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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pr 02. 2019

32. 함께 살고 싶다.

난 결혼은 별로..


내 지인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소리다. 한국사회 풍토상 일정 시기가 되면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결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나에게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은 좀 지긋지긋해서 그런 소재로 내가 먼저 대화를 꺼내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내 입장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때면 표정은 이미 구깃해진 채로 억지 대답을 하곤 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슈이기도 했고, 일단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전에도 '결혼, 꼭 입장 표명을 해야 하나.'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때의 글을 다시 읽어봐도 사실 내 입장은 그리 달라진 게 없다. 꼭 입장 표명을 할 이유도 없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굳이 훈수받을 이유도 없다. 그 글을 쓴 지 딱 7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의 내 생각에 바뀐 점이 있다면,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뿐.


 



처음에는 그냥 함께 살고 싶었다. '애인과 결혼을 해야지!'라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만난 것도 아니었다. 7개월 전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결혼은 나랑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서로의 공간을 오가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그래서 '같이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작년 가을쯤, 애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애인의 의사를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 함께 살아보는 거 어때?"라고.


우리는 둘 다 타지에서 독립을 한 직장인이다. 둘 다 학생 때부터 집을 나와 살았고, 직장 문제와 여러 이유로 직장이 있는 지역에서 작은 집을 구해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린 일주일 중 6일은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서로의 지인을 만나기도 했고 어느새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애인은 꽤 괜찮은 연인이자 룸메이트가 되어줄 것 같았고 서로의 전세금을 합치면 지금보다 좋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니까. 그래서 더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거란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지지부진했다. 서로의 전세금이 목돈으로 묶여 있기도 했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지도 않았고 막상 동거하려고 생각하다 보니 이런저런 거 생각하는 게 좀 귀찮기도 하고. 막상 두 명의 인간이 서로 모여 살려다 보니 생각해야 할 거리가 많았다. 둘이 함께 한다는 건 나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사회는 단순하고 명료하게 흘러가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우리의 계획은 흐려지는 듯싶었다. 그 대신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다. 같이 사는 일과 같이 사는 일의 선택지들에 대하여. 지금처럼 서로 자주 만나며 일상을 공유하는 일, 각자의 집에 굳이 알리지 않고 동거를 하는 일, 결혼을 해서 법적인 관계를 맺는 일. 나는 그중 세 번째 일이 가장 꺼려졌다.




나는 나중에서야 상담이나 애인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사실이지만, 결혼이 가장 꺼려진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나는 결혼으로 인해서 내 가족을 애인에게 보여야 한단 수치심이 컸다. 자, 이 사람들이 나를 어린 시절 학대하고 지금도 내 삶의 전반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야. 혈연관계로 묶여있긴 한데, 그래서 내 일부분이라고 하긴 한데, 사실은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 내가 보여주면 과연 내가 그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으악, 다 놓고 도망가버리고 싶어.


특히 나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결혼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이 사람들이 결혼을 무기로 날 뒤흔들 게 두려웠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내 애인에게까지 무례하게 굴고 내가 뒤흔들리는 꼴을 애인에게 보이는 것도 수치스러웠다. 왜 인간과 인간이 법적으로 엮이기 위하여 가족이란 존재가 필요한 건지 의문이었다.


 그런 마음에서 지금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약간 될 대로 돼라.'란 마음이 된 것?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럽지만 천천히 가족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저 사람들이 나를 뒤흔들기 위한 시도는 많이 하겠지만 내가 잘라낼 수 있을 만한 힘이 생겼던 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와 일상을 함께하던 애인은 내 가족 욕을 너무 많이 들어버렸고.. 그래서 다 털어놓고 나니 생각보다 그렇게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내 가족이 나에게 잘못한 건 많긴 한데 그게 내 탓은 아니었잖아. 단순한 일인데 마음으로 받아들이긴 뭐가 그리 어려웠는지.


물론 아빠와 연을 끊어버린 건 좀 마음에 걸리긴 하다. 그런데 결혼 때문에 아빠랑 친해져야 하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가부장 빼고 생각할 수 없어서 짜증 나기는 하는데, 그래서 아빠를 꼭 그 자리에 앉혀야 하나? 뭐 그건 아빠의 선택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난 애인이랑 살 건데.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좀 거리낄 마음이 사라지긴 했다.




꺼려지는 일들이 사라지고 나니까 결국엔 내가 원하는 것만 고민할 일이 남았다. 결혼을 해서 내가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신혼부부 주택대출, 새로운 법적 동반자, 삶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즐거움. 물론 애인 집안의 가부장제까지 보너스로 딸려오긴 하지만, 내 가족도 끊어낸 판에 애인의 가족이 내 안에서 그렇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애인의 가족들을 만나봤다. 결혼하면 조금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모습이 딱히 내게 위협이 되거나 공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서로 존중을 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만큼만 받아들일 마음도 들었다. 그게 안 되면 뭐든 그만두면 되지. 이왕 같이 사는 거 법적으로 엮여봐도 괜찮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겠다 싶었다. 사실 매우 감성적인 판단이었다. 딱히 결혼이 나에게 아주 돌이킬 수 없는 선택같지도 않은걸. 그래서 내친김에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날짜까지 잡아버렸다. 사회에서 원가족이랑 하라고 규범으로 만들어 논걸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나니, 참 상쾌하고 즐겁고 재밌었다. 일 벌여놓고 나니 좀 불안하고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건 내가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여자라서 그렇겠지만. 안 되면 수습하지 뭐. 난 날 좋고 나 좋을 때 하고 싶은걸. 벌써부터 마음이 살랑살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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