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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긴믈 Feb 29. 2020

韓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7

물질문화를 통해 본 辰과 韓 [貳]

나. 남한 최초의 권력: 지도자에서 지배자로


그렇다면 이제는 한반도 남부에서 원시권력들의 실재를 탐색해보자. 한반도에서 수장의 무덤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동기시대의 지석묘, 즉 고인돌무덤이다. 지석묘 축조는 공동체의 집약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응당 집단의 수장급 분묘로 여겨졌으며, 북방의 탁자식지석묘는 비파형동검이나 미송리식토기와 함께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하는 지표였던 만큼 의심할 여지 없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실상 탁자식지석묘와 비파형동검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비파형동검은 금속기가 다량으로 부장된 석곽묘·목곽묘·토광묘 등에 부장된다. 지석묘는 한반도 남부로 내려와 기판식 지석묘와 개석식 지석묘로 변이되었는데, 한반도 남부의 지석묘에서 확인되는 부장품 구성은 대개 마제석검 한 점과 마제석촉 및 적갈색토기 수 점, 그리고 천하석제 옥으로 만든 목걸이 등이 있다. 이를 다 갖춘 것이 가장 높은 위치의 무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장품 조합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같은 분묘군집 내의 그렇지 못한 다른 무덤들을 압도할만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목걸이를 걸고 단 한 점의 마제석검과 몇 자루의 화살을 쥔 존재가 대체 얼마나 우월한 재력과 무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즉 지석묘 축조 집단의 권력자는 공동체 성원의 노동력을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제어력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단을 대표하는 존재로서의 힘일 뿐일 것이다.


대구 대천동 511-2번지 11·12호묘


물론 여수 적량동유적 등 비파형동검 부장 지석묘가 확인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지석묘들은 비파형동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다른 부장품 조합은 여타 지석묘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오로지 비파형동검만이 돌출되는 양상 속에서, 동검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이 여타 지석묘의 피장자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나 권력을 가졌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동검은 마제석검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동검의 존재는 해당 집단이 외부로부터 동제품을 수용할 수 있는 계기나 기반이 있었다는 점을 상정할 수 있게는 할 것이다.


여수 적량동 7호묘


그렇다면 집단 성원을 압도하는 힘은 언제 등장하는가? 한반도 남부에는 동기시대를 지나 철기시대로 접어드는 시점, 그러나 희한하게도 철기보다는 동기의 비중이 더 큰 서기전 4세기 즈음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가 되면 대전 괴정동·예산 동서리·아산 남성리 등 호서지방을 시작으로 한반도 서남부에 걸쳐 금속기를 다량 부장한 분묘가 등장한다. 특히 서기전 3세기 초엽 이후로 비정되는 예산 동서리와 아산 남성리의 석관묘는 세형동검을 8~9점이나 부장하는데, 이는 단검을 한 자루 부장했던 기존의 부장양상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시기의 분묘들은 비록 여전히 수 점의 무문토기와 천하석제 목걸이 그리고 석관묘제라는 기왕의 장제를 고수하고 있지만, 거울과 복수의 단검을 위시한 10~20점 정도의 금속기를 부장하며  도끼斧 · 끌鑿 · 새기개로 구성된 새로운 공구 부장품 조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전과 구별되는 새로운 장송의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전 괴정동유적 출토 유물
화순 대곡리유적 출토 유물


그렇다면 철기시대에 새로 등장하는 부장유형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추출할 수 있을까? 일단 재료 수급이 어렵고 당대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동기를 다량 부장했다는 점에서 피장자의 경제력을 엿볼 수 있으며, 도끼 · 끌 · 새기개 조합의 공구는 기술력과 연관지을 수 있다. 아울러 칼 · 거울 · 방울은 제사장으로서의 제의권을, 투겁창 · 꺾창은 피장자가 보유했을 군사력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도구들은 시기가 지날수록 부장량이 증가하고 동기가 서서히 철기로 대체되며 거울은 다뉴경에서 한경漢鏡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등 여러 가지 변이를 겪게 되지만, 철기시대 중기까지는 '제기+무기+공구' 조합 속에서 제기는 단검과 거울, 무기는 투겁창과 꺾창, 공구는 도끼와 끌과 새기개를 기본 구성으로 하는 부장 내용이 유지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장양상을 갖는 분묘의 존재는 곧 남한 원시 정치체의 등장 지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원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 서기전 9세기에 요서 십이대영자에서 처음 확인된 '비파형동검+다뉴경' 조합 기반의 동기 다량 부장묘이다. 이 부장유형은 서기전 6세기에 요동까지 확산되었다가 서기전 4세기에 비로소 남한에 닿게 된 것이다.


서기전 9~3세기 조선식 금속기 다량부장묘의 분포 변화
서기전 4~2세기의 부장품 조합 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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