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꿔진 잔디에 알록달록 꽃들이 화사하게 핀 정원은 누군가의 로망일 수 있지만, 나의 로망은 아니었다. 귀농 이후 살게 된 농가주택 한편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다. 꽃을 심으면 계절마다 눈이 즐겁겠지만, 꽃과 함께 날아다니는 벌이 무서워서 꽃은 심지 않았다. 대신 산책하다가 만나는 마을 어르신들의 담장 아래 피어 있는 꽃들로 대리만족을 했다.
오며 가며 예쁜 꽃들을 만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름이 입 안에서 맴도는 꽃을 만났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 검색을 했다. 붉은색과 분홍색의 꽃이 매력적이었던 그 아이의 이름은 "카네이션"이었다.
카네이션은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꽃집이나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인 줄 알았다. 생명력이 강해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어 정원에 많이 심는 꽃이라고 한다. 빨간색,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의 꽃이 피는 만큼 색상별로 꽃말이 달랐다. 빨간색은 어버이에 대한 사랑, 분홍색은 아름다움, 감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노란색은 경멸, 흰색은 돌아가신 어버이의 사랑(추모)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꽃말을 알게 되니 어버이날에 빨간색 카네이션을 준비하는 이유를 알겠다.
2019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화분을 가지고 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빼뚤 쓴 편지와 손수 그린 카네이션 그림 같은 걸 가져오더니 웬 화분인가 싶었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 화분을 받았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들이 선물해 준 카네이션 화분이니 마당 한편에 심었다.
카네이션이 심어진 화단은 농번기라 한창 바쁜 시기여서 관리를 못했더니 잡초천국이 되어 있었다. 잡초들을 비집고 쪼그리고 앉아 아빠와 함께 모종삽으로 흙을 파고 정성스럽게 심었다.
지금도 꽃에 대해서는 무지렁이 수준이긴 하지만, 귀농 초반이었던 당시에는 호박재배 밖에 몰라 꽃을 심으면 끝인 줄 알았다. 꽃이 피지 않은 꽃망울들도 알아서 개화가 되고, 꽃씨가 떨어져 다음 해에도 꽃이 필 줄 알았다. 잡초 사이에 심어진 붉은색의 카네이션을 예쁘다고 눈길만 주었다. 결국 카네이션은 모두 만개해 보지도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호박 모종도 심고 나면 물을 줘야 하는데 왜 나는 꽃과 호박을 다른 카테고리로 생각했을까. 남편은 처음 해 보는 호박 농사에 정신이 없어 카네이션의 생존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울고 불고 난리치고 트라우마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자기들이 심은 카네이션에 대해 큰 애착은 없었다.
이제는 모종을 심고 나면 뿌리 활착이 되어 새 잎이 날 때까지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지금은 어버이날에 종이꽃이 아닌 생화를 선물 받고 싶다. 산책을 다니면서 만난 꽃들의 싱그러움과 화사함이 주는 힐링과 행복을 알게 되었다. 꽃이 좋아졌다. 나의 바람과 달리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아이들은 어린이날은 잊어버리지 않고 챙기면서 어버이날은 학교에서만 그 의미를 찾고 있다.
줄 때 고맙게 받고 살려둘걸.. 살려뒀더라면 매년 카네이션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내년에는 아이들에게 미리 공지를 할까 보다.
"엄마, 카네이션 화분 선물 받고 싶어~"
앗차, 그전에 용돈부터 올려줘야겠다. 꽃값이 후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