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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Sep 21. 2021

서른다섯 번째 한가위

가족, 사랑하는 가족


시어머니와 남편의 화해

아침에 일어나 씻고 어머님한테 먼저 전화를 했다. 한참 제사 준비하고 계실 텐데. 명절에 못 가서 안부인 사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고 고마운 마음도 있어서. 무엇보다도 어머님이랑 남편이 화해하도록 해야겠다는 나름의 의무감도 있어서였다. 명절을 기분 좋게 웃으며 보내고 싶었다.


"어머님, 아침에 제사 준비하시죠? 못 가서 안부인사한다고 전화드렸어요."


"아이고 예쁜 며느리, 전화 아침부터 할거 없었는데. 천천히 하지 그랬어. 며느리도 제사 준비하느라 바쁘지? 슬퍼만 할 수는 없으니 며느리가 기운 내야 해. 그래그래."


"어머님, 명절이니까 오빠 전화 바꿔드릴게요."


나는 어머님이 뭐라고 말씀하실 새도 없이 남편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남편이 몇 번이나 전화했어도 받지 않던 어머니는 얼떨결에  남편과 통 하하며 멋쩍은 듯이 말했다.


"목소리 들으니 좋네"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통화를 곁에서 들으며 아침부터 명절이 훈훈했다. 기분이 좋았다.


엄마를 위한 차례상

남편은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집안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님 오시잖아, 정리 정돈을 좀 해야지. 어머님이 잔소리 하셔. 맨날 어머님은 집 더러우면 나한테만 뭐라구 하셨다고. 넌 누워서 '몰라, 엄마가 해주던가' 하고."


엄마 제사 전 남편은 엄마 살아생전 우리가 했던 것과 같이 집안의 물건을 정돈하고 샤워를 하고 양말을 신었다.


제사는 문제없이 잘 지냈다. 음식도 더할나위없이 풍족하게 준비했고 남동생 부부도 함께와서 거들었다. 아무도 우는 사람은 없었지만 웃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엄마만이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제사를 마치고 아빠가 엄마한테 한마디 씩 하자고 했다. 다들 하늘나라에 간 엄마의 명복과 덕담을 말하는데 나는 불쑥 그런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다시태어나면 거지같은 집구석에서 태어나지마."


나는 엄마가 다시태어난다면 늘 소녀같던 그 마음이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윷놀이

제사상을 정리하고 모두 배가 부른 가운데 아빠의 제안으로 윷놀이를 했다. 한판에 이만원씩 걸고 아빠, 우리부부, 남동생 부부가 각 한팀이 되서 한 열판쯤 한것같다.


엄마 떠난 이후로 아빠가 그렇게 밝게 웃는 것은 처음보는데 그게 기뻤다. 아빠는 항상 화합을 말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마 게임을 해서라기보다는 다같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이 좋아서 유쾌하게 웃었던  같다.


"명절에 이런것도 한번씩 하고해야 먼훗날 추억이되지"


엄마도 같이 했으면 좋았겠지만 엄마가 없어도 건강하게 슬픔을 이겨내고있는 가족들이 내 곁에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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