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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Oct 22. 2021

풍요만의 세계

풍요이야기

장군이가  <행복이>가 되면서 어느 날 행복한 냄새가 우리 집으로부터 사방으로 풍겨 나갔다. 

아내가 나에게 밝게 웃으면서 “집안에 행복한 냄새가 넘쳐나요”했던 것이다. 

내가 전기오븐에서 빵을 굽는 냄새였다.


아내가 친구들과 먼 곳에 트래킹을 나녀온 후 작은 빵 한 개를 남겨와서 나에게 건네준 적이 있었다. 먹어보니 그 맛이 참 좋았다. 단맛은 덜했지만 제과점의 빵과는 다른 무언가 기품 있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맛있네”라고 했더니 “ㅇㅇ이 남편이 만든 거예요”라고 했다. 전에도 아내의 친구 남편이 빵을 잘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콩나물국의 성공으로 자신감과 함께 자만심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때였으므로 나는 흔쾌히 “나도 한번 만들어 보지 뭐”라고 하면서 “ㅇㅇ씨한테 레시피나 좀 받아봐라”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해서 제빵 분야에도 나의 손끝이 가닿게 되었다. 


자신이 하게 되는 일은 곁 보기에는 자신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배경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속으로 우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처럼 나에게로 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콩나물국 요리도 얼핏 보면 나의 선택에 의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자판기 믹스커피 향기 아래에 <내가 콩나물국 만드는 모습>의 그림 한 장을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살포시 그려 넣었을 것이다. 커피 향에 취한 나는 함께 떠오르는 그 그림을 보고 홀린 듯이 “음~ 콩나물국을 내가 만들어야겠군”했을 것이고 그것은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일이란 그렇게 내가 듣지 못하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나에게로 다가서는 것일 것이다. 

빵도 그렇게 왔겠지. 

미니 프랑스 빵이다. 둥근 반죽에 칼집을 넣고 버터를 그 안에 놓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긴 세월 동안 관념의 세계에 온몸을 담아두고 머리만 굴리던 나의 손가락 끝에서 양파가 두 동강이로 갈라지고 밀가루 반죽이 손가락 사이에 끈질기게 찰싹 달라붙을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졌겠는가?


첫째 딸은 제빵 서적을 사주겠다고 여러 번 제안했으나 그때마다 거절했지만 아내 친구로부터 받은 두 종류의 레시피를 다 경험해 보고 난 후에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픈 욕구가 일어나서 결국 첫째 딸에게 전화를 해서 “그 책. 사도고”했으며 그 책을 받았을 때 우선 얇아서 좋았고 두 번째로는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좋았다. 첫째 딸은 나를 두꺼운 제빵기술서적에 파묻히게는 하지 않았다. 

콩나물국과 빵은 가족 내에서 나의 존재를 새로운 모습으로 부상시켜 주었고 나도 그 새로운 모습이 좋았다. 


풍요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막내아들이 퇴근길에 풍요가 노란색 고양이와 함께 노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고 하면서 그 노란 고양이는 분명히 풍요의 여자 친구임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나는 풍요의 비사교적인 성격을 감안해서 반신반의하며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어보았다. 

"아빠! 그냥 척 보면 알아요"

막내아들은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확고한 어투였다.

나는 일단 누런색이 아니라 노란색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풍요를 겨울 집에서 추방했던 누렁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풍요는 집에서 자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식사 때만 오는 횟수가 많아졌다. 

둘째 딸이 딴살림을 차렸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느 날 외출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베란다에 있는 의자 옆에 풍요가 두 다리를 가지런히 세우고 얌전히 앉아 있고 그 의자 위에 아내가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보니 아내가 "요즘 풍요가 사료만 다 먹으면 곧바로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풍요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서 사료를 빨리 주지 않아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풍요는 사료 줄 때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며 "풍요가 집에 좀 오래 있도록 대화를 많이 해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적당한 대화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상냥한 목소리로 "어! 풍요 왔네. 요즘 뭐 특별한 일은 없제?"라고 습관적인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풍요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일어서더니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사료 접시 앞으로 걸어가서 다시 앉았다. 나에게는 풍요의 등이 보였지만 신사 자세로 의젓하게 앉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풍요는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나에게 "아저씨. 긴말은 필요 없고요, 밥이나 빨리 주슈"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안함을 느꼈지만 마음속으로 '어~~? 풍요 많이 컸네. 그래 커야지!' 하면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사료를 접시에 담아 주었고 "야! 풍요. 많이 먹어라"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어릴 때 사료를 달라고 동그란 눈으로 혹은 껌뻑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야옹! 야옹!"거리던 귀여운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 어린 풍요가 이제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인 셋을 두며 <카사노바>로 불리었던 랑이도 그때는 재준이네가 중성화 수술을 한 뒤여서 풍요의 상대가 될 수 없었고 장군이 또한 마찬가지여서 풍요에게는 여자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그리 큰 걸림돌은 없었을 것이다.

