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다음, 실전은 삽질이다
초겨울, 조경업체를 통해 일차적인 시공을 하고 어느덧 새바람집에서의 첫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눈이 내리던 하늘은 봄비가 내리고 얼었던 땅이 녹았다. 파라솔 아래에 앉아 봄바람을 맞으며 커피 한잔 하기 딱 좋은 계절이지만 아직까지 마당은 바라만 봐도 심란하기 짝이 없다. 봄비를 감상하며 평화롭게 멍 때릴 그날을 고대하며 비가 내리면 일단 삽을 들고 뛰쳐나간다.
주택에 살게 된 지 어느덧 600일이나 지났다고 하지만 인생에 대부분을 도시에서 산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하물며 베란다에서 화초라도 키워봤을까 하면 아니다. 그러니 이번 단락의 부제는
*주의 따라 하지 마시오*가 되겠다.
처음 비 오는 날 마당일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마당일을 본격적으로 할 때쯤이 막 더워지기 시작할 때었다. 한참 삽질을 하고 있던 중 한 두 방울 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원하고 괜찮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에는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비 오는 날 식재한 식물들이 다른 식물들보다 훨씬 더 잘 자리 잡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마 새로 식재한 식물이 잘 활착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물을 주어야 하는데 맑은 날 심은 식물들에게 비 오는 날 만큼 물을 잘 주진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무를 옮기고 새로 식재할 일이 있을 때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 시작이. 물론 비 오는 날 우비를 입고 삽질을 하고 있으면 남들도 이렇게 하나 싶어 의구심이 들고 무거워진 흙을 옮기는 게 말도 안 되게 힘들지만 말이다.
새바람주택의 중앙에는 꽤 오랫동안 흙동산이 있었다. 조경공사 후 남은 흙을 쌓아 둔 것인데 일부는 뒤편으로 보내고 일부는 평평하게 만들어 잔디를 심을 계획이었다. 꽤 오랫동안 방치 된 흙은 딱딱하게 굳어 삽이 안 들어갈 정도였기에 비가 온 다음날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흙동산을 평평하게 만들고 잔디를 심는 방법은 그야말로 우공이산. 그냥 한 삽 한 삽 옮기는 것이다. 급할 거 없지 하며 오며 가며 조금씩 옮기자라고 마음먹고 매일 조금씩 옮겼지만 사실 미리 계획만 잘 세웠어도 포클레인이 몇 시간이면 했을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번잡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주에 걸쳐 흙을 평평하게 펼치고 나서 잔디를 심었을 때는 꽤 뿌듯하긴 했다.
처음에는 타원형으로 둥글고 낮은 동산 형태로 만들었는데, 테두리 부분 마감이라던가 전체적인 굴곡이 울퉁불퉁해졌다. 매끄럽고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서 흙을 계속 옮겨가며 맞춰보려 했지만 영 잘 되지 못해서 결국 형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타원형에서 직사각형으로 바꾸고 빈 곳 없이 전체적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게 흙만 옮기면 되는 것 같지만, 잔디를 심어놨었기 때문에, 잔디를 심었던 모양 그대로 잘 떼어내서 모아두고, 바닥의 흙을 옮긴 뒤 다시 적당한 간격으로 잔디를 심어야 하는 나름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한번 자리 잡은 잔디가 옮겨진 뒤에도 잘 자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별일 없이 적응을 잘한 것 같다. 비나 눈이 오면 질퍽이기 때문에 데크 쪽으로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방부목으로 발판도 만들었다. 이제 봄이 오면 빈 곳 없이 촘촘하게 잔디와 작은 식물들을 키워보고자 한다.
비가 그치면 매번 해야 할 일로는 잔디 깎기와 잡초제거가 있다. 이건 집에 잔디가 있다면 피할 수 없고 끝나지 않는 노동으로 비 온 뒤 신나게 자란 잔디를 잘라주고,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 잔디는 생각보다 빨리 자라고 잔디가 무성해지면 그 사이사이 잡초도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마당이 깔끔해 보이지 않고 정신없어 보인다.
처음엔 정원 가위로 웃자란 잔디를 잘라주었는데, 작지 않은 면적을 감당하긴 어려워서 작은 전동 잔디 깎기를 들였고 제법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꾸준히 계속해줘야 하는 일이라 장비는 너무 중요하다.
마당을 상상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많은 영상들을 봤다. 영상에서 봤던 가드너에 대한 로망이라면 자유분방하면서도 정돈되어 있고 멋들어지게 식물과 꽃이 가득한 정원을 앞치마를 두르고 가벼운 모자를 쓰고 바구니에 모종삽, 정원 가위 등을 담아 유유히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물론 비교적 유유히 할 수 있는 작업이 있기도 하지만 그 유유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땀에 젖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뭇가지에 여기저기 긁히게 되는 바지런함과 끝없는 노동이 필요했다.
가드너의 도구
가위와 모종삽은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기본적인 도구가 되겠다.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작업들은 이 두 가지로도 충분하다. (물론 새바람주택의 경우이다) 커다란 나무가 아니라면, 작은 식물의 식재, 전지, 삽목은 가위와 모종삽만 있으면 된다.
