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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an 10. 2019

그토록 사소한 일

머리가 가슴에게

또 문제가 생겼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지긋지긋할지도 모른다. 나아지는 듯 하다가도 또 일이 생겨난다. 나도 이런 내가 조금은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덧셈을 다 배우고 곱셈을 배우는데, 곱셈이 잘 안 되서 다시 보니 덧셈을 제대로 안 배워서 그랬다는 걸 깨달은 기분이다. 그래서 다시 덧셈을 배울 땐 꼭 뒤쳐진 듯한 기분이고 빨리 곱셈으로 가고 싶어서 조급한 마음이 들곤 한다. 지금의 나도 비슷한 기분이다. 빨리 어린시절의 나에게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내 마음은 폭풍이 휘몰아치곤 한다.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온다. 분노, 불안, 경멸, 무력감, 슬픔, 원망, 자책감, 후회 등등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기도 힘에 부친다. 그러나 곧 ‘맞다, 이게 아니었지.’ 또는 ‘나 이런 방향으로 바꿔보려고 했었지.’란 생각이 들곤 한다.

사실 그냥 넘겨도 괜찮아. 그냥 나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지 뭐. 깨닫고 나면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러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걸린다. 머리와 가슴의 거리만큼.




하나는 엄마의 전화였다. 엄마의 취직 축하 선물은 엄마가 알아서 사고 얼마인지 알려줄테니 나는 동만 부쳐달라는 거였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게 요구한 이유를 엄마가 구구절절히 말했고 나도 나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미 나는 마음이 상해버렸다. 나는 엄마와 마음을 교류하고 싶었던 거지만 엄마는 선물을 빨리 가지는 게 중요하단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들어야 했으니. 여기서 내 기분 나쁜 마음을 표현하면 돈은 돈대로 쓰고 싫은 소리만 들을 게 뻔했다. 알겠다고 했다.


선물을 산 뒤도 문제였다. 평소 엄마는 엄마 돈으로 그런 금액대의 신발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내 돈이었으니 평소의 두세배를 쓴 거겠지. 그러고서 나에게 하는 말은 더했다. 내가 부담스러울 것 같으니 엄마 돈을 보태겠단다. 나는 이미 첫 전화부터 심상치않았으니 예상은 했었지만 정말 내가 생각한 최악대로 흘러갈 줄은 몰랐다. 그냥 처음부터 용돈이나 계좌이체 할걸 왜 선물을 산다고 했을까.


나는 잠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와의 관계에서 서로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흘러갈 거라고.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 대로 엄마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엄마를 만족하게 할 수 없다. 내가 그러려고 할 수록 엄마의 의견에만 끌려다닐 뿐이다. 엄마의 만족은 엄마의 몫이고 나는 내가 만족하고 편안할 만큼만 했어야 했다. 그래야 나는 예전의 관계로 다시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 동안 내 안의 감정은 다시 폭발하기 시작했다. 내게 경제적으로 압박감을 주고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나에게 비난을 쏟아부었던 엄마에 대한 화, 원망의 감정이 들었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우울하고 무력했었는지,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얼마나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는지까지 다 쏟아져나왔다.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엄마를 도우라며, 니가 그정도밖에 못 해서 그게 되겠냐는 어린 시절의 악몽까지 다시 떠올랐다.


그때의 엄마는 분명히 나에게 잘못했다. 아무리 이해하고 노력해봐도 그때의 엄마를 나는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이 사건 하나 가지고 예전의 기억까지 다 끌어와서 화를 내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지친다. 사건 하나가 벌어질 때마다 어릴 적의 화까지 다 몰아서 내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그토록 사소한 일에 연연하느라 나는 이 밥도 대충 먹었고 즐겁게 읽으려던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애인과 대화할 때도 엄마 이야기를 하며 화내기 바빴다. 그토록 사소한 일에 연연하느라 나의 삶을 놓치고 싶지 않다.




두 번째는 이모였다. 잊을만하면 연락이 오는 이모는 나를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보험 영업을 하는 이모가 실적을 채울 때면 그토록 싫어하는 내게 전화해서는 안부를 묻고 보험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몇번 넘어가서 했지만 곧 다 해지해버렸다. 이모는 전화 상담사 만큼도 내 사정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엉망으로 설계하곤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랬다. 내 사정이 어떤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싼 거니까’ 해보라며 밀어붙이기 시작해서 거절했다. 그랬더니 구구절절 폭언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해봐야 동네방네 전화해서 내 욕이나 하면서 그 소문이 내 속을 더 터지게 했을테니 대충 상대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릴 때부터 이모한테 당했던 게 다 떠오르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날도 그토록 사소한 일에 화가 나서 밥도 대충 먹고 단걸 실컷 먹으면서 내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엄마나 이모나 내 안에서는 나쁜 기억들이 잔뜩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엄마나 이모만 나에게 나쁘게 하진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도 있었고, 내가 어리다고 반말부터 시작하는 무례한 손님도 있었다. 어제 회계 감사에선 굳이 없는 지적사항을 트집잡아 만들어 내려는 감사위원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그땐 기분 나쁘고 동료들에게 하소연 하긴 해도 내 일상을 망치진 않는다. 아주 심한 사건이 아니라면 퇴근하면 뭐였는지 크게 중요하지도 않는다. 친구들과 농담거리로 웃어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뭐가 달랐을까 생각해보면 어린시절의 나는 내 편이 없었단걸 깨닫곤 한다. 대게 나는 어른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어른들이 내게 폭언을 하고 윽박지르고 아무렇게나 행동을 해도 “그러면 안 된다.”며 그 어른들을 제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어릴 적 외할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셨던 건 기억이 난다. 그래서 엄마나 이모는 외할아버지께서 계실 땐 안 그랬다. 그리고 많은 순간 외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안 계셨다.


성인이 된 나는 더이상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는다. 날 부당하게 괴롭힌다고 내 이야기에 동의해주는 동료가 있고, 무례한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할만큼 목소리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른이 된 나는 엄마나 이모가 이러든저러든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만큼 컸다. 이제 엄마나 이모가 하는 말이 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라고 선을 그을 만큼은 알게 됐다. 그들이 요구하고 만족하고 서운해 하는 모든 일들은 그들의 몫이다. 내가 채워주거나 트집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할만한 일이 아니다.


이해는 되는데 마음으로는 어렵다. 상담선생님은 내가 자꾸 영향받고 흔들리는 이유는 내가 아직 마음이 단단하게 서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생각하면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금세 넘길 수 있다. 그런데 나보다 저 사람들이 영향력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고 오래 간직하고 있다는 거였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다. 잘한 일이 있으면 사소한 일이라도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다. 잘못한 일이 있어도 나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나의 아픔을 토닥이고 다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도 괜찮다.


온 가족이 나를 트집잡고 비난하고 못 되게 군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나의 가치를 그들이 정해준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나를 예뻐해주는게 나를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예쁘면 사소한 결핍은 봐주고 넘어갈 수 있다. 그토록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머리로는 알아도 사실 가슴으로는 늦게 알아채게 된다. 엄마의 행동을 어린 시절과 연결한다던지, 이모의 무례를 오래 간직한다던지. 머리가 먼저 알아채면 가슴에게 그러지 말라고 알려주면 된다. 알려주다보면 언젠가 나의 마음도 더 금세 알아채곤 할 거다. 그러면 머리가 알려주지 않아도 통하는 날이 있겠지. 조급해하지 말자. 사실 머리로 이해하는 데까지도 한참 걸렸잖아. 마음까지 가는 데는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릴지도 모르고 시간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르지만 괜찮아. 다시 돌아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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