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살고, 학교를 살았던 나의 교직일기
어느새 시작된 2학기가 폭염과 함께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에어컨이 하루 종일 찬바람을 보내지만, 복도부터 운동장 귀퉁이 모래알 하나까지 스며든 습기로 학교는 물의 나라같다.
에어컨 찬바람에 지친 교실은 그 바람에 계절을 알 수 없는 담요를 두르고 눈을 뜨지 못하고 조는 아이들이 꾸벅꾸벅 초침처럼 졸고 있다.
날이 좋은 날에도 아이들을 일으켜 수업을 하자고 조르기엔 역부족인데, 오늘 같은 30도 날씨에 90%의 습도에는 아이들을 달랠 방법이 없다. 물론, 교실은 그나마 쾌적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집중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그래도 나는 가르쳐야 하니 안간힘을 쓰고, 어제 퇴근때까지 고민하며 만든 학습지를 나눠준다.
태블릿과 패드세대의 아이들에게 여전히 학습지를 나눠줘야 하는 인쇄물이 문득 손을 부끄럽게 한다 싶지만.
손 앞에 뭔가 놓이지 않으면 인지의 거리가 더 멀어지는 것 같은 늙은 조바심에 또 학습지를 인쇄했다.
"일어나봐 애들아. 나 좀 봐라 쫌~~!!"
애원을 하면 겨우 둘 셋 일어난다.
향가와 시조의 흐름을 설명하다가 나도 툭. 멈추게 될 때가 있다.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배움은 언제 일어나는걸까? 나는 지금 핵심질문에 해당하는 질문을 하고 있는가?
수렵적 사고, 확산적 사고를 이끌어 내며 배움을 살려야 하는데. 내 질문은 그래서 또 한숨을 먹는다.
그래도 안간힘을 쓰다보면 나는 요즘 나오는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 한 카운터같다. 애를 쓸수록 머리가 하얗게 새는 등장인물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래서 내가 늙는구나. 애를 쓸수록 나는 늙고 그래도 학교는 그래서 살아지고.
활기 넘치는 아이들 담임을 할 때는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너희의 10대 어느 기억 속에 함께 살 수 있어 고마웠다." 라는 마지막 종례 인사를 할 때 녀석들도 아쉬워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나는 슬럼프처럼 물 먹은 솜이 된 기분이다.
딱 오늘같은 날씨가 요즘의 나 같다. 높은 온도에 치솟은 습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날씨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딱 싫어서이기도 하다.
오십을 바라보는 고등학교 교사. 25년차를 눈 앞에 둔 국어교사.
오늘 가르치는 제망매가를 내일 가르치는 성삼문의 시조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가르친걸까.
매 해마다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면 매 해마다 교사는 리셋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몇 년 전인데 갑자기 나는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을 잘 이겨내지 못하면 나는 선택해야 한다. 아주 이른 명퇴이거나, 아주 편한 뒷방 늙은이가 되는거다. 하지만 잘 이겨내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다시 찾은 열정교사가 되거나, 다시 에너지 충전한 새로운 도전자가 되는거다.
이 슬럼프는 학기 안에 극복해야 한다.
오늘은 일단 높은 습도에 핑계를 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