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사료를 통해 본 辰과 韓 [壹]
가. 진국辰國
서기 이전의 원시한국 어딘가에는 진국 즉 진辰이라는 정치조직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국이 주체가 된 기록, 그러니까 진국이 어디에 있고 어떤 사회상을 띠는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그 전면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다만 다른 정치조직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을 통해 대략 진이 어떠한 성격의 집단인지 엿볼 수 있다. 아래 기사들을 보자.
ㄱ-① 傳子至孫右渠…眞番旁辰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
『史記』(백납본) 朝鮮列傳
ㄱ-② 傳子至孫右渠…眞番辰國欲上書見天子又雍閼弗通
『漢書』 朝鮮傳
ㄱ-③ 辰韓者古之辰國也
ㄱ-④ 右渠未破時朝鮮相歷谿卿…東之辰國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韓
ㄱ-⑤ 燕人衛滿避地朝鮮因王…歲武帝滅之於是東夷始通上京
『後漢書』 東夷列傳 序
ㄱ-⑥ 皆古之辰國也
『後漢書』 東夷列傳 韓
ㄱ의 ①과 ②에 따르면, 진국은 한漢과 직접적인 통교를 희망하였으나 조선의 방해로 좌절되는 모습으로 동북아시아 역사 무대에 데뷔한다. 두 사서 『사기史記』의 편찬 시기가 서기전 2~1세기이므로 늦어도 이때에는 진이 원거리 교통을 기도할 수 있을 만큼 사회 통합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ㄱ의 ⑤를 보면 전한 무제가 조선을 멸한 시기부터 동이가 그들과 통하게 되었다고 하므로, 진 역시 이 시기부터 중원과 교통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ㄱ의 ③·④·⑥은 진의 위치와 한韓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다. ④는 조선의 상相이었던 역계경이 무리를 끌고 진국으로 갔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진국은 조선 혹은 한의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방위만으로는 그 위치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③과 ⑥에 따르면 한 혹은 진한이 진국을 계승하므로 한반도 남부에 자리 잡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나. 진과 한
위의 결론을 정리하자면 『사기』와 『한서』에 등장하는 진은 한과 밀접히 관계되는 인민집단, 더 엄밀히 말하자면 한의 전신으로서 한반도 남부 어딘가에 존재했던 남한 토착민들의 정치집단 정도로 인식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기반을 둔다면 진은 어느 시점에 한으로 변모하거나 새롭게 성립한 한에 의해 점진적으로 흡수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은 어떠한가?
ㄴ-① 其後韓西亦姓韓爲魏滿所伐遷居海中
『潛夫論』 志氏姓
ㄴ-② 侯準旣僭號稱王爲燕亡人衛滿所攻奪
ㄴ-③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
ㄴ-④ 其子及親留在國者因冒姓韓氏準王海中不與朝鮮相往來
ㄴ-⑤ 二十餘年而陳項起天下亂燕齊趙民愁苦稍稍亡往準
ㄴ-⑥ 及綰反入匈奴燕人衛滿亡命爲胡服東度浿水詣準降
ㄴ-⑦ 辰王治月支國
ㄴ-⑧ 弁辰韓合二十四國…其十二國屬辰王
ㄴ-⑨ 辰王常用馬韓人作之世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韓
ㄴ-⑩ 至朝鮮侯準自稱王漢初大亂燕齊趙人往避地者數萬口
ㄴ-⑪ 而燕人衛滿擊破準而自王朝鮮
『後漢書』 東夷列傳 濊
ㄴ-⑫ 馬韓最大共立其種爲辰王都目支國盡王三韓之地
ㄴ-⑬ 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
ㄴ-⑭ 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
ㄴ-⑮ 準後滅絶馬韓人復自立爲辰王
『後漢書』 東夷列傳 韓
ㄴ의 ①은 위만에게 격퇴당한 한씨가 바다로 이동했다는 내용이며, 한국사에 있어 한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씨는 맥락 상 ②에 등장하는 조선왕 준으로, ③·④를 통해 그가 진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준이 연에서 건너온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후 바다를 건너가 한왕을 자칭하는 과정으로 서술되는데, 이는 곧 준왕으로 대표되는 외래집단이 진의 공간에서 토착집단을 대체하여 새로운 지배층으로 대두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③을 보면, 준이 바다를 건너 도착한 곳을 한지韓地라고 표현하여 마치 준이 도래하기 전에 한이 있었다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은 서기전 2세기 초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말이 되는데, 과연 이를 신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서기 1~2세기에 편찬된 『한서』에 조차 한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
물론 사서로서 『삼국지三國志』의 신뢰도는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이 당대사에 대한 1차 사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과 같이 민족지Ethnography적 성격을 띠는 기록이라든지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진 과거에 대한 서술을 받아들이는 데는 재고가 필요하다. 『삼국지』와 『잠부론潛夫論』이 저술될 당시는 준이 한왕을 자칭하던 시기와 적어도 400년 정도, 혹은 그 이상 떨어져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게다가 『삼국지』가 저술되는 서기 3세기 이후에는 3종의 한이 분립하였고 나름의 풍속과 활약까지도 중원에 인지되고 있으며, 이것은 『잠부론』이 저술되었던 서기 2세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서에서 묘사되는 서기전 2세기 초엽의 상황은 실제로 그 땅에 한이 있었건 없었건, 서술 주체가 이미 한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한다. 