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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May 27. 2024

자살의 두 번째 이유, 격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간계와 사랑」

 자살의 두 가지 원인인 권태와 격정. 직전에는 권태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격정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물론 권태와 격정은 연결되어있다. 둘은 단지 감정이 얼마나 활동적이냐의 문제일 따름이다. 하지만 둘은 양극단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격정에 빠진 사람은 마음이 너무나도 활달히 움직이는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어진다. 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것이 증오스러워졌다가도 자신이 받았던 상처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격정에 빠진자들에게 세상이란 마구 탈바꿈하는 무언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간계와 사랑」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부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의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작품. 짝사랑과 대한 그의 경험과 자살자인 친구에게서 얻은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플롯은 사실 단순하다. 주인공인 감성적인 청년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미 약혼을 한 그녀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체념하고 비탄에 빠진다. 그래서 자살한다.


 이 소설은 어떻게 고전이 되었을까?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베르테르라는 인물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등장인물, 감수성 넘치는 문체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삼각관계는 언제나 흥미로운 구도다. 하지만 이 요소들이 전부가 아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당시에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고전이 된 이유는 이 삼각관계가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이 당시뿐만이 아니라 현대에도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그렇기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재의 우리가 몇 세기 전의 작품에 감동을 느끼는 이런 이유에서다.


 베르테르는 아웃사이더였다. 당대는 이성과 질서, 체계 따위를 중시하였다.  반면 베르테르는 감성적으로 예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겼다. 베이컨의 격언에 따라 당시는 자연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았지만 그는 달랐다. 자연을 이상적인 무언가로, 특히 사랑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요소로 보았다. 이런 인물이 허례허식과 부조리한 규율과 규범으로 가득한 공직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그는 선임의 일 처리와 성품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사교회의 참가자들에게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먼저 우리의 주인공이 로테에게 빠지는 계기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녀가 자신의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자태를 보고서다. 로테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녀는 로테에게 동생들을 잘 돌봐주라는 말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동생을 보살피는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베르테르에게서 로테는 모성애가 넘치는 존재로, 또 이상화된 자연의 현현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계기는 무도회에서 생긴다. 춤이란 상류층의 예법이자 허례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베르테르에게는 그랬다. 그럼에도 로테는 춤을 통해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마음껏 발산한다. 그러니까, 로테는 베르테르가 반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알베르트는 로테의 남편-약혼 관계였다가 소설이 진전됨에 따라 결혼했다.-이다. 연적인 베르테르조차 그를 존경 받을 가치가 있는 인물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알베르트가 상징하는 바는 기존 질서다. 즉 이성, 공동체, 사회, 예법 등을 체득한 인물이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베르테르는 결코 로테와의 사랑을 성취할 수 없다. 베르테르는 선한 인물이고, 로테와 알베르트의 사이는 끈끈했다. 베르테르 역시 이를 알고 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랑은 더 뜨겁고 격렬해진다. 관점에 따라 타오르는 감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작품의 주제에 대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가치 체제와 새로운 가치체계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해 고통받고 고뇌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여기엔 베르테르만이 아니라,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로테 역시 포함된다. 그녀는 베르테르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연정도 알고도 있었다. 로테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전통에 따라 그와의 관계를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을 억압하는 문명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이라는 반대자에 이끌리는 인물. 그로 인해 격정에 빠진 인물이 바로 베르테르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총으로 자살한다. 그가 여행길에 필요하다는 변명을 한 턱에 알베르트는 자신의 권총으로 그런 사건이 촉발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과 달리 반동 인물인 알베르트 역시 무척 선한 인물이라는 사실도 유의하면 좋을 것 같다.


 괴테는 기존 질서의 순응자이자 상류층을 순박한 베르테르를 무시하고 비웃는 자들로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기존 가치의 대표자인 알베르트는 -약간 고리타분한 면은 있지만- 선하고 뛰어난 인물로 설정했다. 그런 인물이 건넨 총으로 주인공은 자살한다. 결과적으로 젊은이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기존 질서가 건넨 권총이다. 그리고 권총에 의해 누군가 자살할 거라 예상치도 못한다. 이는 아마 괴테가 가졌던 염증의 표현일 터이다.


「간계와 사랑」


 「간계와 사랑」 역시 젊은 연인들을 사랑을 소재로 당대의  시대적∙사회적 상황을 조망한다. 남자의 이름은 페르디난트. 수상의 아들이자 젊은 장교로 귀족 신분에 속한다. 그는 악사의 딸, 즉 평민인 루이제를 열렬히 사랑한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작품의 갈등은 이 신분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신분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빈부나 사회적 명성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다르다.


