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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Oct 21. 2021

다시 되찾은 풍요의 봄

풍요이야기

아내는 풍요 집을 비추어 줄 수 있도록 어두운 저녁부터 새벽까지 외등을 밝혀놓았다. 나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했으나 아내는 풍요 집을 밝게 해 놓으면 풍요가 우리 가족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혹여 누렁이가 오면 우리가 알아보고 내쫓을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아내의 말이 맞다는 생각보다는 풍요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려고 하는 아내의 정성과 사랑이 느껴져서 외등을 켜 두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베란다로 나갔을 때 풍요 집에서 인기척에 놀란 웬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뛰쳐나와 재빨리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언뜻 보기에도 그 녀석은 덩치가 컸고 누런색이었다고 했다.  그 집주인을 몰아낸 후 자신의 또 다른 거처 인양 하룻밤을 보냈을 것이다. 


'사교성 없고 겁 많은 그 집주인은 목덜미에 깊은 상처를 지닌 채 매일 밤 매서운 추위를 어디서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아침은 먹을까?'

나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매일 솟아났던 의문들이 하나의 선명한 형태로 모습을 갖추어 눈앞에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홀로 깊은 어둠 속에서 온몸을 둥글게 안쪽으로 말아놓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막막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이는 풍요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기를 독하게 품은 세찬 칼바람이 풍요의 두 눈을 찔러댔다.


그러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온전히 풍요만의 몫이었다.



풍요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홀연히 우리 집에 나타났다. 

아무런 기대도 않았던 것이 예고 없이 한 순간에 현실이 될 때 그 홀연한 드러남은 현실감이 상당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저 녀석은 사람 애간장을 녹이는 재주는 있네”라면서 “죽었다 싶으면 살아서 돌아오고, 또 죽었다 싶으면 살아서 돌아오네”라고 투덜거렸지만 우리 가족을 잊지 않고 살아서 다시 찾아와 준 것은 마술과도 같은 신비였다. 현실의 신비였다.


아내는 풍요가 늙어 보인다고 하면서 '츄르'도 주고 사료도 주었다. 

풍요는 표정에 근심이 서려 있었고 사료를 먹으면서도 주변을 수시로 둘러보는 것이 몹시 불안해 보였다. 

나는 풍요가 지난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누렁이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배고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 찾아들었다고도 생각되었지만 아마도 자신의 겨울 집이 그립기도 했을 것이다. 


풍요는 그날 이후 매일 우리 집에 사료를 먹으러 왔다. 우리 가족은 추운 겨울 날씨에 풍요가 자기 겨울 집에서 자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깊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내는 "풍요야~ 나가지 마라. 집에 있으면 내가 지켜줄게" 하고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당부했지만 풍요는 사료만 다 먹으면 곧장 울타리 밖으로 사라졌다.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 마당 밖으로 걸어 나가는 풍요


아무런 죄도 없는 풍요가 불안에 떨면서 사료를 먹어야 하고, 자신의 겨울 집을 코앞에 두고도 쫓기듯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풍요가 저렇게 된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나를 서글프게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에게 위안이 되어 줄 달리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 없었다. 한동안 이를 갈며 누렁이를 수없이 탓해 보았지만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을뿐더러 분노와 원망만 커지면서 마음만 어지러웠고, 풍요가 집에서 쫓겨난 현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현실은 자신이 오롯이 마주하고 떠안아야 할 진실일 뿐 머릿속 논리로 거부한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정작 마음속 불쾌감은 두 눈을 말똥거리며 상당 기간 나를 쳐다보았다.


그 겨울은 풍요에게도 유난히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봄은 기다리는 자에게는 언젠가는 오게 되어있다. 풍요가 어느 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전날과는 달리 걷는 모습에서 여유가 있어 보이더라고 아내가 말했다. 뭔가 주변 정리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풍요에게 자신만의 힘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풍요가 자신의 겨울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것을 보았다. 아마 쫓겨 난지 대략 두 달만일 것이다. 겨울 집 바닥에 깔린 두툼한 스펀지 방석과 그 위에 겹쳐진 부드러운 인조털 담요에 포근히 감싸여서 잠에 곯아떨어진 풍요의 얼굴이 평화롭고 천진난만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때 나는 여전히 목도리를 하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풍요에게는 봄이 와 있었고 그 봄이 그렇게 긴 단잠을 주었을 것이다.


