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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pr 19. 2016

『한국이 싫어서』X 『발자크와 바느질 하는 중국 소녀』

어크로스 더 유니북스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방식으로 처음 세상에 나선다. 부모도, 형제도, 집도, 나라도 고를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두 가지다. 적응하거나 혹은 견디지 못하거나. 적응하는 경우라면 인생이 비교적 쉽게 풀린다. 부모가 가난하고, 형제는 양아치인 데다, 집은 가족들의 대화 소리보다 쥐 발자국 소리가 더 많이 나는 상황이라도. 심지어 조국이 ‘한국’이라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을 하면 문제 될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이 나를 거부한다 느껴지고, 마치 이 나라에서는 멸종되어야 할 인간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적응하거나 혹은 견디지 못하거나.’ 의 선택지에서 후자를 선택한 인물 계나의 이야기이다. SKY는 아니지만 이름 있는 인서울 대학을 나오고,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계나. 그녀는 주변에서 보기에 평범한 한국의 여자 직장인일 뿐이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세상을 향한 맞짱이 아닌 다른 곳으로의 도피를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호주. 그곳에서 영어를 배우고, 회계사 공부를 한 뒤 이민을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호주행 비행기에 오른다. 보통 이런 이야기의 경우 계나의 이민 성공 여부를 궁금해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 크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왜냐하면, 계나가 호주로 떠나는 것은 꿈을 향한 모험이 아닌 견디지 못해 선택한 일종의 차선책이자 도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나 호주라는 나라가 아닌 ‘싫다’라는 인물의 감정과 그로 인해 폭발한 ‘선택’이다. 

 

계나는 한국을 떠나는 이유를 짧게 대답한다. “한국이 싫어서.” 그녀는 동상이 걸릴듯한 추운 한국의 날씨도, 스스로가 아닌 나라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 한국의 사상도 싫다. 하지만 호주에 사는 한국인이어서 받아야 하는 불이익도 싫다. 까다로운 영주권 획득 절차나 동양인에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 하고 싶은 일은커녕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에도 급급한 현실까지. 호주 역시 싫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선택에 관한 사항이다. 계나는 자신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한국이라는 조국을 갖게 됐다. 그런 그녀가 한국을 버리고 호주로 향한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다. 그것이 꿈을 향한 선택이 아닌, 도피를 위한 선택이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이고 행동이다. 그것을 하지 못해 한국에 살며 하루종일 시어머니 욕을 하고, 한국에 살기 때문에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한국에 살기 때문에 보람이라는 약을 받으며 하루에 다섯 시간도 자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계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 역시 조금 다른 선택을 한 한국인일 뿐이면서 말이다. 

 

마지막까지 읽어도 이 소설은 어떤 선택이 옳다는 결론을 내지 않는다.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고, 이러한 점을 매개체로 탄생한 우주에서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이와 같은 우주에 속한 소설로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힘든 노역 생활을 대신해주면서까지 금서였던 발자크의 책을 손에 넣고 한 줄, 한 줄을 가슴에 새기며 문학의 힘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다이 시지에는 이런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중국의 문화적 후진성을 비판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때는 두 가지 필요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인지, 또 하나는 반대로 향하기 위해 내놓아야 할 비싼 티켓값.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가 만들어낸 우주에서 먼저 바라봐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 또 무엇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지. 그리고 싫지 않기 위해(아니, 적어도 덜 싫기 위해) 어떤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지 스스로의 선택을 해야 할 때다. 


Written by Dalmoon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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