랑이는 중성화 수술 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재준이네 집에 출입하는 것을 그만두고 낭인 생활을 자처하여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아내는 앞집에 풋고추를 주고 참외를 받아왔고 안단테네는 우리 집에 복숭아를 주고 감자를 받아 갔다. 

어느 날 재준이네가 아내에게 살구를 주면서 풍요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풍요가 재준이네에 나타나면 나비와 그녀의 아이들이 벌벌 떤다는 것이었다. 풍요는 가끔 재준이네에 가서 그 집 베란다 위에 있는 나비 집 앞에 앉아 있다가 오곤 하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풍요가 동네 깡패가 된 게 아니냐고 걱정을 했지만, 풍요가 절대로 남의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는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풍요의 눈을 보면 안다. 

누렁이 같은 고양이 앞에서는 형형한 눈빛을 발하겠지만 풍요의 눈은 여전히 어리벙벙하기 때문이다.

아마 나비 가족이 풍요에게 지레 겁을 먹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한때 우리 동네 주변을 주름잡았던 카사노바와 장군이는 일선에서 물러났고 결국 누렁이를 물리친 풍요에게 패권이 주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흙수저 풍요의 세상이 온 것이다.

어릴 때 풍요. 호기심 가득하고 순진무구한  표정이 아주 매력적이다.



우리 동네 싸움 대장으로 성장한 풍요. 근엄한 표정인지 피곤한 표정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가보지 못한 길>은 우리 가족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주었다. 나는 텃밭에서 일하는 것을 즐겨했다. 식물들을 관찰하고 가꾸는 것은 또한 나를 관찰하고 가꾸는 고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집 뒤편 텃밭 일부만 식물을 가꾸고 대부분 풀밭으로 두었다가 <가보지 못한 길>에 들어서면서 지인으로부터 밭고랑을 만들 수 있는 관리기 한대를 물려받았다. 나는 작동법을 배워서 따뜻한 봄 햇살 아래에서 땅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고 잘게 부서진 흙들이 분수처럼 좌우로 튀어 오를 때 내 가슴에서도 쾌감이 세차게 그리고 시원하게 튀어 올랐다.


텃밭 전체면적은 그리 넓지 않지만, 고추, 감자, 고구마, 옥수수, 땅콩 등을 허리가 휘어지게 심었고 그것들은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내가 심지 않은 온갖 종류의 풀들은 더 잘 자라주었다.

아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호박, 수박, 참외, 완두콩 등의 모종을 마구 심어 놓았다. 어느 날 우리 집 울타리에서는 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집 마당 작은 텃밭에서는 가지, 상추, 쑥갓, 오이 등등이 자라났다.

나는 요리를 할 때마다 청양고추와 대파는 작은 텃밭에서 갓 데려온 것들로만 재료로 사용했다. 

그리고 내년에는 양파와 마늘도 심기로 아내한테 약속했다. 이 정도면 가끔 돼지고기만 사면 제왕의 식사를 할 터였다. 




밤에는 별이 떴다. 

별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나 또한 자신들과 함께 무한한 공간에서 영원의 여행을 하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모든 것이 풍성했고 모든 것이 나의 친구였다.

아마도 우리 집 고양이 풍요 이름 덕분이리라. 

우리 가족이 풍요를 화제 삼아 가족 간에 긴 시간 동안 풍성한 대화가 오간 것만 해도 풍요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다. 

아내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리라.


집 뒤편 텃밭에서 바라보이는 여름날의 저녁노을은 저 멀리서 아득히 드러난 희뿌연 산들의 윤곽선 위로부터 끝없이 펼쳐진 무한의 스크린에 장엄한 영상을 펼쳐낸다. 

나는 노을을 볼 때마다 고향을 떠올린다. 

저 장엄한 노을 뒤편 어딘가에 내가 떠나온 고향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다시 돌아갔을 때 거기에는 빛과 구름과 바람으로 지어진 집이 있을 것이다.


