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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pr 03. 2024

울프의 인쇄기


글을 쓸 때 버지니아 울프는 행복하면서 불행했습니다. 때론 자신의 글에 너무 침잠한 나머지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곤 했죠. 이런 버지니아를 달래기 위해 남편 레너드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을 구합니다. 그리고 버지니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몽크스 하우스‘라고, 아주 근사하게 이름까지 짓고서 말이에요.


하지만 햇볕의 온도도, 바람의 속도도, 풀벌레와 밤의 고요도 버지니아의 마음을 온전히 달래주진 못했습니다. 그런 버지니아를 보며 레너드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런던으로 향합니다.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해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죠. 레너드가 멀리서 가져온 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무척이나 거대하고 말이 많은 사물, 인쇄기였습니다.


레너드는 인쇄기를 선물하며 글을 쓰는 것만 하지 말고, 출판의 일을 하면서 삶의 리듬을 다채롭게 가져가자고 말합니다. 레너드가 보기에 버지니아는 자신의 글을 쓰는 시간도 필요했지만,

때로는 초집중의 시간에서 벗어나, 말하자면 여흥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버지니아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흥은 바로 타인의 글을 출판하는 편집자 활동이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레너드의 생각이 정확했는지 버지니아는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인쇄기를 켜 책을 찍으며 각기 다른 리듬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런 다채로운 리듬 때문이었을까요? 버지니아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태로 레너드와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죠.


이렇듯 별것 아닌 것 같은 사물 하나가 때로는 내 삶의 리듬을 바꾸어놓고, 나를 춤추게 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런 사물을 가졌는지도 모르죠. 그러니 한 번 주변을 둘러보도록 하죠. 나에게 리듬을 선물할 사물, 그것을 찾기 위한 기분 좋은 두리번거림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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