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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Feb 05. 2021

잠긴 문 너머의 시간을 만나기까지

다큐멘터리 영화 < 모든 것의 이면> ,2017, 밀라 투라일릭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며 1차 세계대전을 점화했으며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도 전쟁이 일어난 곳이다. 그곳 발칸반도의 세르비아에 한 다세대 주택이 있다. 유고 왕국 선언문에 서명한 장관이 지은 이 건물은 유고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세워지며 국유화되었고 장관의 후손인 건물주는 단 한 칸의 집만이 남았다. 그 마저도 국가에서 지정한 가난한 사람과 방 두 칸을 나눠야 했다. 2017년이 되었을 때조차 그 집의 다른 두 방으로 가는 문은 잠긴 채였다. 건물주의 후손인 베오그라드 대학교 공학과 교수였으며 세르비아 민주화 투사이자 정치인이었던 세르비앙카 투라하치의 딸은 이 집을 카메라 안에 담았다. 이를 통해 그녀는 격동의 시기를 싸우며 산 어머니와 세르비아 가족들의 역사를 다룬다.


2015년 밀로셰비치 정권 당시 정보부에서 일했던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세르비앙카가 이뤄낸 혁명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대선이 끝나자 정치 투쟁 이력이 있는 그녀는 반체제 인사 리스트에 들어가고 기소되어 법정에 서기까지 된다. 감독과 세르비앙카, 두 모녀는 끌어안고 눈물짓는다. 세르비앙카는 투쟁을 다시 하겠냐는 딸의 질문에 다시 시작하기에 자신은 너무 늦었으며 이제는 너의 세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답한다. 이어 그녀는 그다음 수를 준비하지 못한 혁명, 모든 혁명들은 실패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 말은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물론 유고 연방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민족분쟁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바른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투쟁정신과 통찰은 4.19 혁명에서 촛불 혁명까지 혁명을 이루어온 우리 사회에도 혁명 다음에 그 정신과 성과가 현실의 벽에 흩어지기 얼마나 쉬운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어찌되었든 세르비아의 지나간 역사의 굴곡들을 뒤로하고 나아가듯 이 집의 다사다난했던 세월들도 결국은 흘러간다. 세르비앙카는 그래도 현시대가 밀로셰비치의 시대보다는 낫다고 위안한다. 잠긴 문 너머를 점거하고 있던 늙은 여인 역시 세월 속에 죽고 마침내 긴 시간 잠겨있던 저편이 열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앞으로도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고 세르비앙카의 두 딸들이 그 집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박탈된 것들이 되찾아지고 다시  또 다른 위기 찾아오고., 다시 제자리를 찾고, 다시 위기가 오고...... 삶은 그곳에서 계속될 것이다. 모든 것의 이면이 밝혀지고 상실되면서도 늘 저편에 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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