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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ug 20. 2021

아빠는 내가 효녀라고 했다.

그 말을 하기가 그렇게 쑥스러웠나 보다

저녁식사 중에 아빠는 막걸리 한 병을 땄다. 내가 자잘하게 남은 김치를 그러모아 김치전을 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막걸리를 사 온 것을 보고 김치전을 했는데 아빠는 김치전이 있어서 막걸리를 딴다며 <또, 술!>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뤘다.


아빠와 여러 가지 얘기를 하다가 남동생과의 관계 시집과의 관계 등등 가족 간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갈등과 반목을 하지 말라는 얘기들.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이 살 것을 요구하는 얘기들. 당장의 처지에 치명적이지 않으면 누군가 힘들 때 도와주라는 얘기들. 반발심이 드는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대체로는 삶의 지혜가 담긴 조언들이라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었다.


아빠는 또 혼자 살고 싶다고 했다.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작은 집을 얻어서 우리와 합가를 청산하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지긋지긋한 말. 나는 물론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고 아빠는 우리와 같이 사는 게 불편하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불편한 게 뭔지 구체적으로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불편이라는 게 <아빠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불편할까 봐>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정작 우리 부부는 아빠와 함께 사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는 구석이 없다. 물론 따로 살 때보다 빨래를 좀 더 많이 하고 밥을 좀 더 자주 차리지만 그런 것이야 한번 할 거 두 번 한다고 더 힘들다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살림의 주체가 나고 내가 괜찮다는데 누가 불편을 논하겠는가.


아빠는 어느새 슬그머니 취기가 올라왔다. 까르가 사방천지로 돌아다녔다. 간식을 좀 얻어먹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남편은 까르가 우리 집 효녀지요, 하고 아빠에게 말했다. 그때였다. 아빠의 말.


"까르가 효녀? 효녀는 Y가 효녀지."


나는 그 말을 설거지하느라 듣지 못했는데 남편이 듣고 나에게 말해줬다. 아버님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리 말했노라고. 너의 노력을 아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고.


남편에게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늘 내가 문제라며 질책하기 바쁜 아빠와 합가 이래로 주야장천 싸웠는데 아빤 속으로는 내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보다, 싶어서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빠는 그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보다. 딸인데 좀 의지해도 되는데. 앞으로는 따로 살겠다고 우기면 못 들은 체 상대도 안 해야겠다. 나는 아빠랑 같이 사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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