긴 단잠을 잔 그다음 날 풍요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 어깨에 사선으로 길게 털이 잘려나가고 깊게 파인 곳 주변으로 핏물이 엉겨있었지만 풍요는 사료를 먹고 조용히 자신의 겨울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풍요가 누렁이를 상대로 반전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풍요의 눈매가 달라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 그 눈빛은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곧장 내 눈에 다다랐고 거기에는 자신감과 차분함이 서려있었다.

눈을 껌뻑거리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어리숙한 풍요가 삶의 무게를 숫돌 삼아 눈빛을 선명하고 예리하게 가다듬어 왔을 것이다. 


풍요의 어깨를 누렁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선을 그었을 때 아마도 풍요는 눈을 감지 않았을 것이다. 누렁이의 목덜미를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주시하며 정확한 순간을 포착하여 순식간에 그곳에 자신의 날카로운 이빨을 깊게 넣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덜미를 두 번이나 상대에게 내어준 풍요는 이제는 상대의 목덜미만이 자신의 겨울 집으로 온전히 돌아가는 길임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어깨를 상대에게 내어주는 대신 그 녀석의 목덜미에 일격을 가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장군이가 은둔생활을 하게 되면서 주인 없는 빈 땅에 슬그머니 되돌아왔던 풍요가 겨울의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일어서면서 결국 진정한 주인이 되어 자신의 겨울 집을 되찾은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상대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로워진 풍요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가족들에게 “풍요는 와 저래 바쁘노? 밥만 먹으면 밖에 나가네”하곤 했다. 

또다시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하는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동네의 이 집 저 집을 둘러봐야 하고 포도밭을 포함한 주변 과수원도 둘러봐야 할 것이다. 

풍요는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오줌을 싸고 다녔다.


풍요가 스스로의 힘으로 되찾은 겨울 집. 인상이 당당해 보인다

작년에 심었던 설중매 나무 꽃봉오리에서 붉은 꽃잎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 내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붉은 꽃잎을 보러 갔다. 그 꽃잎을 매일 보아야 내가 생각하는 봄이 하루라도 일찍 올 것 같았다. 

그 꽃들이 만개했을 때 카메라로 그 붉은 꽃들을 찍고 또 찍었다. <붉음>이 아름다웠고 찍으면 찍을수록 그 붉음이 더욱 붉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꽃들을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꽃들이 더 붉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럴 때는 그리운 사람들과 소주를 한잔해야 한다.


어느 휴일 아침. 시내의 한 콩나물 국밥집이 생각났다. 전날 소주를 과음한 탓일 것이다. 그 식당은 퇴임 전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는데 내 입맛에 맞는 식당이었다. 아내에게 아침식사를 콩나물국으로 하자고 했더니 “육수도 끓여야 하고 콩나물도 없으니 나중에 해줄게요”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응. 알았다”하고는 조용히 차 열쇠를 들고 밖으로 나와서 그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아내에게 좀 삐친 기분으로 나온 것이다. 

“육수는 내가 준비할 테니 당신은 콩나물 좀 사 와요”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나만 위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휴일이라서 그런지 그 식당에는 손님이 몇 명 없어서 빈자리가 많았고 혼자서 식탁 한 개를 차지해도 마음이 편했다. 역시 맛이 좋았다. 

집을 나설 때의 떨떠름한 기분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식당 안의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한잔 뽑았다. 

역시 맛이 좋았다. 이 또한 모처럼 맛보는 믹스커피만의 아련하고도 그리운 맛이었다. 

그 맛을 따라 한 가지 생각이 반짝하고 떠올랐다. 

“콩나물국을 내가 직접 요리해 볼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굳이 아내에게 눈치 보며 부탁할게 뭐가 있겠는가? 시간도 많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직접 해 먹으면 그만일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집에서 요리는 아내만의 영역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라면 끓이는 것이 전부였으나 이상하게도 그날은 콩나물국에 대한 집념과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들끓어 올랐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아내에게 “그 집 콩나물국 역시나 맛있데”하면서 다음 주 토요일 아침은 내가 끓인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고 아내는 “당신은 잘할 거예요. 뭐든지 다 잘하잖아요”라고 즉각 응답하면서 나를 추켜세웠다.


