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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Oct 16. 2023

『열세 걸음』서평

소설 최고의 충격

 "마르크스도 신은 아니지!"


 

쇠우리 안에서 길쭉하고 앙상한 다리로 횟대를 타고 오르는 등, 새처럼 행동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위의 대사를 운을 떼며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그에 대한 대가로 서술자는 분필을 받아먹는다. 그는 오직 분필만을 먹는다. 무척 게걸스럽게. 필자는 이렇게 충격적인 도입부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충격은 도입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팽팽하게 유지된다. 묘사와 설정, 네거티브 등등......, 이렇게 개성 강한 요소들을 특이한 서술기법과 함께 능수능란하게 엮어내는 모옌의 글솜씨에도 필자는 한 번 더 놀랐다.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선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열세 걸음』은 1988년 중국에서 발표된 소설이다. -중국 사회에만 적용되진 않지만- 저자가 당대의 중국 사회를 비판하는데 적을 두고 글을 썼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는 사회의 소시민들을 조망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고등학교의 물리 교사인 팡푸구이가 과로사를 하면서다. 동료 교사들은 이가 교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대한 표상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활동을 개시한다. 하지만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던 팡푸구이가 살아서 다시 나타난다.-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일시적인 가사상태에 빠졌던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팡푸구이는 다른 교사들을 위해 죽어야만 했다. 그래서 낸 묘수는 그의 이웃이자 특급 장례 미용사인 리위찬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리위찬은 자신의 남편과 팡푸구이의 얼굴을 바꾸어 주며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의 큰 줄기는 이상과 같은 이야기지만, 외에도 수많은 관계와 엽기적인 사건들이 함께 역이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필자는 꽤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읽었다. 번역에도 큰 문제가 없고. 하지만 읽는 데 난도가 없다고 할 순 없다. 첫 째로 『열세 걸음』 특유의 서술기법 때문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임과 동시에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인칭으로 전개되던 소설은 몰입이 된다 싶으면 마치 서술자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2인칭을 툭툭 던진다. 독자들의 몰입을 끊이려는 저자의 의도가 다분하다. 두 번째는 소설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이 워낙 엽기적이라는 점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게 느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작품의 재미는 몰입도와 일치하진 않는다. 예술적 충격을 향유하는 일은 즐거우니까. 그리고 서술자의 입담도 훌륭하고 말이다. 이는 저자인 모옌의 상상력과 글솜씨가 극단에 치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열세 걸음』을 권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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