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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Sep 01. 2021

고모가 귀국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가시길 바라요.

산타바바라에 살고 있는 고모가 귀국했다. 일 년 만이다. 평소라면 고모가 귀국했을 때 집에 초대를 한다던지 해서 같이 시간을 보낼 텐데 올해 귀국은 그렇지 않다. 아빠가 아직 화가 많이 나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빠 생각해서 오빠 입장에서 말한 거지 Y엄마를 하대하거나 깎아내릴 의도는 아니었어"


아빠는 엄마의 죽음 앞에 고모가 감히 "Y엄마 원래 좀 그렇기는 했었잖아"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쉬이 용서가 되지 않는 듯하다.


나는 화가 나긴 하지만 고모가 아빠를 생각해 위로한다는 말이 그렇게 나왔을 뿐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서 그런지 고모가 죽도록 밉지는 않다.


나는 친척이 많이 없다. 특히 애틋하게 정을 주고받는 친인척이 단 한 명도 없다. 오랜 세월 그래 왔으니 익숙해져 괜찮다. 내 부모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내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낯선 이에게 정서적이든 물질적이든 받는 것이 무척 어색하다. 고맙다. 한마디 하면 될 것도 보답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고모는 한국에 왔으니 아빠나 다른 가족을 보고 싶을 것이고 어쩌면 미국에서 무언가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잃은 불쌍한 조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중고제품에 고모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일 것이고 엄마는 네가 거지도 아니고 왜 맨날 남 쓰던 거 얻어 입으며 고맙다고 하냐고 불만스러워 했었다. 그래도 나는 고모가 죽도록 밉지는 않다. 삭막한 친인척 관계 속에서 불편한 호의나마 제공했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여전히 고모와의 통화를 꺼린다. 이번 고모가 입국한 기간 동안에 아마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있는 동안 잘 지내다가 갔으면 좋겠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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