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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ug 13. 2021

아빠와 남편 사이 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

남편의 볼멘 목소리

어젯밤의 일이다. 아빠가 이틀 지난 국은 먹지 않기 때문에 부랴부랴 냉동실을 뒤져 삼치를 꺼냈다. 삼치를 넣고 김치찜을 하기 위해서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식사에 진심인데 매일 찌개의 종류가 비슷하고 반찬은 사 먹는 중이라 내가 차리는 식사는 늘 특별하지 않다.


어제는 난생처음 감자조림도 했다. 집에 감자가 많이 남아서 곧 싹이 날 것 같아서다. 두 가지 음식을 한 번에 만들다 보니 밥솥에 밥이 있는지 확인을 안 했다. 당연히 밥이 있겠거니 하고 말이다.


남편의 퇴근 시간은 일곱 시. 우리 집 저녁식사는 일곱 시에 맞춰 차리는 데 막상 찌개를 뜨고 반찬을 접시에 담고 이제 막 밥을 푸려고 보니 밥이 한 사람분 밖에 없었다.


"K(남편), 들어오는 길에 햇반 하나만 사 오면 안 될까? 집에 밥이 없네."


남편은 알았다고 했는데 약간 그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있었다. 평소 같으면 알았어~ 하고 말 텐데 전날 근무한다고 출근했다가 새벽 다섯 시에 퇴근한 여파로 예민해 그랬겠거니 했다. 그렇지만 남편의 볼멘 목소리는 늘 내 마음에 걸리는 일로 식사가 끝나면 왜 그런지 물어봐야지 하고 사온 햇반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식사가 끝나고 아빤 까르 산책을 나가느라 집을 비웠고 나는 본격적으로 남편이 왜 그렇게 볼멘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는지 취조(?)를 했다.


"어젯밤에 날을 새서 예민해서 그런 거야?"


"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어. 일단, 네 말대로 난 오늘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은데 갑자기 햇반을 사 오라고 하니 귀찮은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로는 햇반 편의점에서 사기엔 가격이 좀 사악해서 그 생각에 좀 신경질이 났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불편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


"뭔데?"


"나는 네가 주부로 늙어가는 게 싫은 것 같아. 내가 아는 너는 항상 플랜을 세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인데 주부로 안주하는 것 같은 너의 태도가 불만이야. 주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식사를 준비하는 건 네가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데, 아버님도 나도 당연히 네가 준비한다고 생각해서인지 밥통에 밥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화가 나."


남편은 합가 이후로 엄마의 몫을 내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스스로 메여 매일 밥과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내가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게 없는 것도 아니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밥을 차리기 위해 공부를 끊고 올라와 식사를 준비하다가 밥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에게 전화를 한 그 자체가.


나는 남편이 사회생활하는 내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엄마가 죽고부터 나는 이상하게도 집안 살림에 집착을 한다. 이 집이 깨끗하게 정돈되고 맛있는 밥 냄새로 가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것도 맞다.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이 내가 차려준 밥을 두 공기씩 먹으면 기쁘고 아빠가 오늘 찌개 잘되었네,  하면 기쁘고 뭐 그렇다. 그러다 보니 내 일상은 자연스럽게 가정주부의 그것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예전에는 세제가 떨어졌는지 냉장고가 비었는지 하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없으면 사 먹고 엄마가 준 반찬을 대충 데워먹고 그래 왔다. 그래도 남편은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집에 저녁상만큼이라도 따뜻한 국과 갓 조리한 반찬 한 그릇을 올리려 유튜브를 검색하고 조리법을 연구한다. 남편은 지나가는 말로 밥을 먹으며 <시금치 무침>을 해봐야겠다고 내가 말한 것도 거슬렸다고 한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퇴근하고 와서 내가 밥 차려주면 좋잖아?"


남편은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요리하는 것은 싫은데 막상 네가 한 게 너무 맛있어서 그것도 문제야."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시켜먹는 것을 원하는 남편과 끼니때 따뜻한 국과 반찬이 없으면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아빠에 대한 염려 사이에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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