그 장엄한 노을은 항상 장엄한 말투로 이야기하곤 한다. 

“그냥 존재하라.”



그 뜨겁던 어느 여름날 오후.

우리 가족 사이에 추측으로만 나돌던 풍요의 <딴 집 살림>의 실체를 드디어 나의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 집 뒤편은 포도밭을 마주 보고 있다. 

나는 그곳에 작은 평상 하나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포도가 영글어 가는 것을 보곤 했다. 

그날 그곳으로 가보니 풍요가 포도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기 아이를 데리고 노는 것이 보였다. 그 작은아이는 아빠 곁에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면서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풍요는 땅에 배를 대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앉아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나는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조용한 동작으로 조심스럽게 작은 평상에 앉았다. 그 아이는 내가 나타나자 아빠 곁을 떠나 쪼르르 뛰어가더니 우리 집 벽면 한쪽 귀퉁이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조심스럽게 빼꼼히 내어서 동그란 눈으로 나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너무나 귀엽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그 느낌을 어떤 단어로 문장을 구성해야 표현이 가능할까? 


나는 ‘그 녀석. 꼭 저거 아빠 닮았네’라고 감탄하면서 풍요를 쳐다보았다. 그 아이는 풍요와는 다른 털빛으로 누런색에 가까운 노란색이었지만 행동하는 모양이 어릴 적  풍요를 그대로 그곳에 데려다 놓은 듯했다. 

풍요 아들이 아빠를 향해서 폴짝


부끄럼을 많이 타는 풍요도 그날만큼은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듯했다. 그 아이가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풍요에게로 돌아가자 풍요는 등은 땅에 대고 배는 하늘을 향해 활짝 다 드러내 놓고 네발을 휘저으면서 온몸으로 자기 아이에게 장난을 치는데 '과연 저 녀석이 풍요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 식구들은 자기한테 온갖 아양을 떨어도 본체만체하는 녀석이 자기 아이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애정 표현을 아낌없이 해주는 듯했다.

풍요는 내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이와 한참 동안 놀아주었고 이따금 나를 쳐다봐 주기도 했다. 

좀 모자란 듯하고 겁 많고 사교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거기다가 부끄럼까지 잘 타는 풍요가 삶의 굴곡을 지나 이제는 어엿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자신의 아이와 한가로이 여름날 포도밭 그늘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풍요만의 세계에서.


풍요가 목덜미에 큰 상처를 입고 쫓겨 다니던 시절. 

어느 휴일 아침, 평소보다 좀 늦은 시간에 창고 카페에서 마당으로 나와보니 현관문 앞에 풍요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그곳에서 우리 가족이 나오기를 가다렸을 것이다.


풍요는 신사 자세를 하고 앉아 아침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눈은 고뇌에 찬듯하기도 하고 햇살의 따뜻함을 고요히 느끼는 듯도 했다. 그 모습에서 엄숙함이 풍겨왔다. 

내가 늘 어리숙하게 생각했던 풍요는 아마도 진정한 제왕들이 그러하듯이 홀로 꿋꿋이 세파를 견디면서 고난 속에서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웠을 것이고 때가 오기를 묵묵히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에서 자기만의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풍요가 목덜미에 큰 상처를 입고 쫓겨 다니던 시절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포도밭 그늘도 더욱 길어 젔다. 풍요는 자신의 주변을 쉴 새 없이 맴도는 예쁜 새끼 곁으로 다가가더니 그 아이를 데리고 포도밭 갓길을 따라 나로부터 멀어져 가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길.  가보지 못한 길.


풍요와 가보지 못한 길을 같이 걸어가면서 무언가를 느낀 것 같다.

<가보지 못한 길>은 사실 지금껏 내가 매일 걸어왔던 길인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필연과 무한한 우연으로 가득 찬 무한한 공간인 그 길을

좁은 골목길로 만들고 그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온 것은 분명 나 자신일 것이다.

<가보지 못한 길> 은 지금도 아무런 조건 없이 내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골목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가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마도 자신을 스스로 새장에 가두어 놓은 것이 아닐까?


나는 풍요가 사라진 포도밭 갓길 끝의 허공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의 풍요를 기원하며 지었던 고양이 이름 <풍요>를 풍요 가족의 풍요를 기원하는 이름으로 풍요의 <가보지  못한 길> 앞에 놓아두었다.


나는 풍요가 사라진 허공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섰다. 

곧 장엄한 노을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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