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없었던 오늘

오늘 일어나는 슬픔들이 내겐 없었던 걸까

by 홍선생

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 학부모 민원으로 동료 선생님이 힘들어했다.

결국 개학 후에도 이어진 민원문제로 선생님은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고 어제는 병 지각으로 늦은 출근을 했다. 방학 전부터 내내 이 사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격려하고 위로했지만 당사자에겐 해결이 되지 않는 짐일 뿐이다.


맥주 한 잔 하며 잊으라 하기엔 마음에 남은 앙금이 돌덩이처럼 무거울 것이고,

그런 학부모는 늘 있으니 너무 상처받지 말라 위로하기엔 이미 받은 상처가 너무 깊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아동학대라며 민원을 넣은 학부모는 자기 아이는 오히려 의사를 표현하지도 못하게 가로막고 자신의 입장을 더 많이 이야기했고, 해당 선생님이 하지 않은 일까지도 아이에게 받은 진술이라며 기록하고, 학교에 와서는 하는 모든 대화를 녹취해 갔다.

우리라고 할 수 없을까.

대응하려 했으면 우리도 교사들이 진술서를 쓰고 cctv를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가 아이를 중간에 두고 하는 대응은 참으로 힘이 없다.

사람에게 의지가 있을 때 힘이 생긴다. 그러나 아이를 두고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논리로 그 학부모를 설득하는 것은 교사로서 못할 짓이다. 차라리 그냥 참으면 그만이라고 그도 처음에 생각했을 것이다.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의욕적인 저 선생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참으로 안타깝다.

어린 선생님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저와 트라우마가 될까. 정신과 치료가 도움이 되기를.

나에게는 저런 경험이 없어서 참 다행인 걸까.


나에게는 없었던 오늘?

과연 나는 요즘 아이들이 한다는 아이스챌린지로 얼음 한 바가지를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2001년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을 가르치던 해에 나는 테러를 당했다.

어느 날은 신발장에 놓인 쪽지였고, 어떤 날은 문자 메시지였고, 어느 날은 욕설이었다.

쪽지에는 "수업 진짜 듣기 싫다. 안 보면 좋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신발장에 넣어진 쪽지를 처음 받았을 때는 머리카락이 모두 뽑힐 것 같은 충격이었다. 수업시간마다 같은 글씨체의 학생을 찾게 되는 의심증이 생겼다.

그리고는 다음은 글씨체가 걱정되었던지 문자였다.

"미친년. 나대지 마라." 첫 문자는 이렇게 시작했지만 그다음은 과감해졌다.

"총각선생님에게 꼬리 치지 마라. 개 같은 년"

퇴근할 때는 "오늘은 또 누구에게 잘 보이려 차려입었냐?"

처음엔 그저 잘못된 문자겠거니 생각했고 나중엔 화도 나고 당황했으며 날이 겹칠수록 나는 수업 시간 앉아 있는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 같았다. 나를 지켜보고 나에 대한 분노로 증오심으로 바라볼 그 눈빛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어린 중학생의 치기로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강단이 그때 20대 나에겐 부족했다.

사이버수사대라는 것이 이제 막 시작할 시대였다. 경찰서에 가서 문자를 신고하고 나오면서 경찰서 정문에 세워둔 차에 들어앉아 얼마나 울었는지가... 영화의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휴직을 생각할 만큼 피폐해졌고 정신과 치료와 상담, 약물치료를 받았다.

항우울제는 잠시 격한 감정을 내려놓는 데 도움은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잡히지 않는 범인에 예민해졌다.

경찰에서는 만약 범인은 잡게 되면 개인이 신고한 사안이므로 고소를 해야 하고, 학생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징계를 받아야 하며 학생이 아닌 동료교사라면 파면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해결인가? 이것이 문제가 해결되는 일인가?

그리고 나는 며칠 약을 끊고 깊이 가라앉았다가 약기운이 없어도 우울해지지 않았다.

그까짓 문자는 나를 평가할 수 없으며 가치 없는 그 따위 문자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비난은 비난을 낳는다.


학교라는 자리는 나보다 어린 치기 들을 만나야 하고, 집에서와는 다른 아이들의 이면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린 치기들의 학부모와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어린아이들보다 다 큰 어른들의 이야기가 더 지치고 가르칠 것이 많고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많기도 하다. 아이를 위해 전화상담을 했다가 집안의 가정사 상담을 받기도 하지만, 아이의 아부를 묻기 위해 한 전화에서 이유 모를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싶은 모욕과 황당함을 마주해야 하는 일도 적지 않다.

감사하고 고마운 만남이 더 많지만

하나의 돌멩이가 상처를 후벼 파고 그렇게 교사의 삶을 찢어놓는다.

내겐 없었던 오늘이 아니구나.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내 교직을 곪아가게 힘들었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구나.

떠오르는 그날들을 생각하며 오늘 웃을 수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 일어난 일처럼 아프다. 당장 엎어져 얻어맞은 것처럼 떠오른 장면 하나하나가 피가 철철 흐른다.

사람이란 기억할 수 있는 잔인한 동물이었다.

언제나 이런 문제들은 누가 해결해 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처를 안고 사는 내가 내 안에 살 뿐. 해결은 되지 않는다. 애초에 막아줄 방패가 없지 않았던가.

그때도 그랬다. 학교에 이야기를 해도 "애를 잡으면 어쩔 거냐?" "학부모한테 뭐라고 할 거냐?""애들이 그렇지 뭐."라는 동료와 관리자의 말이 더 나를 병들게 했다.

애들이 그러니 교육해야 하고,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을 테니 보호해 줘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 나는 오늘도 그 선생님을 지켜본다. 마주치면 파이팅을 외쳐주고 멀리서 보이면 손을 흔들어 준다.

그게 우리에겐 그나마 진통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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