 수상의 입장에서 탄탄대로가 보장-최소한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임이 확실하다.-된 아들이 평민과 놀아나는 것이 보기 힘들 터. 그는 페르디난트와 루이제를 떼어놓기 위해 측근인 부름과 머리를 맞댄다. 부름이 낸 계책은 이렇다. 우선 루이제의 부모를 체포한다. 그리고 루이제를 협박하여 그녀에게 가짜 연애편지를 쓰게 하는 것이다. 바로 페르디난트가 아닌 다른 인물을 상대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 편지를 우연히 페르디난트의 손에 들어가는 듯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 계획은 그대로 실행된다. 편지를 보게 된 페르디난트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사실 그는 음모를 알아챌 기회가 수 번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너무 격렬했던 탓에 침착하게 처신 못한다. 수상은 페르디난트를 보기 좋게 속여넘겼다. 하지만 계획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사랑을 잃을 바엔 죽어버리겠다는 것이 페르디난트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루이제에게 독을 먹이고 직후 자신도 그것을 삼킨다. 동반자살이다.


  작품 역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서로 다른 가치체계 사이에서 희생되는 젊은이들을 극화한 것이다. 다만 그 구도가 다소 차이가 있다. 『간계와 사랑』의 세계는 궁정세계와 평민세계 두 가지로 나뉜다. 궁정세계의 미덕은 간계다. 수상은 계략을 통해 전임자를 죽임으로써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다. 또 국재를 채우기 위해 젊은 시민들을 미대륙에 용병으로 팔아넘긴다. 반면, 평민세계의 미덕은 사랑이다. 이는 루이제는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억지로 거짓 편지를 쓰는 모습과 악사가 자신의 딸이 죽었음에도 페르디난트를 용서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서 드러난다.


 또 다른 대립 구도도 있다. 루이제와 페르디난트는 신분제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연애를 지향한다. 하지만 수상과 악사 등의 기성세대는 그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이러한 양상, 즉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은 시대적 변동기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질풍노도 문학과 아노미상태


독일에서 태동한 문학사조, 원어로는 Strum und Drang이다. 직역하면 폭풍과 열망쯤 된다. 본래 질풍노도라는 번역어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최근 학계에선 일본식 한자어라는 이유로 사용에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슈투룸 운트 드랑이라고 원어로 표기하는 경우도 잦다.


 질풍노도문학이 어떤 스타일일지는 이름만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위의 작품들에서 그렇듯 이 사조는 등장인물의 격정적인 내면을 다루는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이것은 핵심적이지만 표면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시대적인 배경을 보자. 질풍노도 문학은 1767년부터 1785년 동안 짧게 지속되었다. 앞선 사조는 계몽주의, 뒤에는 낭만주의가 따라온다. 질풍노도문학은 계몽주의의 특징과 낭만주의의 특징 모두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다. 부조리한 전통이나 기존의 가치, 질서 따위를 거부하고 비판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전파한다는 점에선 계몽주의적이다. 개인의 주관과 감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낭만주의적이다. 계몽주의가 강조했던 ‘이성’의 가치는 질풍노도 문학가들에겐 의심의 대상이었다. 참 재밌는 상황이다.


  20세기 에밀 뒤르켐이라는 사회학자는 『자살론』이란 책을 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그는 자살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중 하나가 아노미적 자살이었다. 아노미는 무규범이라는 라틴어다. 뒤르켐에게 규범이란 법과 같이 개인의 행동을 강제하는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사회를 유지 -어쩌면 지배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일종의 가치체계에 더 가깝다. 물론 뒤르켐이 묘사한 무규범 상태란 규범의 진공상태라기 보단, 규범의 분열기 혹은 지배적인 규범이 부재한 상황에 가깝다. 어느 하나의 규범이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고, 둘, 혹은 그 이상의 규범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 말이다. 즉 뒤르켐의 아노미상태란 과도기적인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구성원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노미적 자살이란,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탈 중 하나로 이해된다.


 베르테르와 페르디난트의 자살 모두 아노미적 자살로 볼 수 있다. 둘 모두 구시대적 가치체계와 새로운 가치체계의 대립 속에서 갈등하며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경우에는 이성, 공동체, 질서 등의 가치와 개인의 내면과 자유, 자유 등을 강조하는 가치체계가 맞부딪힌다. 『간계와 사랑』은 간계로 대표되는 궁정세계와 사랑으로 대표되는 평민세계, 그리고 신분제에 집착하는 구세대와 자유연애를 지향하는 신세대가 갈등한다. 두 작품은 이런 점에서 결국 아노미, 또 그로 인한 자살을 묘사한 것이다. 질풍노도는 반시대적인 사조다.


 위의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두 가치체계 사이를 오가고, 그로 인해 내면적 폭발-혹은 과도한 운동-을 겪는다는 점에서 격정이란 감정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또한 주인공들은 모두 격정이란 감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권태가 감정의 고요라면, 격정이란 감정의 지나친 활동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이들. 스스로를 어떻게 통제하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 또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젊은이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기파괴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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