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생각이음 17화

Epilogue

픽션

by Sa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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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클러리서로군,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책을 덮었다. 그녀는 유리 너머로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광경을 본다. 카페 안은 한산 하다.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번져왔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딱 좋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운터 뒤에 아르바이트생 하나가 음료를 만들고 있다. 구석 자리에 십 대 여자 아이 둘이 문제집을 푼다. 한가운데 자리에 여자들 넷이 수다를 떤다. 그녀는 창가 쪽에 앉아 이들을 둘러본다. 그녀는 그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린다. 생각들은 연상작용을 따라 이어진다. 그녀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그러기를 멈춘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본다.


‘이러기를 반복하다 곧 그녀는 제풀에 지쳐버린다. 휴대폰 화면을 켜본다. 오후 네 시 정각이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까 덮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든다. 책장을 뒤적이다 그녀는 거리의 사람들이 비행기를 목격하는 대목에 멈췄다. 비행기는 곧게 아래로 떨어지다간 곧 똑바로 위로 솟아올랐다. 둥근 원을 만들며 말아 오르다가 질주해 가고 가라앉았다가 솟아올랐다. 비행기가 무엇을 하건 어디로 가건 그 뒤에는 짙은 구불구불한 하얀 연기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연기는 하늘에서 글자 모양으로 말아 올라가면서 원을 그렸다. 한데 무슨 글자들이지?’


그녀는 하늘을 본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없었다. 만약 이 순간 비행기가 날아올라 글씨를 쓴다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글자를 기억할까? 그녀는 그런 순간을 각자의 위치에서 다르게 기억하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한 사건을 통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리라. 굵직한 사건들은 기록 속에 비중 있는 역사적 사실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건들은 잊히겠지만.


그녀의 지금 이 순간은 시간 속에 매몰되게 될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컸다. 남을 것인가 묻혀서 사라질 것인가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정해진다. 그녀는 자신이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 좋은지 나쁜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노랑 후드는 약속한 시간보다 늦는다. 그녀는 노랑 후드와의 만남에도 시간이 판가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명의 여자 중 하나가 자리를 뜬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를 필두로 갑자기 남은 사람들 모두가 속삭이는 어조를 띤다. 그녀는 그런 변화에 대화 내용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누군가의 흉을 본다. 아마도 지금 자리를 뜬 사람이겠지. 어른이 되어서는 대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는 이 사실을 떠올리며 홀로 조소한다. 눈치 보고 비꼬고 뒷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어른이지. 그녀는 생각을 돌리려 창밖을 내다본다.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어른의 대화에서와 무엇이 다르게 느껴질까. 의식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면 표면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까. 사람들이 서로의 의식의 흐름을 볼 수 있다면 간을 보고 기싸움하는 대화는 무용하게 되려나. 비행운이 그리는 글씨를 목격할 때 같은 순간에 각자의 머릿속이 어떤지 알면 사람들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나. 그녀는 이 말이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면 어떤 대답을 얻게 될지 생각해본다. 어른의 대화중에 나오기에는 실없는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에 연이어 떠오르는 질문들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단순히 떠오르는 질문을 부분 부분 적는 게 아니라 그런 질문이 나오는 과정, 의식의 흐름을 볼 수 있다면 보다 자연스럽게 여러 질문을 아우를 수 있을 거야. 사람은 시공간 속에 연속체이지 분절된 존재가 아니니까.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여러 인물의 생각을 보여주는 방식은 보다 정교한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단 한 사람의 의식을 보여주자. 대화에서 오는 숨은 뜻 찾기와 기싸움이 주는 다의적 해석이 다분한 측면을 피하는 게 좋겠다. 그녀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낸다.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하루 동안 생각을 한다. 그녀의 외부 현실에서도 이것저것이 보이고 들린다. 그녀는 질문한다. 그 질문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녀는 여기까지 쓰고 그 위에 선을 그어 지웠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새로 한 문장을 적는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다. 그녀는 이 다음 문장들을 위해 숙고한다. 그녀는 왜 숙고하는가. 그녀가 질문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왜 질문하는가. 왜냐하면 여기에 그녀가 있음으로.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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