억하는 이유가 무려 예뻐서라니. 얼마 만에 들어보는 예쁘다는 소리인지. 남편은 꾸역꾸역 와이프 기분 맞춘다고 한 번씩 예쁘다고 해주기는 하지만 집에서 아빠한테 맨날 살쪘다고 구박만 받다 보니 얼마나 예쁘다는 소리가 신기했는지 모른다.


"아이고, 알고 보면 여기 서류 내신 분들 성함 다 기억하고 막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신기하다. 진짜 머리가 좋으신가 봐요."


"아니에요. 진짜 예쁘셔서 기억해요. 제가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 전에 파주 지청에서 진짜 예쁜 분이 오셨거든요. 그분 기억하고 Y 씨 기억하고요."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남편에게 집에 오는 길에 몇 번이나 되물었다.


"JH(남편), 나 정말 예뻐?"


"그럼. 우리 부인 예쁘지. 그 직원분도 그랬잖아. 너 이뻐서 기억한다고."


"그건 그냥 하는 소리지. 근데 나 기분 진짜 너무 좋아."


"아니라니까. 공무원이 립 서비스해서 뭐하게. 네가 뭐 해주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그 직원은 그렇게 생각했나 봐"


엄마가 죽고 더 이상 나는 여자답기를 멈춘 듯한 삶을 살고 있다. 살도 전에 없이 찌고 안색도 별로 좋지 않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추레한 차림새로 집과 동네 필라테스 스튜디오나 간신히 나가는 일상에 누군가로부터 예쁘다는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꽤 신선한 일이었다.


집에서는 매일같이 아빠가 여자는 외모도 경쟁력이라며 다이어트를 외쳐대고 샤워할 때마다 미욱스럽게 찐 살을 원망하는 요즘 뜻밖의 칭찬이 만든 기쁜 하루.


남편이 아닌 사람의 칭찬을 믿고 싶어서 몇 번씩이나 유치하게 내가 예쁘냐, 어디가 이쁘냐, 얼마나 이쁘냐, 집요하게 묻고 남편이 지쳐 나가떨어질 즈음 집에 도착했다. 도착해선 아빠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얘기했다.


 "얘가 이렇게 눈치가 없어. 야 네가 거기 여직원 바쁜데 계속 이건 어째야 돼요 저건 어째야 돼요 질문해대니 이름을 안 외우고 배기겠냐. 순진해가지고."


아빠는 인정을 안 한다.


아무려면 어때 내 기분이 좋은데. 나는 예쁘다, 되뇌며 기분이 잔뜩 좋아져 궁둥이를 실룩대며 저녁 준비를 했다. 그런 나를 남편과 아빠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P.S. 맨날 우는소리만 하다보니 좀 소소하게 웃었던 얘기도 하고싶어 써봅니다^^  저, 공주병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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