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생각이음 04화

3. 지하철에서의 명상

픽션-Part 1.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

by Sadion





두발을 딛고 큰 숨을 쉰다

대도시의 냄새, 사치와 타락의 비린내

뒤엉켜 있는 자동차

매연과 향수 냄새, 광란의 바로

서울의 냄새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중에서 -




땅이 입을 벌린 자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개찰구의 인파를 뚫고 다시 에스컬레이터 위에 올라섰다가 스크린 도어 앞의 노란 표시 블록 뒤까지 총총거리며 간다. 땅 아래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공회전하는 자동차처럼 잡념을 뿜어 올린다.


플랫폼에 줄을 선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이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으려나.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보았던 비상 연락을 위한 수화기와 방독면이 든 케이스가 이곳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도. 그러나 그걸 늘 생각하는 사람은 괴로운 병자가 된다. 어리석은 염려를 털어내고 휴대폰을 내려다보니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보조배터리가 가방 어딘가 있겠지.

불안을 누르며 sns 페이지를 연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진들을 훑어보며 관심을 가져보려 애쓴다.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이래야하지 않나.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선으로 이으면 아주 복잡한 그물망이 될 것인가. 그물처럼 얽힌 망은 추락도 받쳐줄 만큼 튼튼한 것일까.


스크린 도어에 붙은 지하철 노선도를 본다. 색색의 선들이 얽혀있다. 여기도 얽혀있네. 어디에 던져지던지 이 그물망가까이라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안전할까. 이곳을 움직이는 동력이 사라지고 시설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세월이 흐르고 지금의 문명이 몰락한 후에 지하철역들이 본래의 기능을 잃은 채 남게 되었을 때 후손들은 이곳을 어떻게 할까.


오래전 만들어진 지하의 공간들이라는 소재는 흥미롭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카타콤이다. 이곳은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공간, 고대에 로마의 카타콤은 무덤이었고 기원후 3,4세기에 박해를 피해 초기 기독교도들이 숨어든 장소였다. 파리의 카타콤은 루이 16세가 도시경관정책을 실시하며 묘지를 철거하는 바람에 로마제국시절 사용되던 폐채석장에 유골들을 묻으며 만들어졌다. 복잡하고 좁은 미로 같은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레지스탕스가 이용했다고 한다. 지하란 그렇다. 지상에서 활개 칠 수 없는 산자들에게도 카타콤이라는 이름 뜻 그대로 ‘안식처’가 된다.


문득 어릴때 미술학원에서 본 화집 속 피라네시의 지하 감옥 연작 판화가 떠오른다. 기둥과 계단과 아치들, 밧줄과 도르래가 복잡하게 들어찬 흑백의 이미지는 기괴하고 어두운 무대 장치들 같았다. 미로 같은 지하 감옥을 그린 16점의 에칭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해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안식처가 아닌 수감시설이라는 데도 낭만주의적 매력을 담고 출간당시 인기를 누렸다. 지하 미궁은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매력이 있나보다.


독일의 만화가이자 소설가인 발터 뫼르스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책에서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의 지하 미로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그렸다. 그곳의 지하에는 오래전 사람들이 만든 서가와 책쓰레기들이 있고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무법지대이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지하철도가 후손들에게 모험의 공간 혹은 소외된 존재들의 은신처가, 유적이 될 때가 올까?


뫼르스의 소설 속에서 도시는 살아있는 존재다. 출판업이 부흥하며 각종 종사자들, 인기 작가부터 인쇄물을 몸에 감고 다니며 광고하는 사람과 구덩이에서 즉흥시를 쓰며 연명하는 시인들까지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도시에는 구역이 나뉘고 지상과 지하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러다 책의 말미에 가면 지하에서 부터 시작된 화제에 삼켜지며 몰락하며 수명이 다한다. 지하철역들이 질서를 잃지 않고 지상역시 아직은 강건한 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도시의 수명이 어디 까지 일지 궁금해진다.


