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인정하는 일에 대하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서, 애인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펑펑 울었다. 눈물이 그치지 않는 데다 코가 막혀서 애인이 몇 번이나 콧물 범벅이 된 휴지를 새 휴지로 바꿔주곤 했다. 다음날 출근하려고 이를 닦으려다 화장실 거울을 봤는데 눈이 퉁퉁 불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눈이 불면 꼭 오른쪽 쌍꺼풀만 풀려 있곤 했던 게 생각났다. 그걸 보고 엄마가 모기 물린 것 같단 소리를 했었는데. 거기까지 떠오르니 다시 눈물이 났다. 엄마와 나는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와서 늘 이런 순간에 툭 예전 일이 떠오르곤 한다.
시작은 엄마의 문자 이야기부터였다. 내가 왜 그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운지,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어떤 괴로움이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답장을 할지 말지 고민되는 문제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울컥하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울만큼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고 아무 타격이 없다느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나는 강한 사람으로 있고 싶으니까. 애인은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질문을 했었는지, 그래서 애인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저 어떤 대화를 하다가 애인이 조용히 내 눈을 보며 이야기했다.
그건 사랑받고 싶어서 그래.
사실은 엄마와 잘 지내고 싶어서 그래. 여기 깊은 속에는 그런 마음이 있어. 엄마랑 편하게 쇼핑도 하고,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고 싶어서 그래.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누구나 그래. 당연한 거야. " 숨죽이고 돌아서 울고 있는 나를 토닥여주면서 애인은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했다. 괜찮다고. 당연한 일이라고.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고.
나는 이런 나를 왜 징징거린다고 생각했을까. 그래 사실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감정은 당연한 거였는데. 왜 나는 그걸 꼭꼭 숨기고 없는 척했을까. 말로는 인정하고 더는 바라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없어질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래 나는 이제부터 안 그럴 거야.”라는 말을 반복했을 뿐 사실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를 향한 원망 한 편에는 사실은 그냥 나를 봐달라고, 사랑받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였는데. 왜 나는 한 번도 그걸 제대로 표현해 본 적도 없었을까? 왜 그 말을 하는 게 두려웠을까. 그러다 문득 서러워져서 속마음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왜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날 왜 그냥 놔두질 못해."
"엄마는 딸이 필요하니까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매정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엄마에 대해 연민이 들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고 나자 약간 다른 마음이 들었다. 사실은 내가 이런 것 때문에 30년 가까이 엄마의 손을 제대로 놓지 못했던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필요로 해주고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가까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게 딸 덕이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면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고 엄마가 말하지 않은 욕구도 채워주려고 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만족할 만큼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엄마도 내가 만족할 만큼의 사랑을 줄 사람도 아닐 뿐이었다.
나는 엄마와의 연락이 편안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예전처럼 엄마의 욕구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이 돼버릴 것 같았다.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스스로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내가 편안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연락이 오는 일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 답장을 하고 하지 않고는 내 자유지만 그저 답장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하곤 했다. 그게 내 마음의 짐을 덜 것 같았다. 말로는 단절하고 이별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내 마음을 숨기고 자존심상 없는 취급 하기 바빴다.
이 순간에 애인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서 다행이었다. 애인이 내 마음을 읽고 들여다봐줘서 고마웠다. 내가 부정하고 있는 마음속을 먼저 알아주어서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사랑받고 싶다는 걸 눌러놨는데 이제 와서 알면 뭐해. 그냥 다시 넣어둘 수밖에 없잖아."
"잘 포장해서 넣어두면 되지."
많이 삐뚤어진 나에게도 다정하고 성실하게 대해 주는 네가 참 좋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내 마음을 부정하고 숨기려 하지 말자. 많이 해봤지만 힘들기만 했잖아. 그러면 인정하는 것도 한번 해보자. 꺼내 놓은 내 마음을 다독여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자. 토닥임이 끝났다면 다시 정성스럽게 넣어주자. 다시 힘든 마음이 올라와서 나를 찌르기 시작한다면 그때마다 나에게 잘 해주자. 달래주고, 받아주고, 사랑해주자.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이제는 없다고, 이대로 받아들였다고, 이제 그만 징징거릴 때가 되었다며 나를 다그치고 속이지 말자. 나는 언제든지 되돌아올 수 있다. 되돌아올 때마다 안아주고받아주면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조금씩 내 길을 찾기도 했다. 내가 힘들단 점을 알아채고 상담소를 찾았다.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나에게 가혹한 태도를 가졌다는 것도 알아냈다. 내 두려움과 불안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고민했다. 부모와의 거리 설정을 다시 해보려는 용기를 가지기도 했다. 이 모든 순간이 쉽지 않았다. 나는 이 어떤 단계도 넘어서서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길을 가는 일과 비슷하다느 생각이 든다. 나는 다른 길로 잘못 가기도 하고, 그러다 우연히 좋은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되돌아 가기도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제까지 정말 잘 걸어왔다. 쉼 없이 걸어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다면 쉬어가도 되고 물을 찾아가도 된다. 급하게 가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니 내 마음속 어린아이에게 채근하지 말자. 아이가 크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