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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Oct 01. 2020

깻잎이 알려준 '익숙한 존재'에 대한 감사

깻잎이 알려준 '익숙한 존재'에 대한 감사

 일상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특별한 감정 없이, 정말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어떻게 보면 이렇다 할 감정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무기력증과 지루함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어서 상황과 환경에 익숙해지면, 익숙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자주 잊곤 한다. 불편함 혹은 부재를 인식하고 나서야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에게 익숙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줬던 것은 '깻잎'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생활했더라면 깻잎에게 그렇게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 3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서, 깻잎이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흔히 먹는 깻잎이라, 일본에서도 당연히 먹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애호박도 일본에서는 주키니만 팔지, 일반 마트에서는 팔지 않았다. 일본에도 한국 깻잎을 재배하는 곳이 종종 있지만 한국처럼 구하기 쉽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쉽게 사 먹는 깻잎을 이렇게 구하기가 힘들다니. 찾아보니 깻잎 키우는 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깻잎 씨를 구해 키우기 시작했다. 깻잎 재배에 대해 검색하다가 나처럼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들 중에 깻잎이 너무 먹고 싶어서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은 덤. (웃음)

 처음엔 싹이 많이 안 날 줄 알고 씨앗을 많이 뿌렸는데, 싹이 너무 많이 나서 분양해서 나눠줘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잎이 많이 났다. 조금 떼어다가 닭갈비, 떡볶이 해 먹을 때 넣어서 먹었다. 내가 아는 그 깻잎 맛이었다. 맛있었다. 그러고 나서 또 금세 잎이 크게 자라 있었다.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정말 고마웠다. 나는 물을 주는 것 말고는 하는 일도 없는데.

 주말에 일이 있어서 집을 비우느라 이틀 동안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죽지도 않고, 건강히 잘 지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심지어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에도 꽃을 피웠고, 겨울 동안에는 내버려 두었는데 다음 해 봄날이 되자 싹이 났다. 깻잎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동을 받아서 그다음 해에 또 깻잎을 키우게 됐다.

 늘 당연하게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도 사실은 귀한 하루일 수 있음을 인식하며 지낸다면, 조금 더 특별하고 기쁜 하루가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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