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중간 지대가 있었나요?
나는 혼자 살아가고 있다. 사실 온전히 혼자는 아니고 은행의 도움을 꾸준히 청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삶은 나 스스로 꾸려나가는 게 익숙하다.
익숙해지기까지
나는 중간 지대가 필요했다.
그건 가족이나 친척의 도움일 수도 있고 친구와 경제적인 부담을 나누는 것일 수도 있고 정책이나 은행의 보탬일 수도 있다. 주변 지인들을 둘러보면 나같이 중간 지대를 거쳐온 사람들이 많았었다. 성장하기까지도 많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성장을 하고 나서도 혼자로 내딛기까지도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나는 약간 고행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버티곤 했다. 중간 지대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해결할 날도 요원했으니까.
어릴 때는 아니, 몇년 전의 나는 온전한 독립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유로움이라는 이름의. 내가 원하는 여유로움의 기준이 있었다. 여유로움을 가지게 되면 여러 가지 불편함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내 공간이 있으니 룸메이트의 알람소리, 불을 켜고 끄는 순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조금 넓은 집으로 가면 빨래를 방 안이 아니라 베란다에서 말릴 수 있다. 보증금을 부모님 손을 빌리지 않는다면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내가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고,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을 때는 나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이정도면 행복할 수 있고, 편안한 삶이 나를 기다릴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돌봄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돌봄의 순간들은 감사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다. 내 스스로 끌 때까지 멈추지 않는 알람을 서둘러 끄지 않는다. 저녁에 모든 방의 불을 꺼 두어도 누구도 답답해 하지 않는다. 빨래를 베란다에서 말린다. 보증금은 은행과 나 사이의 문제다. 내 허락이 없으면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 사실이 아주 행복하면서도 중간 지대가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혼자이고 싶긴 한데 혼자인게 싫을 때 그런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평소와 같은 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부를 묻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적막한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주말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안 했을 때
늦은 밤 배달음식을 먹고 싶은데 내가 혼자 사는 여자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잠들기 전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그 순간들을 미화하는 것인지, 그저 외로운 것 뿐인지, 이젠 그냥 지나와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중간 지대는 나름대로 나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다. 지금도 나름 혼자 살기 위한 여러 가지를 겪는 중이고, 해결되지 못한 문제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게 지나가고 다시 이 때를 돌아보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그리움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