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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Oct 18. 2021

풍요의 겨울 집

풍요이야기

겨울이 왔다. 

날로 추워지는 날씨를 보면서 우리 가족은 풍요의 종이상자 집이 걱정되었다. 

그즈음 나는 실내에서도 목도리를 하고 누비 잠바를 입고 있었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겨울이었다.


아내는 작은 담요를 상자 바닥에 깔아 주었다. 고양이의 겨울나기는 우리 가족에게는 처음의 경험이었고, 나는 “풍요는 털옷을 입고 있어서 웬만한 추위에는 끄떡없을걸?”하면서 지레짐작으로 월동준비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파가 몰아쳤던 12월 어느 날 아침, 출근하면서 늘 풍요 집에 들러서 인사를 하고 가는 둘째 딸이 풍요에게 가보니 손바닥만큼 작게 보일 정도로 몸이 쪼그라들어 있더라는 것이다. 둘째 딸이 다가서자 평소에는 아침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녀석이 태도를 바꾸어서 쪼그라든 몸을 힘들게 펴서 기어코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아주 애처로운 눈으로 둘째 딸을 쳐다보는데 바로 그때 두 콧구멍에서 콧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더라는 것이다. 

풍요는 그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늘 조용하던 우리 집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아내는 아끼던 무릎 덮개용 담요를 선뜻 풍요 종이상자 집에 넣어 주었고 둘째 딸은 출근하자마자 풍요 겨울 집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추천 상품을 막내아들에게 보내 주었다. 추천 상품은 둘째 딸 취향에 맞는 노란색 혹은 분홍색 벨벳 천으로 되어있는 둥근 모양의 예쁜 고양이 집이었다.


막내아들은 누나의 추천상품을 무시하고 자신이 고른 국방색의 두툼한 천으로 만들어진 야전용 막사 느낌의 고양이 집을 긴급히 주문했다.

둘째 딸은 나중에야 자신이 추천한 상품이 실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남동생이 얼마나 현명한 지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풍요 집 월동 준비. 플라스틱 도마는 베란다 아래 공간에서 올라오는 찬바람 차단 장치이다. 저곳에서 풍요는 얼어 죽을 뻔했다.


나는 장군이를 떠올렸다. 

지난번 장군이가 사는 차실에 갔을 때 안단테네가 그곳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냉난방도 잘된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가까이 있는 이웃임에도 한쪽 집 고양이는 얼어 죽을 상황에 있고 다른 한쪽 집 고양이는 바깥이 더운지 추운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 극명한 대비가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겹쳐 보여서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풍요 겨울 집이 택배로 도착하기까지 이삼일 간의 추위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으나 달리 대책이 없었다. 풍요가 우리 집 거실이나 아니면 창고 카페에라도 들어가 준다면 더는 걱정할 것도 없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그럴 것이라면 풍요의 성격으로 봐서는 얼어 죽는 것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게 “됐다 뭐. 지가 알아서 잘 버티겠지”라고 했다.

아내는 따뜻한 물을 수시로 풍요 집에 놓아두었다.


이틀 후 오후에 퐁요 겨울 집이 도착했다. 

막상 실물을 보니 종이상자 집보다는 낫겠지만 출입구가 뚫려있기는 마찬가지여서 그 집을 온전히 덮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바람막이 시설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막내아들은 그 시설의 내구성을 고려해서 설계도를 종이에 그렸고 적정한 길이도 적어 넣었다. 그리고 그 시설의 골조를 만들기 위해 나무 각재를 사러 우리 집 단골 자재 가게로 향했다. 

나는 그 골조를 에워쌀 수 있는 바람막이 뽁뽁이 비닐을 사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창고 카페에서 다시 만나서 밤 11시경에 그 시설을 완성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막내아들이 오늘 밤 안으로 풍요에게 꼭 설치해 주어야 한다면서 힘들어하는 나를 독려했다.


풍요의 겨울 집은 거실 유리문을 통해 그 집 정면을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막내아들이 “아빠! 풍요 프라이버시를 너무 침범하는 거 아니에요?” 했지만, 

나는 “풍요가 뭐 알겠노, 그라고 그쪽이 햇빛도 더 잘 들어와서 좋다” 하면서 그대로 강행했다. 

이번 기회에 풍요의 사생활을 생생하게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낯가림과 경계심이 많은 풍요가 온 가족이 신경 써 마련한 겨울 집에 들어가지 않을까 봐 염려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쏙~하고 거침없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와~ 풍요 잘 들어가네”하고 손뼉을 쳤다. 

그동안 풍요가 추위 때문에 고생이 심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막내아들은 “풍요는 좋~겠다. 좋은 냥 주택도 생기고.”라고 부러워하면서 자신 명의의 주택이 없음을 서운해했다. 


풍요의 종이상자 집 생활이 우리 가족의 박수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그 종이상자 집이 다시 나타날 때쯤이면 봄이 와 있을 것이다.

그날 늦은 밤 겨울 날씨는 추웠지만 우리 가족의 마음속 날씨는 봄날처럼 아주 따뜻했던 날이었다. 

겨울 집에서 처음 자고 난 다음 날 둘째 딸에게 아침 인사를 받아주는 풍요. 그날은 밖으로 나와서 인사를 받아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둘째 딸이 의례 하듯이 출근 전 풍요에게 인사차 갔더니 풍요가 밖으로 걸어 나와서 “야옹!” 하더라는 것이다. 겨울 집 덕분에 지난밤 춥지 않게 잘 잤다는 감사의 인사일 것이라는 게 둘째 딸의 해석이었다. 나도 풍요가 <배운 고양이>로서 그 정도 인사는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풍요가 집안에 웅크리고 누워서 한번 쳐다봐 주었고, 또 그다음 날 아침에는 “풍요야~ 잘 잤어?”하고 몇 번 말을 걸어도 자는 체하고 눈도 뜨지 않더라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익숙히 알고 있는 풍요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풍요는 장군이 만큼 따뜻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겨울 집에서 큰 추위 없이 잘 생활했고 거실 유리문을 통해 

풍요가 새록새록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표정이 갓난아기를 보는 듯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겨울 집 둘째 날 아침. 머리만 살짝 내밀면서 둘째 딸 아침 인사를 받아주었다.


풍요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온갖 동작을 동원해 세수를 할 때면 거실 유리문을 “통! 통!”하고 치면 깜짝 놀란 풍요는 <얼음 놀이>하듯 하던 동작을 그대로 고정한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실 쪽을 쳐다보곤 했다. 

풍요는 나의 그러한 장난에 익숙해지면서 거실 쪽에서 우리 가족이 쳐다보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배가 고프면 거실 유리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안쪽을 쳐다보곤 했다.


풍요의 <얼음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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