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텃밭농사

농부아내의 2026년 텃밭, 올해는 소소하게 꾸려요

by 농부아내


입춘이 지났지만, 지난 주말 해남에는 눈이 내렸다. 강한 바람과 함께 내린 눈은 쉬이 그칠 기색도 없었다. 텃밭에 비료를 넣고, 땅을 갈아엎고,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하늘이 좀처럼 마음을 열어주질 않는다. 텃밭 농사도 결국, 날씨가 정한다.


아직 비닐하우스 사업신청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자연스럽게 올해의 텃밭으로 향한다. 이미 작년까지 나의 힐링을 담당하던 곳에 텃밭을 꾸리지 못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익숙한 자리를 비워야 했다. 텃밭을 가꾸고, 잡아먹고, 그 신선함을 알기에 농부님은 집 앞 사과나무 있던 곳을 온실로 만들어 주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사과나무를 뽑는 것까진 했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시간이 부족해 다른 곳에 텃밭을 꾸리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육묘하우스와 그 옆 공간이다.

육묘하우스 옆은 몇 년 전까지 마늘을 키웠던 곳이다. 하지만 비만 오면 잠기는 곳이라 작물이 자라기에 부적합한 것 같아 잡초만 키웠다. 육묘하우스 또한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는 곳이었다. 물길을 파고 보수를 하면 되지만, 주작물 재배로 바쁘다는 핑계가 먼저였다. 내가 생각한 대책은 하우스 안에 작물을 심을 때는 두둑을 높게 만드는 것이었다. 흙이 물을 머금다 보니 두둑을 높여도 작물은 잘 버티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작물을 키운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텃밭을 계속 할까 말까 망설이며, 육묘하우스에서 작물을 키우자니 비만 오면 물에 잠긴다고 계속 투덜거렸다. 나의 찡찡거림에 최강 미루미 농부님이 나섰다. 사실 알아챈 건 한참 뒤였다. 어느 날 보니 하우스 주변으로 물길이 나 있다. 언제 팠는지,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알지 못했다. 춥다고 집콕하고 있었는데 언제 나가서 삽질을 한 건지.. 이후 주변 흙으로 하우스 흙을 더 높이는 삽질을 할 때는 나도 나가봤다. 일하는 농부님을 보고 "짜란다~ 내 남편 최고~"라며 말만 하고 사진 찍곤 집으로 들어왔다. 농부님의 다정함은 늘 이런 식이다. 머릿속에서 뭘 그리고 있는지 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말없이 이런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하우스 옆으로 길게 만들 텃밭.

지금까지 꾸려오던 텃밭보다 크기는 절반이다. 세로로 길게 만들 거라 예전 텃밭의 5~6개의 두둑보다 2~3개 정도 모자란 정도이다. 처음엔 아쉬움이 컸다. 키워보고 싶었던 작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번엔 이것도 심어볼까’ 하며 저장해 둔 사진들, 이웃님들의 텃밭에서 본 작물들. 줄어든 텃밭 사이즈에 내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많이 키우기보다 자주 먹는 것, 잘 키울 수 있는 것,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채소 위주로 파종하기로 했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채소는 결국 손이 자주 가고, 손이 가는 만큼 애정도 깊어진다. 텃밭이 줄어든 대신, 돌봄의 밀도는 오히려 높아질지도 모른다.


하우스 안에 심을 작물들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처음으로 감자를 하우스에서 키워 볼 생각이라 작물마다 파종 수량은 줄였다. 직접 키워 먹는 감자의 맛을 알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제발 올해는 농부님의 삽질이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소소하게 꾸리는 2026년의 텃밭.

규모는 줄었지만 농부님 덕분에 마음은 가볍다. 눈 내린 밭을 바라보며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계획이 바뀌어도 괜찮다. 올해는 가볍게, 소소하지만 기쁨과 힐링이 있는 텃밭의 삶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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