두 사서의 기록만으로 실제 준왕이 한의 정체성에 편입하였는지, 혹은 그것을 구축하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울러 ㄱ의 ④에 따르면, 서기전 2세기 후엽에도 여전히 진은 존재한다. 준왕의 도래로 인해, 혹은 그 이전에 이미 한이 성립한 상황이었으면 진과 한이라는 두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숙고해야 한다. 진과 한이라는 두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숙고해야 한다. 진이 토착민으로 구성된 정치집단이고, 한은 서기전 2세기 초엽 이전에 외래인으로 구성된 정치집단이라는 일반적 인식에 대하여 ㄴ의 ⑬과 ⑭는 무언가 시사점을 제시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왕과 진왕은 서로 대체 가능한 대등한 존재이며, ⑨와 ⑭에 따르면 진왕은 누대로 마한인 사이에서 계승되어 온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놓고 보면 한과 진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다. 준왕과 별개로 묘사되는 ‘마한인’들은 사실 진왕이 되거나 진왕의 지배를 받는 진인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왕과 한인집단은 조선이라는 정치조직과 권력을 경험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진왕이 한왕과 대체 가능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진왕과 진인집단 역시 한에 못지않은 지배력과 지배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진왕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는 사서가 『삼국지』와 『후한서』라는 점이다. 이 말은 곧 진의 공간이 완전히 한으로 대체된 이후에도 여전히 진왕이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앞에서 언급한 준왕 도래 기사의 진·한 혼재상과 맞물려, ⑨와 ⑭에서 ‘진’왕을 마‘한’인이 계승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서술은 이제 이 두 사서가 진과 한의 개념을 굳이 구별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진과 한의 정체성이 완전히 구별되는 것은 ⑭와 ⑮ 의 한왕과 진왕인데, 이때의 한왕은 조선에서 내려온 폐왕가廢王家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위에서는 그냥 지나갔지만, 한왕과 진왕이 완전히 별개의 존재일 경우 진왕은 토착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문물을 보유하고 비교적 고도의 정치적 경험을 갖춘 존재들과 그렇지 않은 존재들이 과연 대등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가? 앞에서 보았던 서기전 2세기 후엽의 진국이 한과 공존하는 토착권력체가 맞는가?
전자는 금속기와 점토대토기를 보유한 목관묘 축조 집단, 후자는 석기와 무문토기를 보유한 지석묘·석관묘 축조 집단. 이 둘이 보유한 권력의 성격에 대해서는 3장에서 본격적으로 설명할 것이니 결론만 말하자면, 진왕은 과거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왕은 진과 한을 막론하고 한반도 남부의 최고 상위 계급을 지칭하는 칭호이며, 과거로부터 이어온 권력적 전통이 네트워크의 정체성이 바뀐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은 무엇인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 한이라는 이름과 정체성이 탄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준왕이 내려오기 한참 전인 서기전 5세기부터 포착되는 한반도 남부의 물적 변화와 ⑤·⑥·⑩·⑪를 참고한다면, 한의 발생이 어떤 종류의 계기를 갖는지 짐작은 갈 것이다. 그것은 문헌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어느 시점부터 단속적으로 도래한 신문물 보유 집단에 의하여 축적된 사회변화요소들이, 준왕의 남래로 상징되는 모종의 계기로 인해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이 중원에 인식되는 시점은 『한서』와 『잠부론』 사이 어느 지점 즉 서기 2세기 전중엽 전후로 생각된다.
ㄴ의 ⑧을 보면 진왕은 마한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기서 묘사되는 진왕은 진한과 변진 중 어떤 12개국을 거느리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목지국과 변진한에 똑같이 진왕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⑨에 따르면 진왕은 마한인만이 할 수 있으며, 스스로 자립하여 왕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이때 자립하여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변진한의 신지臣智들을 배제한 독자적 권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⑫와 ⑮에서도 진왕은 마한인으로 삼으며 타인에 의해 옹립된다. 그렇다면 ⑨와 ⑫에서 알 수 있는 진왕의 권력은 부여왕과 같이 다분히 의타적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부여왕이든 진왕이든 복수의 정치집단을 거느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때 이들에게 권력을 부여해주는 존재는 나라의 성원 전체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권력체들일 것이다. 즉 진왕은 배타적 권력을 확보한 다수의 권력체에 의해 옹립 혹은 선출된 존재로서, 배타적 권력층을 대표하는 의타적 권력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