아내에게는 육수 끓이는 방법과 식재료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배웠다. 육수를 이용해 콩나물을 어떻게 끓이고 계란과 파는 언제 넣는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일 쉬워 보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다음 주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때 아내는 다행히 외출 중이었고 둘째 딸은 불행히 집에 있었다.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에 둘째 딸과 마주 앉았다. 둘째 딸이 첫 술을 뜨자마자 인상이 훽하고 일그러졌지만 “아빠. 다음에는 더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라면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표현으로 인해 상대방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된 말투로 이야기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이상하다? 아까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었나?”하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국물을 한 술 떠보니 달리 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주 토요일 아침 콩나물국은 대성공이었고 “아빠. 요리를 어떡하면 이렇게 잘해요? 너무 맛있어요.”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그 맛있는 콩나물 국을 자주 끓여서 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먼저 맛을 보고 내 마음에 들었을 때 식탁에 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요리는 나에게 속한 일일 수가 없었고 내가 먹을 음식은 집에서나 혹은 식당에서 아내나 또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당연히 만들어 주는 것이었고 나는 단지 배만 채우고 그 맛을 평가하는 3자의 입장에 있어 왔지만 콩나물국을 통해 요리를 하는 과정에 깃드는 정성과 사랑 그리고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앞으로도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온전한 세계였으며, 나의 손끝에서 나와 나 아닌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생생한 현재의 세계였고 그것은 논리로 치장되어 거품으로 사라지는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 나를 매료시켰다. 콩나물국은 <가보지 못한 길>에서 카메라에 이은 또 다른 현재의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비 오는 날. 나는 풍요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아마도 "야, 풍요. 집에 좀 붙어있어라"였을 것이다.    



내가 현재의 세계와 마주할 때 풍요는 장군이와 마주하고 있었다. 풍요는 일상의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안단테네 대문 근처에 앉아 근엄한 모습으로 장군이가 있는 차실을 쳐다보곤 했다.


풍요는 무한한 공간 속에 앉아 있었고 장군이는 사각의 유한한 공간에 붙어있는 사각의 유리창문을 통해 무한한 공간 속의 풍요를 바라보았다. 풍요의 뒤로는 나무와 숲과 산들이 펼쳐져 있었고 그것들을 무한한 푸른 창공이 끌어안고 있었다. 


장군이는 그런 풍요를 바라보면서 지난날 자신이 헤집고 다녔던 잡풀로 무성한 작은 숲의 상큼한 내음과 옆구리와 등짝을 간질여 주었던 풀잎 끝의 까칠한 촉감을 기억해 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풀숲 끝에 다다른 다음 연이어 펼쳐진 포도나무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들쥐나 뱀 사냥을 위해 주변을 살펴보는 자신의 예리한 눈과 날카로운 발톱 끝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긴장감을 즐겼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만의 온전한 세계였으나 사각의 유리창은 그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켰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였다. 


설령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미 새로운 주인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주인은 한때 자신이 뒤를 돌봐 주었던 어린양 이었지만 이제는 생사를 가르는 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살아 돌아온 백전노장의 전사가 되어 있었다. 과거의 기억으로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예전의 풍요가 아니었다.


그런 풍요를 볼 때마다 장군이는 앞발로 창문을 치면서 풍요를 향해 소리를 질렀고 풍요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곤 했다. 보다 못한 안단테네가 풍요에게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말라고 몇 번 강력하게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풍요만이 알 것이다. 왜 장군이를 보러 갔는지는. 

과거 자신이 불우했던 시절, 동네 형님으로서 성자처럼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 토닥여 주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추방했던 앙갚음으로 덜 성숙한 인간들이 그러하듯이 나 보란 듯이 거만한 자세로 상대의 부화를 지르기 위한 것인지는 온전히 풍요의 됨됨이에 따른 것일 것이다. 


어쨌든 세상살이에 영원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이 사실을 아는 만큼 꼭 그만큼 겸손을 배울 것이고 사랑을 배울 것이다. 

나는 풍요가 겸손과 사랑을 배우기를 바랐다.  



그 후 장군이는 이름이 <행복이>로 바뀌었다. 물론 안단테네가 새로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나는 알 것 같았다. <행복이>라는 이름은 안단테네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군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안단테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안단테네는 이미 행복한 가정이었다.


나도 진심으로 장군이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바로 그곳에는 행복이 즐비하게 늘려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밝은 눈만 있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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