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dion Feb 11. 2020

상실 이후, 조화를 되찾기 위한 분해의 과정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하여

데몰리션, 2015, 장 마크 발레


무언가 꼼짝 할 수 없게 잘못되었을 때,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상을 한다. 망가진 현재를 깡그리 분해해서 재조립할 수 있다면 어떨까? 여기 어느 날 갑자기 아내를 잃은 남자가 있다. 그는 울지도 않고 아내가 죽은 다음날 출근해 일한다. 이상할 정도로 무감각해 보이던 그의 일상에는 사실 금이 가고 이었다. 그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직장, 의무, 집에서 벗어나려는 데이비드. 아내가 죽던 날 고장 나 그의 동전을 먹어버린 자판기의 회사에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보낸다. 그는 편지를 읽은 그 회사 상담원 카렌과 친구가 된다. 데이비드는 망가진 컴퓨터와 냉장고를 분해하더니 공사현장을 찾아 철거일을 하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자신의 집을 직접 부순다.


 "우리는 내 결혼 생활을 분해할 거야." 해머를 들면서 그는 카렌의 아들 크리스에게 말한다. 집을 부수던 중에 그는 아내가 자신 몰래 다른 남자의 아이를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을 계기로 아내의 추모식에서 감정을 쏟아 낸 그는 울 수 있게 된다. 아내가 누구였는지 관심 없었고 아내를 사랑하는지도 알지 못하던 그가 일상과 과거의 분해를 통해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아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잘못된 현재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치를 휘둘러 부수고 0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상을 해본 적 있다. 하지만 역시 과감한 파괴의 용기는 쉽게 나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파괴 행위를 통한 고통의 분출만이 아니다.이는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자신을 조립하기 위한 과감한 분해의 과정으로서 자신이 보지 못했던 진실들을 깨닫는 순간 끝이 다. 인생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닥쳤을 때 삶 속에서 우리를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를 짚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아가기 위해 때로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삶의 균열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가 도모할 수 있는 변화를.


완전히 무너져 주저앉았을 때 우리는 기대어 일어설 지지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지지물에  계속 매달려 의존하게 될 때 중독의 영역으로 흘러갈 위험이 생긴다. 의지의 주체는 내가 아닌 중독의 대상이 되고 결국 표류하며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데이비드가 위안에 안주하지 않고 분해하고 상실의 대상을 바로 보는 앎을 통하게 된 것은 주체인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상실 후에 온전한 나 자신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딛고 올라갔었던 발판을 치우고 스스로를 내려다볼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고통을 잊을 수는 없더라도 고통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 내 삶이 끝난다면 누가 찾아와 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