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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ug 18. 2021

남편, 걱정하지 말아

기분조절 능력이 부족한 아내에 대한 너의 염려

요즘 집에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사소한 변화에 감정이 오락가락한다. 가슴이 답답하다가도 괜찮고 또 웃다가도 울적해지는 그런 류의 변덕스러운 심정이다.


어젯밤에 남편이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서 바닥에 누워 남편 재택근무하는 옆에서 울고 있었다. 남편은 근무하는 내내 나를 달래긴 해야겠고 시간에 쫓겨서 일은 해야겠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정말 민폐다.


남편은 어젯밤 우는 나에게 말했다.


"어머님은 가신 분이니 이제 보내드리고 남은 가족을 지켜줘. 널 사랑하는 아버님과 나를 지켜준다고 약속해줘."


나도 내가 왜 자꾸 우는지 기분이 널을 뛰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병원에 가서 물어봤다. 기분조절의 문제이니 슬픔과 우울을 느낄 때 저녁 약을 한봉 더 먹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기분 조절제를 복용한 지 아직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2주 정도 더 복용해 보고 어떤지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나는 병원에 가면 섭섭한 생각이 든다. 나의 본질적인 어떤 아픔은 무시한 채 약으로만 컨트롤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신과 약에 대한 신뢰가 없고 약 복용에 대해 건강을 해칠까 봐, 또 약에 의존하여 정상적인 감정조절 기능을 잃어버릴까 봐 거부감이 있다.


남편은 오늘 아침 필라테스를 간다고 나서는 내게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은 우울해도 괜찮으니까 오늘은 밝게 보내자며, 파이팅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내가 어젯밤에 울고 불던 사람이 맞는지 모를 행복감, 안정감이 밀려왔다.


남편의 밝은 웃음. 그 뒤에 숨은 깊은 고민을 안다. 종일 집에 있으면서 시험공부를 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거나 둘 다를 하거나 하기만 하는 내가 뭔가 활력을 찾았으면 좋겠는 심정.  밝고 행복한 가정의 딸이었던 나와 결혼 해 정신병에 걸린 장모님과 정신과를 드나드는 아내를 겪는 심정은 얼마나 복잡할지. 결혼할 당시에는 상상도 못해본 일일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결혼 잘 못 한 거 같아?"


남편은 말했다.


"널 만난 건 내가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야"


남편은 나를 많이 사랑하고 아껴준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남편의 응원을 이렇게나 받고 사는데 남편에게 보답하는 마음에서라도 오늘 하루를 밝게 보내야겠다는 그런 각오가 새록새록 피어났다.


고마워.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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