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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Sep 21. 2018

열일곱 번째/ 추석 날 내 노동력은 얼마?

명절, 그 무상 노동에 관하여

반찬을 사러 반찬가게에 갔더니 전 부치기가 한창이었다. 나를 본 사장님께서 “어쩌지? 지금은 명절 때라 반찬은 장아찌 같은 거 밖에 안 파는데..”라고 하신다. 나도 나물을 사러 간 건 아니었고 밑반찬 몇 가지를 사러 간 거였기에 들어가서 반찬을 골랐다. 서성이다 보니 전이 맛있어 보여서 사장님께 여쭤봤다.


“미리 주문해야 살 수 있어요?”

“지금도 살수 있어요. 얼마나 필요해요?”

“혼자 먹을 거라 한팩만 살 수 있을까요?”

“그럼 만원 치만 팔게요.”


내가 좋아하는 애호박 전과 깻잎 전을 샀다. 특히 깻잎 전은 속에 다진 고기와 채소가 들어가서 명절 날마다 가장 인기 있던 메뉴였다. 이번 명절은 전을 부치지도 않는데 돈 주고 사먹는다니 정말 호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계산을 하고 집에 와서 반찬들을 정리하며 전이 들어있던 팩을 꺼냈다.


반찬가게에서 산 전의 가격은 만 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양이었다. 시장에 가면 더 싸게 살 수도 있겠다. 명절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아차 싶었다. 명절날 내 노동력을 이제껏 너무 싸게 써 와서 이게 적어 보이는 구나.




처음 반찬을 사 먹을 때가 생각난다. 그리 많이 산 것 같지 않았는데 금세 만 원이 넘어간다. 물론 혼자 먹으면 오래 먹을 양이긴 했지만 조금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반찬을 직접 해먹는 게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드는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반찬을 사는 건 내가 직접 계획을 세워 장을 보고, 필요한 재료를 손질하고, 직접 요리를 하고, 요리를 하느라 쓴 도구들을 설거지하는 모든 비용을 단순화한 일이다.


“그게 뭐가 힘들다고. 집에서 해먹으면 얼마 안 하는 걸”이라고 하는 말은 그 사람이 하는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한 말 밖엔 되지 않는다. 아깝다고 집에서 해먹으려면 그 모든 비용을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 가사 노동의 외주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또는 내가 하기 벅찬 영역을 돌봐주는 고마운 일이다. 나 또한 그런 서비스들을 종종 이용한다. 나는 내가 잘 하는 일로 돈을 벌고, 못 하는 부분은 비용을 부담하는 합리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명절에서는 그 합리성을 실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일년에 딱 두 번 뿐인데.”

“이런 날 오래간만에 가족들끼리 맛있는 음식 먹으며 시간 보내는 거지.”

“뭐 그거 며칠이나 한다고 그렇게 유난을 떠냐.”

“밖에서 먹으면 다 돈이야.”


이런 잡다하고 자질구레한 이유로 이제까지 착취당한 나날들이 얼마인지. 반찬가게에서 사온 전 한 팩으로 내가 일한 만큼이 어느정도인지 계산이 되기 시작했다. 명절마다 전은 백만원어치도 더 부치는 것 같다. 끼니마다 해다 바치는 나물이며 생선, 고기반찬들 국까지... 상다리 부러져라 해다바치는 세끼와 간식상 술상들. 그리고 산처럼 쌓이는 설거지거리들. 이 노동력이 얼마나 착취됐는지 계산하기도 벅차다.


화가 났다. 전을 하나 집어 먹었다. 입에 착착 감기고 맛있었다. 지긋지긋한 기름냄새에 쩔어서 밥도 못 먹고 전으로 끼니를 대신하며 먹었던 그 맛과 너무 다르다. 이번 추석에 안 가기로 결정한 게 백번천번 잘한 일이다.




그저께는 엄마가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 돼. 어떻게 니가 일하기 싫다고 친척들 다 모이는 자리에 참석을 안 하니? 할머니는 사실 날이 얼마나 된다고.”라며 나를 성토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악감정이 있다기보단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보고싶고 애틋하진 않다. 만약 명절날 그 고생을 하고 시급을 두둑하게 받는다고 해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명절엔 쉬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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