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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Oct 15. 2021

돌아온  풍요

풍요이야기

장군이가 은둔생활에 들어간 후에도 풍요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 역시도 풍요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우리 집을 나간 지 두어 달이 되었고 그 기간이면 죽은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달리 살아갈 궁리는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풍요를 향한 마음속 정이야 우리 가족에게만 남아있는 것이지, 풍요는 그사이 우리 가족에 대한 기억을 모두 놓아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요가 장군이의 소식을 알게 된다면 주인 없는 영토에 네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역시 풍요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기다리는 마음은 여전히 몸속 어딘가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집 마당 한쪽에 있는 텃밭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곳은 오이, 상추, 가지, 깻잎, 고추 등을 가까운 거리에서 손쉽게 채취해 오는 그야말로 문전옥답이다. 

그곳에 겨울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 위해 땅을 다시 부드럽게 고르고 퇴비도 미리 썩어 두어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며칠씩 미루다가 그날은 마음먹고 손에 삽을 쥐게 되었다. 


삽질을 하다가 허리를 펴기 위해 일어서는데 울타리 밖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걷는다기보다는 머리를 숙이고 빠른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것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삽을 놓고 “푸. 풍요다!”하고 아내를 쳐다보며 외쳤다.

아마 두 눈도 동그랗게 커졌을 것이고 몸짓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있었을 것이다.


풍요가 돌아온 첫날 표정. 둘째 딸은 풍요가 감격에 겨워 울먹이는 표정으로 해석했다.



삽을 쥐었던 그날, 그렇게 풍요는 돌아왔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좋은 일도 찾아오는 법이다.      

풍요는 울타리 밑과 지면 사이의 좁은 공간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풍요 맞나?”, ”잘 있었나?”, ”어떻게 지냈노?”,”살아 있었나?” 하면서 연이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풍요는 얌전히 앉아서 눈을 껌뻑이며 그 많은 질문을 대답 없이 다 들어주었다. 


돌아오면 된다. 기다리는 자는 돌아오는 자가 어떤 몰골을 하던, 돌아오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을 따지지 않는다. 기다리는 자는 다만 <돌아옴> 그것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아내는 “배고프제?”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곧바로 사료 봉지를 가지고 왔다. 나는 사료의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나 걱정되어 한 줌 집어서 냄새도 맡아보고 색깔도 관찰해 보았으나 괜찮은 것 같았다.


거의 3개월 만에 풍요에게 사료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그동안 우리 가족을 감싸고 있던, 서로가 알 수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았던 슬픔이 깃든 그 침묵도 비로소 깨어졌다. 그 침묵은 활기로 바뀌었고 그 활기는 풍요에 대한 예우 격상으로 이어졌다. 없어 봐야 그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을 것이다.


풍요의 거처는 이제 계단 밑 작은 공간이 아니었다. 그 계단을 밟고 베란다 위로 올라오면 좌측으로 작은 나무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아래에 종이상자가 놓여졌다. 그것은 상품 포장에 단 한 번 쓰인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고 노란색 스카치테이프도 덧댈 필요가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우리 집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큰 변화일 수도 있다. 막내아들이 대학 마지막 학기를 인터넷 강의로 수강하게 되면서 살던 도시를 떠나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코로나가 수그러들지 않아서이다. 막내아들과는 거의 9년 만에 한 지붕 아래에서 매일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막내아들은 나의 술친구가 되었다. 다시 두 명의 친구가 생겼다. 막내아들과 풍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요의 자태. 베란다 위 자기 집 앞에서 모처럼의 평화를 즐기고 있다.


풍요는 한동안 사료를 많이 먹었지만, 서서히 사료를 조금씩 남겼고 몸에 살도 붙어서 보기 좋았다. 하루는 풍요가 사료를 남기는 것을 보고 아내가 “풍요도 있는 집 자식 되었네”하면서 웃었다. 


풍요는 장군이의 영토를 물려받았고 포도밭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앞집이나 울산집에도 기웃거렸다. 내가 집 뒤편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한번 쳐다보고는 풀숲을 헤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풍요야!”하고 소리쳐도 들은 척도 않았다. 


풍요는 자신만의 일을 했고 배가 고플 때나 잠이 올 때면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풍요의 평화가 다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풍요와 들국화.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즐기는 풍요를 향해 들국화가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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