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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Dec 06. 2024

마음에 달라붙은 말, 도깨비풀



서리가 내릴 때쯤 되면 한 해 농사지은 것들을 정리하는 일만 남게 된다. 농한기라고 불리는 시즌이지만, 귀농 8년 차쯤 되니 농한기라고 딱 꼬집어 말할 시즌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나마 한가해지는 기간이랄까. 식사량은 동일한데 활동량이 줄어드니 느는 것은 체중계의 숫자다. 그래서 이맘때는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게 된다.


최대한 멀리멀리, 돌아 돌아 걸을 생각에 마을길을 걷고,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농로도 걷는다. 가끔은 뛰기도 하지만, 1분만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걷다 뛰다를 반복한다. 며칠 전엔 농로를 걷다가 도깨비풀을 만났다.


2022년까지만 노지에 만차량 단호박을 재배했었다. 잡초와 함께 건강한 방식으로 재배하는 녀석이라 서리가 내리기 전쯤 수확을 하러 밭에 들어가면 옷에 달라붙어 있던 도깨비풀. 지금은 노지에 아무것도 심지 않고 11월 초쯤 농부님이 잡초로 무성했던 땅을 한번 갈아엎어 멀끔한 상태이다. 농로에서 오랜만에 도깨비풀을 만나니 조금은 반가웠다.


바늘을 닮은 뾰족한 씨가 몰래 달라붙는 도깨비처럼 동물이나 사람의 옷에 붙어 씨를 퍼트린다고 해서 도깨비바늘 혹은 도깨비풀이라 불린다. 달라붙은 도깨비풀은 대충 떼려 하면 더 달라붙고 하나씩 시간을 들여 떼는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이어온다. 먹고사는 이야기, 일 이야기,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말주변이 없는 편이라 20대엔  많은 말을 하진 않지만 가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말을 쏟아낼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드니 필터는 생겼지만 없는 말수가 더 줄어들긴 했다.


대체로 들어주고 리액션을 해 주는 편이라 상대방의 말을 더 마음에 담아둔다. 상대방의 말을 듣다 보면 뭔가, 이건 아닌데~ 싶은 말들을 들을 때가 있다. 해선 안 되는 말인 것 같은데 상대방도 말을 쏟아내다 보니 툭~하고 던진 말. 복기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알지만, 집에 돌아와 곱씹다 보면 결국 그 말은 도깨비풀처럼 내 마음에 "상처"가 되어 달라붙는다. 딱 세 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다.


도깨비풀을 떼려고 손으로 대충 툭툭 치면 손으로 옮겨 가 붙거나 더 달라붙는다. 절대 잊히지 않는 말들은 떼어내려고 애쓸수록 더 달라붙는 도깨비풀처럼 마음을 헤집고 다녔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하나씩 뽑아야 떨어지는 도깨비풀처럼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농로에서 만난 도깨비풀이 잊혀졌던 그 말들을 떠올리게 했다. 예전엔 그 말들을 떠올리면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어제 만난 도깨비풀을 보니 씁쓸함만 남는 걸 보면 지금은 다리에 달라붙은 수십 개의 도깨비풀 중 반은 떼어낸 듯하다.


시간이 필요할 뿐 언젠가는 다 떼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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