전면부에 외부의 시야 차단을 위해 심었던 에메랄드그린은 적당한 때에 전지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로만 높이 자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원하는 높이가 되면 윗부분을 전지 해주어야 그다음에는 가로로 풍성해진다고 했다. 시야 차단을 위해서는 풍성하고 촘촘하게 나무가 자라주어야 하기에 담벼락에 올라가서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주었다. 잘린 가지는 혹시 자랄 수 있을까 싶어서 땅에 심어보았지만 결국 좋은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향이 백리까지 퍼져서 백리향은 여기저기 삽목이 쉬운 식물이었다. 백리향은 지피식물이라 넓게 퍼지듯이 자라는데 그렇게 자라난 줄기에도 따로 뿌리가 생겨서 줄기를 잘 잘라내 옮겨 심으면 또 한가득 백리향이 자라난다. 처음 10주를 사서 전면에 한 두 군데에 심어놓았는데, 이후 옆면과 잔디구역에도 백리향을 퍼트릴 수 있었다.
가드너의 끈기
마당을 구성하는 데엔 식물과 나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식물과 나무에 어울리는 여러 구조물이 있어야 한다. 집 전면의 경우에는 커다란 정원석으로 분위기를 만들었고, 후면에는 데크를 두어 넓은 면적을 실용적인 공간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남은 곳은 데크 옆면의 어설프게 잘린 계단부와 바닥공간. 기존 주택과 외부 건축물이 붙어있던 곳이라 외부 건축물을 철거하면서 그 연결 부위에 다른 마감을 하지 않은 채 콘크리트가 대강 잘려 있고, 외부 건축물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화장실 타일이 보이는 곳이다.
자주 오가는 곳은 아니지만, 건물 담벼락, 데크와 어울리게 깔끔하게 계단을 만들고 싶었고, 기왕이면 벽돌주택인 새바람주택처럼 벽돌로 만든 계단이고 싶었다. 이것도 참 누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어서 적벽돌 한 팔레트, 시멘트 한 팔레트를 시켰다. 시멘트를 물에 개어 섞고, 적벽돌로 모양을 만들어가며 채워나가고 있는데, 전문가는 아닌지라 속도가 더디다. 이를 위해 레이저 줄자도 구비해서 수평도 맞춰보고는 있지만 어설플 수밖에 없다. 그래도 완성되면 꽤나 마음에 드는 색감과 모양이 될 거다. 날이 풀리고 있으니 곧 다시 시작이다.
벽돌계단은 마감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었다면, 인테리어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위해 시멘트 디딤석 작업을 했다. 대문에서 계단까지 동선을 만들고 그냥 시멘트 바닥인 것이 아쉬워서 디딤석을 두고자 했다. 방법은 시멘트 모양틀을 활용하는 것. 모양틀에 시멘트를 부으면 그대로 굳어서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해 나름 생각했던 대로 완성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오자 나타났다. 처음에 디딤석을 생각할 때도 현관 쪽 물길을 고려해서 디딤석 사이에 틈을 주고 물이 지나갈 수 있게 했다고 작업했는데, 실제 비가 오니 한쪽에 물이 고여서 전혀 흐르지 못하는 걸 보았다. 어떻게 해도 이를 해결할 수 없어서 결국엔 디딤석의 위치를 담벼락 쪽으로 완전히 옮겼다.
페인트칠은 의외로 마당일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대문을 칠하거나 대문 위 지붕, 담벼락도 한 번씩 다시 칠해야 하고 방부목으로 만든 데크나 담벼락도 한번 스테인을 칠하고 나서도 매년 보수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지난 마당일 중 가장 고통받았던 작업을 고르자면 레티스 칠하기였다. 새 바람주택의 일부는 담벼락이 없이 옆집의 벽을 담벼락처럼 공유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옆집과 밀착해 새로 벽돌 담을 세우긴 어려워서 비용 등을 고려해서 나무로 된 레티스를 골랐는데, 이것이 새로운 노동의 시작이 될 줄이야.
외부에서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테인을 칠해야 하는데, 레티스는 좁고 얇은 각재가 겹쳐져있는 형태에 나무 질이 좋지는 않아서 스테인을 칠하는 것이 너무 쉽지 않았다. 자꾸 빈 곳도 생기고 대충 칠할까 싶다가도 안 칠해진 빈틈을 발견하면 신경이 쓰여서 꼼꼼하게 할 수밖에 없는데 끝나지 않는 무한 스테인 작업이었다. 때마침 놀러 온 친구의 손까지 빌려서 겨우겨우 완성했다.
어느새 3월, 올해 봄은 조금 더 빨리 찾아올 모양이다. 바위 틈새 심어두었던 수선화가 올해도 노란 꽃이 예쁘게 필지, 꽃을 얼마 보지 못해 속상했던 영산홍이 올해는 괜찮을지, 텃밭에 새로 심을 작물이 잘 자라 줄지 기대하며 또 한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작을 기다린다.
- 다음화 예고 -
꿈과 환상의 집, 새바람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