어느 사이엔가 도착한 전동차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일제히 토해져 나온다. 나는 객차 안으로 몸을 옮긴다. 휴일 오전의 7호선은 앉을 자리가 없다. 나는 20대로 보이는 안경 쓴 남자가 앉은 자리 앞에 선다. 다들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는데 내 앞의 젊은 남자가 종이 책을 읽고 있다. 뫼르스의 책 속 세계관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었으니 책의 도시가 번성할 수 있었던 거겠지. 저 책 제목은 뭘까. 무릎에 놓인 책의 표지를 보기 위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가늘게 내려 뜨는데 순간, 시선의 따가움이 느껴진다. 남자가 미간을 구기며 뜨악하게 나를 보고 있다. 고개를 돌린다. 때마침 객차 끝의 문이 열리고 손수레를 끄는 아저씨 하나가 들어온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께 유용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보여드립니다. 방수 앞치마, 방수 앞치마를 삼천 원씩 입니다. 질기고 튼튼하고요.......”


지하철의 잡상인은 한 인물이 아닌 풍경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은 심상히 지하철 광고판보다 더 관심 없이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 문득 21세기 서울에 발터 벤야민이 온다면 이것을 보고 뭐라고 쓸지 궁금해진다. 20세기 초의 도시들, 나폴리, 파리, 모스크바, 고향 베를린을 자신을 글로 해석하려한 독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이 남자는 현대 대도시 매혹되어 있었던 동시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는 보이는 미시적 이미지를 제시함과 동시에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거시적 무언가를 분석하고 비평했다. 그의 글은 표면적인 묘사의 흐름이 아니라 무겁게 내려 앉는 사유를 담아 어렵다.


21세기에 와도 그는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쓸까? 도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동시에 불쾌하지만 아저씨가 파는 방수 앞치마의 색과 아저씨 얼굴의 점, 손수레 위 박스에 붙은 테이프 같은 사실적 감각의 체험은 철학자의 사유와 달리 깃털처럼 가볍게 머무르다 날려가 버린다.


도시는 이미지들을 던진다. 지하에서의 긴 기다림 끝에 지상으로 올라서면 펼쳐질 장면들을 여기 앉은 모두가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전 시대보다 더 빈번히 쉽게 사진을 찍고 도시 속 장면들은 시간과 위도와 경도 정보와 함께 저장된다. 굳이 가지 않아도 도시의 이미지들을 볼 수있다. 여행다큐멘터리 속 4K 영상들과 VR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낯선 도시를 꿈꾼다.


영화 속 연인들은 낯선 도시를 여행하며 사랑에 빠진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로맨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20대 초반의 남녀 주인공은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기차, 산업혁명의 상징과 같은 근대적 운송수단은 이제는 첨단이 아닌 낭만이라는 이미지를 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낭만은 도시로부터 이방인일 때 가능해진다. 그 도시의 거주민에게 기차란 일상의 쳇바퀴 위 통근열차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차는 장거리 이동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행과 가깝긴 하다. 하지만 지하철은 일상에 훨씬 가깝다. 사진과 영상 속 세계 여러 나라의 지하철의 풍경은 언뜻 다른 것 같아도 공통점을 지니다. 바로 표정이다. 일상의 일정과 일정사이를 건너가기 위해 대기하는 이의 특유의 일시적으로 마비된 얼굴.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에도 표정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사실 사진 속에서 랜드마크가 아니라면 어차피 이제 세계 어느 대 도시든 ,특히 신시가지라면, 그곳이 어디인지 설명 없이 구분하기 어렵지 않나? 이건 지구촌이 좁아졌다는 것만을 의미할까? 어쩌면 오히려 이 사실이 낯선 도시를 꿈꾸는 마음을 설명해주는지도 모른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전동차가 속도를 줄여 멈춰 선다.


내 앞에 앉은 안경 쓴 남자가 주섬주섬 책을 가방에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 자리를 뜨자마자 나는 서둘러 빈자리에 엉덩이를 디민다.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시야는 곧 사람들로 둘러쳐진다. 사람들은 같은 칸에 탄 사람들과 다시 마주치면 알아 볼 수 있을까? 방금 전에 보았던 책 읽는 남자를 일주일 후 길거리에서 만나면 어떻게 될까. 뻔하다. 기억 못할 것이고 설령 기억하고 있더라도 갑자기 손을 흔드는 짓 따위를 할 리가 없다. 도시는 익명을 부여한다. 나는 마비된 얼굴을 벗지 않고 앉아서 익명의 사람들에게 익명의 무리 중 일부로 남는다.


도시 밑의 전동차 안은 좁고 익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세계는 넓지만 역시 익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향수 냄새, 기침 소리, 열차의 진동과 소음의 뒤편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의 그물망 같은 것이 내가 시간 속에 새어나가 버리지 않도록 해줄지도 모른다. 눈을 감는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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