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어렸을 땐, 스물일곱 살에는 고민이 없는 어른인 줄 알고.

by 새별

초등학교 때 텔레비전 광고에서

'스물일곱,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라는 화장품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 광고를 보고 '스물일곱'이 인생에서 가장 (외적으로) 아름다운 나이구나!라는

참으로 초등학생다운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2016년,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 1,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맞이한 스물일곱]


스물여섯 살까지는 미리 새해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매년 보던 텔레비전 시상식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 '스물일곱이다. 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쩌면,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하루 만에 연간계획을 세우는 걸 그만둔 걸지도 모른다. 스물여섯 살에 배운 건 바로 그것이었다. 매일 착실히 쌓아 올려서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지 계획을 다 이루고 나서의 모습만 꿈꾸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삶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스물여섯에 중요한 사실을 많이 배웠으니 스물일곱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나는 지금 사실 왜 매해 세우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남들은 열심히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너는 무엇을 하고 있냐고 나 자신을 독촉하고 있는 것이다. '빨리 어떤 것 한 가지라도 시작하지 그래?'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행동을 하라고 독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스물일곱이 많은 나이라고 하니까. 적은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 엄마는 스물일곱에 나를 낳았는데.



[# 2, 작년엔 어땠더라?]


그렇담, 작년엔 어땠는 지 천천히 생각해보자. 스물여섯 살 나의 목표는 책 출간, 블로그 일일 방문자 1만 명, 포털 사이트 메인 주기적 노출, 다이어트, 유럽여행, 도쿄 여행, 토익 900점 넘기, 오픽 AL, 컴퓨터 활용능력 1급 취득, 컴퓨터 그래픽스 운용기능사 취득 등 무척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목표라고 생각했던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이어트 또 다른 하나는 책을 내는 일. 다이어트는 성공했다가 실패했고 책을 내는 건 성공했다.


그런데 사실 다이어트는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쉽다. 책을 쓰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포기하게 되면서 살이 찐 거라고 변명하고 싶다. (웃음) 요요가 왔으니 실패가 맞겠지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다면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지 몰랐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옷을 사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두 가지를 양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건 어떨까? 건강한 식생활 그리고 책을 쓰는 일을 동시에 하는 방법 익히기. 그동안 일을 벼락치기로 했기 때문에 두 가지가 병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처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변수가 존재하는 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이겠지.


근데 다이어트나 여행은 모든 사람들이 세우는 계획이다. 토익 점수나 자격증 취득,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그런 계획이라면 하루 만에 다 세울 수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계획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나 여행은 마음을 먹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다.



[# 3, 습작이 있어야 진짜를 그리지]


아마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래야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고민을 스물일곱에 하다니, 참 빠르네 '하며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대학생이 돼서 얼마 안 되었을 때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군대에서 누군가는 교환학생을 가서 누군가는 첫 여행지에서 했을 고민이다. 나도 안 한 건 아니다. 그 고민에 함부로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뿐이다.


나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대기업에 입사한다면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삼촌이 권유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2년 반 동안 열심히 했다. 열심히 회사 일을 배우면서 경영학을 복 전하면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주전공을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는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몇 년 뒤에 인턴을 4번 정도 하면서 느낀 것은 '대기업 입사' 자체가 행복의 열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최악의 취업난과 더불어 나는 하반기 공채 서류전형에서 모조리 탈락하게 되었다.


서류전형에서 모두 떨어지면서 회사가 나를 '무용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바늘구멍인 취업 시장에서 친구들 모두 '슈퍼스타 K' 오디션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이 특별하게 어려운 것처럼 미디어에서 이야기 하지만 내가 보기엔 대기업 입사나 혹은 나처럼 신방과를 전공하는 친구들의 꿈인 PD도 그만큼 어려워 보였다. 모든 일이 다 쉽지 않다면 프리랜서로 사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것을 결심했을 때 '회사가 월급을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뼈저리게 느끼거나 또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네. 둘 중 하나를 배울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가지 중 강렬하게 느끼는 것을 선택하여 그다음으로 나아가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나는 일 년 동안 그 두 가지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것을 배우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프리랜서로 사는 삶과 회사원으로 사는 삶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은 어려움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둘 다 결코 만만치 않다. 회사원일 때는 프리랜서가 부럽고 프리랜서는 월급쟁이가 부럽다. 프리랜서는 말이 좋아 프리랜 서지 사실 '백수'다. 그리고 서류에서 떨어진 건 내가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대기업에 입사할 것이라고 꿈을 꾸었지 절실하게 그 회사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절실했다면 아마 그 회사에 매일 직접 무작정 찾아가서 이력서를 제출했을 것이고, 프리랜서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나는 프리랜서의 삶이 더 적성에 맞아서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가르치는 지금의 일이 좋아서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내 전공과 무척 연관성이 높은 일이라는 점이다. 내가 그렇게 전공을 좋아했었나? 그렇지만 난 PD가 되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 4,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소리 듣는 법]


아마도 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목표를 세우지 못한 이유는 진정한 내 마음의 소리가 무엇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다 보면 이 모습이 그저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아니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깊은 고민이 생길 때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을 묻는다. 그러면 내가 어떤 말에 더 이끌리는 지, 내가 어떤 마음 상태인지를 반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신의 상태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처럼 되라고 하고 자신의 상태의 불만족스러운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이 부럽고 좋아 보인다고 할 테니 그중에서 내가 더 듣고 싶은 말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아니겠나? 다만,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내가 하는 일이 꽤 재미있어 보이고 괜찮아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하는 일이 무척 자기 주도적인 활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린 내가 꿈꾸던 건 '대기업 입사'가 아니라 '평범하고 평온하게 사는 것'이었을 것이다. 집과 가정에 충실하게 사는 삶. 어렸을 때 우리 집 형편상 그러질 못했기 때문에 갖게 된 생각이라고 본다. 그리고 대기업에 들어가면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온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건 장점이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게다가 이제는 예전처럼 평생직장의 개념도 사라졌다.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세상은 아주 많이 바뀌었고 공식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변화된 상황에 맞게 행동을 달리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내가 정말로 꿈꾸던 건 '안정적인 삶' 이었을 것이다. 불안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스물여섯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무엇을 하든 불평불만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 무엇을 하든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당분간의 답은 똑같지 않은가? 지금 하는 삶을 어느 정도 지속해보는 일.



[# 5, 오늘을 살기]


결국은 지금의 모습을 당분간은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100% 이렇습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것뿐이다. 왜냐하면 프리랜서는 언제든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면접 보러 갈 때마다 혼자서도 잘 할 것 같은데 왜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럴 거면 이력서도 안 썼어요! (웃음) 프리랜서든 창업이든 회사든 놀고 싶은 생각으로 하는 거라면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다 알아볼 텐데.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 한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2016년 벌써 366일 중, 3일 째다. 스물일곱 3일 차. 꿈꾸는 동안에도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계속 시간은 흘러간다.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고민이니까. 뭐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열심히 무엇이든 해보자. 뭐라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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