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 이야기
지난 휴일,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자기 방에 꼭꼭 숨어 느긋한 휴일을 보내던 막내아들이 오후 늦게 호출을 받았다. 아내가 나 대신 아들을 집 뒤편 텃밭으로 불러낸 것이다. 그날은 내가 저녁식사 당번이었다.
햇살의 따가운 기운이 수그러진 저녁녘 시간을 이용해 삽질할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 부엌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 속에서 막내아들이 열심히 땅을 파고 고르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후덥지근 한 바깥 날씨로 봐서 아마도 땀을 비 오듯 흘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아들 모습을 찍었다.
오늘 그 사진에서 아들 모습을 크게 확대해서 그려보았다.
석양빛을 마주하고 있고 흰색선이 세줄 새겨진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그림을 그렸다.
삽질을 끝낸 아들이 텃밭 앞에 있는 농수로 제방에 앉아 흐르는 물에 손과 발을 담그고 땀을 식히는 장면이다.
아내가 찍어서 가족 카톡방에 올린 사진을 그린 것인데, 오늘 모처럼 그림을 그려보게 된 것도 그 사진 때문이다.
흐르는 물에 담긴 발과 앞쪽에 놓인 한 짝의 슬리퍼를 본 순간 갑자기 그려보고픈 욕망이 그냥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큰 도시에 다섯 명 식구가 모두 한 집에 살고 있던 시절.
어느 날부터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은 막내아들부터였다.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비행기를 타고 가족을 떠나 먼 나라로 갔다.
그 녀석의 방황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그해 여름방학 때 우리 곁에 2달 정도 머물다가 다시 떠나기 전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는 아들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
그사이 청춘의 끓는 피가 어는 정도 식었는지 침착한 표정에 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8년 정도 지난 그림이다.
그림 옆에 줄줄이 적혀있던 가족들의 글을 요약해 보니
나 : 아빠에게 서운한 것이 있었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 해왔듯이 앞으로도 잘 적응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리라 생각된다.
아내 : 해야 할 일에 지극히 정성을 들이면 삶에 절제가 저절로 이루어져 균형을 잡는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다.
....... 따뜻한 아들아, 엄마는 항상 네 편이고 사랑한다.
첫째 딸 : 너도 예전보다 많이 변했고 나도 너 안 싫어하기로 했거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너도 나름 귀엽데.
둘째 딸 : 이제는 사람이 되어서 기쁘다. 단군신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막내아들 답글 : 2달이라는 방학기간이 짧지도, 길지도 않았지만 한결 같이 공부 안하는 농땡이 지켜보느라 수고하셨어요. 친구들이랑도 열심히 놀고 가족들이랑도 재밌게 논거 같아요.
......I hope my family will be happy. forever
어엿한 청년이 된 막내가 이제 우리 곁에서 같은 지붕을 이고 잠을 자며, 같은 식탁에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한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함께하는 일상의 소소함.
이 모두가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