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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ug 29. 2021

한라봉 에이드를 5분 만에 다 마셨다.

무드없는 남편을 사랑하는 나

남편과 함께 엄마한테도 들를 겸 헤이리 마을에 다녀왔다. 엄마를 보니 역시나 펑펑 눈물이 나와 바닥에 주저앉아 울만큼 울고 바로 건너편의 헤이리 마을에 다녀왔다.


남편은 내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 어딘가를 가자고 하는데 내가 집에만 있고 싶어 해 예약과 취소를 반복한다. 나 돌본다고 같이 집에만 있는 남편이 안쓰러워 몇 주 만에 바람 쐬러 나왔다.


맛있는 간장게장을 먹었다. 남편은 웃었다.


"연애할 땐 네가 양식을 좋아한대서 예쁘게 생긴 음식만 먹으러 다녔는데 이젠 맛있는 한식 찾아다니네"


남편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당시 스물한 살이었다)  남편이 강남역에 있는 김치보쌈집에 데려간 적이 있다. 본인 생각엔 진짜 맛있는 집이라고 데려갔다는데 당시 나는 남편이 그런(?)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먹는 내내 손도 안 대고 깨작이며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간장게장을 다 먹고 나서 디저트를 찾았다.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한라봉 에이드를 시켰다. 주문해서 음료가 나오고 다 먹기까지 한 오분 걸렸을 것이다. 남들은 한잔을 시키고도 천천히 맛을 음미하고 대화도 하고 시간을 보내는데.


남편은 또 웃었다.


"우리가 부부가 맞나 봐. 음료 나오고 대화 없어. 마실 동안 맛있다. 한마디 한 게 다야. 5분 만에 다 먹고 빨리 가쟤."


나도 웃었다.


남편과 나는 십 년 연애하고 육 년 차 부부다. 다른 부부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는 다정하고 따뜻한 부부이며 평소 대화도 많이 하지만 결혼 전과 후는 확실히 달라진 부분이 있다. 밖에서보다 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커피도 집에서 캡슐을 내려마시니 나갈 일이 없다. 집에서 대화도 더 많이 한다. 외려 밖에 나가면 무슨 놈의 귀소본능이 이렇게 강한지 "빨리 가자" 하는 게 일이다. 엄마가 떠나고 귀소본능이 더 강해졌다.


6천 원짜리 에이드를 시키고 냉수 먹듯 벌컥벌컥 마시곤 오분만에 일어나는 카페 우수고객. 그게 우리 부부가 될 줄은 몰랐다. 몰랐지만 싫지는 않다. 그만큼 서로 허물없고 밖에 굳이 나와서만 진지한 대화를 나눌 분위기를 잡는 그런 커플이 아니라는 의미기도 하기 때문이다.


귀가. 아빠에겐 엄마에게 들러 울고 온 것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카페에서 사 온 빵을 꺼내 잘라주면서 저녁으로 또 컵라면을 집는 아빠하고 실랑이를 했다.


카톡으로 남편과 상의를 했다.

"아빠 독립 조건으로 찌개 다섯 가지 만들기를 걸어야겠어. 의견이 어때?"


"ㅎㅎ함 얘기해봐."


남편도 웃고 나도 웃었다. 무드는 개밥에  말아먹는 남자가 되긴 했지만 나는 이렇게 사소한 상의를 "아무 때나" 나눌 수 있는 내 남편이자 전 남자 친구가 정말 좋다.


사랑해 남편.

남편과 함께 이미지 스케치를 했다. 커플놀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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