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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농사

봄의 전령? 나에겐 잡초, 냉이

by 농부아내


일주일 동안 소복소복 내리던 눈이 그쳤다. 봄 햇살이 비추면서 눈으로 덮였던 마늘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늦게 찾아온 한파와 눈으로 작년보다 늦긴 했지만 겨울동안 잠자던 마늘을 웃거름을 주어 깨워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웃거름을 주려고 마늘밭을 살펴보니 마늘만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질긴 생명력의 잡초도 함께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애증스러운 잡초부터 뽑아야겠다.


그나마 맑고 따뜻한 날에 모자를 눌러 쓰고 장화를 신은 뒤, 나의 필살기 미소호미를 들고 밭으로 갔다. 일반적인 호미는 쪼그려 앉아 사용해야 하지만, 미소호미는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장대가 달려 있어 서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농기구다. 잡초와의 전쟁터에 나가는데 맨 몸으로 돌진하는 무모함은 버린지 오래다. 언제나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미소호미를 옆구리에 끼고 텃밭에 발을 디뎠다.


"으윽........."

한 발 디딘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땅이 너무 질퍽하다. 발자국이 깊게 남으면서 장화가 무거워졌다. 작전 변경이다. 미소호미로는 잡초들을 공격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손 제초가 답이다. 결국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질퍽한 흙 덕분에 발걸음을 내딛기는 힘들었지만 덕분에 잡초들은 쉽게 뽑혔다.


잡초를 뽑다보니 봄의 전령이라는 "냉이"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어쩜 이리도 잘 자랐는지. 귀농 초반에는 냉이인 줄도 몰랐는데 9년차인 지금에서야 이 녀석들을 알아봤다. 변명을 하자면 비닐 하우스 농사일이 바쁘다보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달까. 그렇다보니 지금 눈에 보이는 냉이들은 대부분 꽃이 피어 있었다. 따뜻한 남쪽나라, 해남에 태어난 냉이들은 축복받아 벌써 꽃을 피운 것이다. 하얗고 작은 앙증맞은 꽃을 피운 냉이가 뿌리도 튼실하게 내려 쉽게 뽑히지도 않는다.


'냉이가 봄에 먹는 보약이라는데 먹어도 되나?'

냉이를 뽑다말고 검색을 해 본다. 꽃이 피면 뿌리에 심이 생겨 질겨지므로 먹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한다. 진즉에 밭에 나와 볼 걸 후회가 된다. 그러면서도 뽑히지 않는 냉이를 보자니 짜증도 난다. 누군가에게는 봄철 건강식재료겠지만, 나에게는 밭을 차지한 잡초일 뿐이다. 꽃까지 피웠으니 이제는 더더욱 잡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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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를 꽃이 피기 전에 채취했더라면 반가운 봄나물이 되었을 텐데, 때를 놓치니 밭의 불청객이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은 결국 타이밍이다. 제때 씨를 뿌리고, 제때 거두지 않으면 애써 키운 작물도 소용이 없어진다. 뿌리째 뽑혀 잡초로 밭에 던져지는 냉이처럼 말이다.


냉이는 내게는 잡초였지만, 조금만 일찍 발견했더라면 귀한 식재료가 될 수도 있었다. 내년에는 조금 더 부지런히 밭을 살펴 냉이를 잡초가 아닌 봄나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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