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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Sep 06. 2021

복스럽게 먹는 두 남자를 보면서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아빠가 저녁식사 메뉴로 서더리를 좀 사 왔다. 마트에서 얼마 안 한다는데 갑자기 매운탕이 먹고 싶다며 말이다.


매운탕은 또 어떻게 끓이는 건지, 점점 아빠는 저녁식사 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고 나는 아빠가 먹고 싶다는 것은 최대한 만들어보려고 애쓴다. 며칠 전에 잔뜩 사 온 콩나물도 넣고 청양고추도 넣고 어찌어찌해서 그럴듯한 비주얼의 매운탕을 끓였다. 육전도 했다. 매운탕만 먹기에는 반찬이 부실한 것 같아서 말이다. 이런, 또 푸짐한 안주상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결국 소주병을 땄다.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매일 먹는 저녁상인데, 오늘 이상했다. 엄마가 죽기 전에 느꼈던 진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다름 아닌 두 남자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남편은 두 그릇 째 식사를 하고 있고 아빠는 육전을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없으면 이 두 남자 뭐 먹고살지. 어떻게 살지. 하며. 내가 이 가족에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 남자는 저녁 여섯 시쯤 저녁식사를 준비하면 일단 오늘 메뉴가 뭔지 흘끔흘끔 오며 가며 본다. 오늘 저녁은 메뉴가 뭐냐 하고 궁금해한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음식을 워낙 잘만들기도 했거니와 만든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무척 행복해하곤 했다. 엄마의 세상이 집안에서 살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기쁨을 느낄 구석은 없었을 것이나 음식에서 만큼은 최고였다. 뭔가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후다닥 만들어주고 맛있니? 하고 묻곤 했다. 엄마가 만든 게 제일 맛있다고 할 때마다 씩 웃었다.


아마 내가 엄마에게 했던 효도 중의 하나라면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것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빠부터 사위까지 몽땅 엄마의 밥상은 늘 감동받으며 먹곤 했으니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곤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 늦은 시간 남편과 잠깐 외출했을 때 오늘의 행복했던 순간을 말했다. 매일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내가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말하니 남편은 무척 감격해하며 기뻐했다.


"오늘 행복했어. 아빠랑 너랑 저녁을 먹고 있는데 너무 복스럽게 먹고 있는 거야. 내가 해준 거 맛있게 먹는 거 보니까 정말 행복하고 내가 아빠랑 너에게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서 기뻤어."


남편은 나를 꼭 끌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 없으면 안 돼. 그러니까 어디 가면 안 돼."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싱긋 웃었다.

어딜 가겠어. 남편, 내가 죽을 때까지 맛있는 거 다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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