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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l 29. 2021

칼을 들고 발 각질 제거를 도와준 아빠

슬리퍼를 신고 다닐 때마다 듣던 엄마의 잔소리는 없지만

"아 더러워. 너 발 각질 제거 좀 하고 다녀. 계집애가."


소파에 같이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말했다. 나는 아빠의 시선이 닿는 내 발 뒤꿈치를 같이 눈으로 훑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할 거야. 그리고 저번에 팩 했으니 좋아질 거야."


아빠는 그 소리를 내게서 한 열 번도 넘게 들었는데 전혀 나아지는 게 없자 마침내 칼을 들고 나섰다.


"가만히 있어. 문제 될 거 하나도 없어."


칼을 들고 내 발을 깎겠다는 아빠를 두고 온 몸의 감각이 절대 거부를 외쳤다. 아빠는 힘으로 내 옆구리를 누르고 가만히 있으라고 외치고 내 발 뒤꿈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발 각질 제거하는 돌로 문질러도 단단히 박힌 굳은살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생긴 것과는 달리 칼날은 연했다. 나는 눈을 감고 아빠가 "작업"을 마치길 기다렸다. 아빠의 "연장"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새살 난 듯 붉은색 예쁜 속살을 드러냈다.


흩트러진 허연 각질들을 물티슈로 닦으며 엄마 생각이 났다. 슬리퍼 신고 다니면 늘 발 뒤꿈치가 트던 날 보며 엄마는 신으면 발목에 닿을락 말락 한 양말을 던져주곤 했다. 발이 덥다는 이유로 싫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보통은 올리브영 같은 데서 파는 각질 연화 팩을 사용하면 없어지던 굳은 살은 엄마의 잔소리가 없으니 그 정도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만큼 두꺼워졌다. 마침내 그게 더럽다며 아빠가 나서기에 이르렀다. 나도 여자 앤 데 그런 건 좀 잘하고 다니면 좋으련만. 손이 많이 타는 아이라고 엄마의 핀잔을 받던 나는 이렇게 엄마의 부재가 표시가 난다.


엄마가 떠난지도 사 개월이나 흘렀구나. 숨 막힐 것 같던 고통도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 싶을 만큼 추스러졌고 자주 악몽을 꾸며 개운치 못하게 깨어나는 것 빼곤 내 일상은 잘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 이렇게 툭툭 엄마의 기억이 끼어들 때는 멈칫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죄책감 느낄 일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이상하게 괜찮으면 괜찮아서 미안하고 안 괜찮으면 안 괜찮아서 미안하고.


나는 힘이 든다 느낄 때 두 가지 생각을 한다. 삶과 죽음은 종이 양면과 같아서 늘 친구처럼 곁에 붙어 내게도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가슴속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 다른 한 가지는 내가 보란 듯이 잘 살아야 엄마의 일생이 의미가 있는 것이니 슬픔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 일평생 가정주부로서 온 가족을 내조하느라 일생을 갈아 넣었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잘 살아야만 한다는 의미다.


발 각질 제거를 아빠가 해준 것은 처음이다. 미혼 때 같이 살 동안 엄마가 내게 하던 잔소리를 아빠가 한다. 그렇지만 난 그 기분이 싫지 않다. 여전히 애티를 벗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남동생이 아닌 내가 아빠랑 같이 살고 있기에 아빠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안도는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고통을 조금은 덜 아프게 해주는 것 같다. 심술 많은 누나는 늘 남동생보다 부모님한테 사랑과 애정을 더 많이 갈구해왔고 나는 지금도 부모님의 사랑 어린 간섭과 잔소리를 필요로 하는 애+어른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발 각질  얘기를 하다가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왔는데 그냥 오늘을 기억하고 싶었다. 엄마가 떠올라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아빠가 있어서 나는 여전히 사랑받는 자식이라는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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